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앤쿨-'문화월드컵' 물건너 갔다
핫앤쿨-'문화월드컵' 물건너 갔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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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손에 쥐어줘도 먹을 줄 모르면 쓸모가 없는 법. '문화월드컵'을 운운하며 비엔날레와 월드컵을 동시에 유치한 광주시의 모습이 바로 그렇다.

광주시는 월드컵과 비엔날레의 공동마케팅으로 '관광특수'를 노려보겠다고 큰소리 쳤다. 이 때문에 비엔날레 행사 기간까지 조절하기도 했다. 그러나 치밀한 계획 없이 말만 앞세웠던 광주시의 행정은 결국 실패했다.

지금까지 준비해온 과정을 살펴보면 공동마케팅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절름발이 준비였다. 객관적인 상황만 보더라도 월드컵이 비엔날레 덕을 본다고 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때문에 아쉬운 쪽이 먼저 나설 수 밖에 없었다.

비엔날레 측은 공동마케팅을 위해 지난 3월부터 월드컵 관람객 유치 데이터를 기다렸다. 그러나 제대로 갖춰진 자료가 나온 것은 개막 20여일 전이었다고 비엔날레 관계자는 밝혔다. 확인 결과 월드컵 조직위원회는 주 타켓층으로 삼았던 중국 관람객 숙박 예약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공동마케팅 추진이 어려워지자 비엔날레 측은 독자적인 준비활동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경기를 갖는 국가들의 민속 공연 준비, 인터넷을 통한 홍보, 미술 관계자들과의 교류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 그러나 광주시나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지 않는 상황에서 담당직원 2명이 해외 홍보를 완벽하게 소화하기는 무리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국 관람객들의 비자 발급이 어려워져 예약이 대거 취소되면서 비엔날레 외국 관람객 유치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월드컵이 시작된 지금, 비엔날레가 할 수 있는 일은 관람객들이 머물 호텔에 홍보 팜플렛 비치 외엔 아무 것도 없다.

비엔날레 일부팀에선 마지막 홍보전략으로 호텔에 셔틀버스를 운행하자고 제안했으나 관리예산팀은 "어차피 셔틀버스 운행해 봤자 관람객이 오지도 않을텐데"라며 예산 낭비일 뿐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더 이상 월드컵을 통한 마케팅을 기대할 수 없다는 의미다.

비엔날레와 월드컵 공동 마케팅 전무
손에 쥐어줘도 먹을 줄 모르는 시행정


한편 월드컵 준비팀은 비엔날레를 철저히 외면하면서 관광특수만 노렸다. 그 결과는 당연히 '실패'다. 여행사들마다 "관람객들이 광주 와도 특별히 갈 곳이 없기 때문에 이곳에 머물려고 하지 않는다"며 경기 관람 후 대부분 제주도나 서울로 돌아가 쉴 계획이라고 밝혔다. 광주지역 여행사 중 중국관람객을 유치하는 곳은 한 곳밖에 없다.

그나마 예약자 수도 초기 650명에서 97명으로 대폭 줄은 상태다. 나머지 관람객들은 모두 다른 지역 여행사와 예약, 경기 때만 잠깐 광주를 방문할 것으로 보인다. 선수들과 보도기자 등 경기 관계자들이 머물 호텔측도 경기관람을 위해 머무는 기간 외엔 관광객을 끌어 들일만한 이벤트가 없어 관광특수를 노리긴 무리다고 밝혔다.

당초 계획됐던 공동마케팅조차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월드컵 준비팀은 엉뚱한 곳에서 '문화월드컵'를 외치고 있다. 남도의 특성을 알린다는 차원에서 준비된 공연과 행사는 100여가지. 그러나 예향 도시 광주를 기억하게 할만한 특별한 것은 없다. 이에 다른 지역과의 차별성 없다는 백화점식 나열 행사들 뿐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월드컵 관련 회의 때마다 '문화'라는 단어를 거론하면서 무엇을 논의했는지 의문스러울 정도다. 그동안 예산부족 등으로 번번히 행사가 취소되는 광주시는 외국 관광객의 성향을 면밀히 분석하고 이에 걸맞는 각종 이벤트와 함께 전남과 연계한 관광상품개발 등을 제안받았으나 진행된 것은 없다.

다시 말해 전문 마인드 없이 겉핥기식 행정이 굴러온 복을 발로 찬 셈이다.
그나마 문화월드컵의 모토가 살아있는 곳을 억지로 찾으라면 가로수 아래 심어져 있는 꽃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그러나 이 꽃들도 그 생명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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