히말라야에서 '별'이 된 영원한 산악인 故 김홍빈 대장!
히말라야에서 '별'이 된 영원한 산악인 故 김홍빈 대장!
  • 임형칠 시민논객
  • 승인 2021.08.06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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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칠 시민논객
임형칠 시민논객
사)광주·전남 등산학교 이사장

‘열 손가락 없는 산악인’ 故 김홍빈 대장은 자신이 항상 정상을 꿈꿔왔던 히말라야 전설이 됐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지난 18일 오후 4시58분 히말라야 정상인 브로드피크봉(8,047m)에 올랐다가 하산하던 중 조난당했다.
차디찬 눈 위에 하얀 꽃으로 산화하고 말았다.
‘지구촌 8,000m봉 14좌를 장애인으로서는 세계 최초 완등했다는 점에서 그의 이름 석자는 하늘나라에서도 별처럼 빛나기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산악인 김홍빈 대장!
아무리 불러도 이젠 우리 곁에 없는 김 대장은 1991년 북미 최고봉 매킨리 1991년 북미 알래스카 매킨리봉(현지명: 데날리봉)을 등반하던 중 조난됐다가 가까스로 구조돼 열손가락을 모두 잃었다.
말하자면 중증 장애 산악인이다.

그런 그가 전문 산악인의 길로 들어선 것은 지난 89년 동계 에베레스트 원정 등반에 나서면서다.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순천 매산고에 이어 1983년 광주 송원대학교 산악회에 입회하면서 본격적으로 산을 타기 시작했다.

필자가 김 대장과 인연을 맺게된 것은 (사)광주전남등산학교의 정규반, 암벽반, 동계반 교육과정에서다.
등산 전문지도 강사이자 대학산악부 선배로서 말이다. 이후 암벽은 물론이고 빙벽, 설벽 등반 등 등반이론과 실력을 익힌 김 대장과 함께 89년 네팔 히말라야 동계 에베레스트(8,848M)등반에 올랐다.
당시 필자는 등반대장으로서 히말라야 8,000m 고지에 올랐으나 고산 특유의 희박한 산소와 낮은 기압, 섭씨 –40~-80도의 강추위와 시속 100km가 넘는 제트기류를 이겨내지 못하고, 그만 정상 등정에는 실패했었다.

김 대장을 누구보다 잘 아는 필자로서는 故 김 대장과의 추억과 인간적인 면모를 소환하고 싶다.
김 대장은 대학산악부 시절 누구보다 산에 대한 도전정신과 열정이 높았던 게 사실이다.
광주·전남 암벽대회에서 대학부 1위로 입상함으로써 일찌감치 산을 타는데 소질이 있었다.
특별히 손이 크고 귀골이 장대하고 큰 키에 서구형 미남의 얼굴이었다.

그런 김 대장은 지난 16년간 끊임없이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붙여진 이름도 많다.
1986년 로체봉에 이어 7대륙 최고봉과 히말라야 8,000m 14봉을 무산소 완등을 함으로써 ‘슈퍼 알피니스트’ “세기의 철인(鐵人)”, “살아 있는 전설” 《에베레스트 솔로》의 저자로 불린다.

그런 故 김 대장에게 체육훈장 청룡장이 추서된 것은 다름 아니다.
산악인으로서는 엄홍길, 故김창호, 김미곤 이후 4번째다.
김 대장의 열정과 불굴의 의지는 장애를 않고 있는 체육인과 산악인에게 귀감이 되고 있기에 그렇다.
열손가락을 잃은 이후에도 국내외 산악 등반은 물론 장애인 알파인 스키 선수, 장애인 사이클 선수로 활동했다는 점에서다.

필자 역시 93년 중국 티벳 초모랑마 북동릉 등반시 8,100m 지점에서 폭설로 인한 화이트아웃으로 1박 2일 조난을 당한 적이 있기에 김 대장이 고산 거벽 등반을 하면서 마주친 고독과 두려움을 이겨낸 사실에 깊이 공감하고 있다.

그 두렵고 매혹적인 시간들을 뒤로하고 이제 김 대장은 “대한민국 산악인장”으로 장례를 치른 뒤 그의 영혼은 무등산 문빈정사에 모셨다.
김 대장의 장례에 한 몸으로 도와준 광주산악회원들의 바람은 이제 두 가지다.

첫째, 故김홍빈대장 기념관 건립과 불굴의 도전정신 계승사업이다.
열손가락 없는 장애를 불굴의 정신으로 이겨낸 김 대장은 극단 개인주의가 만연하고 인류 공동체의식이 결여된 이 시대 미래세대에게 멋진 꿈과 이상을 갖도록 해줬다는 점에서다.
자연을 사랑하는 생명존중 의식과 인간의 한계성을 극복하는 도전정신으로 승화시키는 교육장을 반드시 필요하고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도 그러한 연유에서다.

둘째, 故 김홍빈을 꼭 찾아서 편하게 쉬도록 해주어야 한다.
“저기 산이 있기에 산에 오른다”라고 말했던 영국 산악인 조지 말로리는 동료 어빈과 함께 1924년 6월 9일 중국 쪽 에베레스트 북동릉 정상을 오르던 중 실종됐다.

그로부터 75년 뒤인 1999년 5월 1일 오전 11시 45분에 영국 원정대에 의해 북동릉 8,138m 지점 약 30도 경사진 곳에서 앞으로 넘어진 채 숨진 말로리의 시신이 발견됐다.
그의 주머니에서 손수건에 곱게 싸인 편지를 발견했다.

그렇다면 조지 말로리는 그런 모든 위험을 무릎쓰고 “왜 최초로 정상에 올랐는가?"라는 수수께끼가 그 편지가 발견됨으로써 스스로 해답이 풀리게 됐다. 
최근 故 박영석대장과 함께 브르드피크를 등반하다 1999.6.27.실종된 연세대산악부 허승관(1992학번)대원을 22만에 찾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따라서 故 대장의 시신을 앞으로 꼭 찾아서 편히 뉘어주어야 한다. 산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인류에 전설로 영원히 하늘에 별이 된 故 김홍빈 대장이기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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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얀산 2021-08-07 18:51:28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푸르른 2021-08-07 18:50:28
    평소 고인의 너털 웃음이
    생각납니다.

    김홍빈 대장의 명복을 빕니다.

    이건진 2021-08-07 16:11:42
    대장님께서는 영웅이시고
    영원히 기억에 남으실 꺼에요.

    양한모 2021-08-07 16:08:00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은석 2021-08-07 16:06:25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