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에 우리는
코로나19 이후에 우리는
  • 조용래(광주대 초빙교수, 전 국민일보 편집인)
  • 승인 2020.04.02 1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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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래(광주대 초빙교수/전 국민일보 편집인)
조용래(광주대 초빙교수/전 국민일보 편집인)

봄꽃이 지천이다. 그런데 정작 올 봄 꽃구경은 시들하다. 코로나19가 낳은 사회적 거리두기의 여파다. 서로 마주 대하지 말자는 ‘비대면(untack)’이 우리의 일상을 침범하고 있다. 예전의 사스나 메르스보다 전파력이 훨씬 센 코로나19 대응책으로 어쩔 수 없이 나온 사회적 합의다.

비대면이 자아내는 분위기는 낯설고 마치 홀로 남겨진 듯한 상실감을 키운다. 학교는 개점휴업이고, 종교 활동도 자제가 요구된다. 공연, 스포츠 경기, 공적 집회 등은 유보됐고 사적인 모임도 취소 사태다. 오죽했으면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는 자조적 우스개가 나돌까. 이미 대학은 비대면 온라인 영상강의로, 교회예배도 온라인으로 바뀌었다. 외부와 만남이 크게 줄었다.

상실감의 원인은 일상이 송두리째 훼손되고 있다는 데 있다. 전자현미경으로나 겨우 볼 수 있는 미물 코로나 바이러스에 속수무책으로 휘둘리는 인간의 나약함을 실감한 탓일까. 그간 100세 시대를 노래하고 누구든 주머니 안에 최첨단 컴퓨터를 주무르며 스마트 인류임을 자랑하던 세계는 뜻밖의 복병 앞에서 휘청거린다.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호모 데우스’에서 21세기 인류의 목표는 죽음 극복과 행복 추구에 있다고 소개한다. 유전공학, 재생의학, 나노기술의 눈부신 발전을 전제로 한 얘기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보면 뜬금없는 지적이다. 지인들과 마음대로 만나지 못하고 비대면을 강요당하며 전전긍긍하는 상황에서 불멸 운운이 어디 가당키나 하겠나.

게다가 전문가들은 코로나19를 극복하더라도 유사 감염병이 또 들이닥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한다. 지금의 비대면 현실이 앞으로도 반복적으로, 아니 아예 본격적인 ‘비대면 시대’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인가. 이제는 상실감을 투덜거릴 여유조차 없다. 기존 통념이나 사회시스템은 물론 개개인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까지 통째로 바꾸려는 준비가 필요할 뿐이다.

그간 세계경제의 작동원리는 주로 더 자유롭고 넓게 교역하자, 국가별 공급망을 연계해 서로 함께 생산하자는 것이었다. 비대면은 정반대의 주장이다. 비대면이 계속되면 경제는 위기국면을 맞을 것이다. 이미 경제활동의 위축으로 국제유가가 급락하고 관련 산업 전체가 휘청거린다. 특히 관광·항공·호텔·요식업·스포츠·공연산업 등 대면 위주의 산업은 줄도산이 벌어질 터다. 당장 과감한 지원이 시급하고, ‘비대면 시대’에 걸맞은 코로나19 이후의 청사진을 새로 짜야 한다.

학교와 종교시설의 운영도 심각하다. 우선 현재의 학교 온라인 교육환경은 매우 열악하다. 온라인 강의는 주로 일방적이고, 쌍방향 소통이라도 1대 다중인 경우 효과 차원에서 대면수업과는 비교가 안 된다. 온라인교육환경 개선은 물론 ‘디지털 디바이드(정보격차)’ 문제도 풀어야 한다. 쌍방향 소통기능이 출중한 온라인 학습환경 구축은 국가 존립의 현안으로 떠올랐다.

기독교계 일부가 현장예배를 고수해 빈축을 사고 있는데 그들도 생각을 바꿔야 옳다. ‘모이기를 힘쓰라’(사도행전 2:46)만 따를 게 아니라 ‘가르침을 들고 흩어지라’(사도행전 8:1)는 지적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그저 모여서 자기들만의 잔치를 즐기거나 자기 교회조직의 파워만을 자랑하기보다 이웃을 생각하며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정한 교제를 고민할 때다.

개개인의 경제활동, 인간관계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더 많이 함께 모여 마음껏 쓰고 즐기자’ 식의 관계 형성, 소비 패턴도 바뀌어야 맞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진행되는 동안 외출을 삼가고 외부와의 만남을 자제함으로써 느낀 점도 적지 않다. 지금까지 불필요한 소비, 별 의미 없는 만남이 적지 않았고, 특히 마스크를 쓰고서야 그간 얼마나 실없는 말을 많이 했는지를 실감했다.

섭생도 새로워져야 한다. 코로나19를 비롯해 21세기에 등장한 사스, 에볼라, AI, 메르스 등은 모두 인수(人獸)공통감염병이다. 육식 위주의 식습관에 대한 경고가 아닐 수 없다. 식습관 교정은 쉽지 않겠으나 날로 품질이 좋아지는 식물성 대체육류를 감안한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동물 친화적인 인류, 자연 친화적인 사회로의 전환이 절실하다.

그간 한 나라의 평판은 GDP의 크기, 첨단기술 보유 등에 좌우됐다. 하지만 앞으로는 감염병 대응능력이 가장 중요한 지표가 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해 한국을 향한 국제사회의 좋은 평판은 새 시대의 출발점이란 의미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끝으로 ‘호모 데우스’의 경고를 되새기고 싶다. 하라리는 20세기 의학의 목표는 병 걸린 사람을 치료하는 데 있었지만 21세기의 그것은 건강한 사람의 성능을 높이는 쪽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행여 앞으로 닥쳐올 비대면 시대가 가진 자들로만 구성된 ‘초인간’들의 생체 성능 향상으로 치달으면 그야말로 낭패다. 비대면 사회가 일상화되더라도 더불어 사는 의미, 사회공동체의 존재의의를 더욱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바야흐로 문명사적 대전환은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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