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앓이
아파트 앓이
  • 문틈 시인
  • 승인 2019.12.12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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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50퍼센트가 아파트에서 산다고 한다. 아파트 살이가 이렇게 큰 호응을 얻는 것은 프라이버시, 취사, 냉난방, 방범을 용이케 해줄 뿐만 아니라 재산증식 수단으로서 이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지만 시멘트로 지어 올려진 아파트의 외양이 어딜 가나 똑같은 모양으로 콘크리트 숲처럼 서있는 모습은 너무 딱딱하고 답답해 보인다. 색깔도 한결같이 우중충하다. 자연의 부드러운 곡선과는 달리 날카로운 칼날같은 직선들이 시야에 큰 부담을 준다.

신(神)은 자연을 만들고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다는데 인간이 만든 아파트 천국(?)의 모습은 괴이하기까지 하다. 천편일률적인 네모로 각진 아파트들을 보고 있노라면 사람의 심성마저 더욱 모질게 하는 것만 같다.

더 큰 문제는 아파트가 친환경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는 사실이다. 나는 살아오면서 열 번쯤 이사를 다녔는데 아파트에서 아파트로 옮겨 다녔다. 학군, 더 큰 집, 자연환경 같은 이유를 앞세워 살림살이를 여러 차례 이삿짐 트럭에 실었다.

지금은 골프장 바로 옆 아파트라서 숲을 볼 수 있고 무엇보다 자동차 소음이 안 들리는 절 속 같은 고요함이 마음에 든다. 살아본 아파트 중에서는 가장 쾌적하다는 생각이다.

그렇지만 아내가 말하듯 다 좋은 것은 없는 모양이어서 이 아파트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청소를 하면 거실 바닥에서 검은 먼지가 묻어나온다. 이전에 살았던 아파트들에 비해서는 덜한 편이긴 하나 걸레에 묻은 먼지를 보면 정나미가 뚝 떨어진다.

나는 사람들에게 자주 묻는다. ‘아파트 청소를 하면 먼지가 묻어 나와요?’ 다들 그렇다며 별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다. 내가 사는 아파트만 그러는 것이 아닌가보다.

최근 영국의 학자들이 연구한 바에 따르면 큰 도로에서 양 옆으로 50미터 안에 있는 주택들은 먼지로 인해 생기는 기관지, 폐 질환이 그렇지 않은 곳에 비해 20퍼센트나 더 높게 나왔다고 한다. 런던의 부자들이 멀리 교외에서 사는 까닭을 알 것도 같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나라는 역세권이니 뭐니 해서 외려 도로에서 가까운 아파트를 선호하고 주택값도 높게 나간다는 것이다. 환경 같은 것은 거의 고려 대상이 아니다. 버스나 전철역에서 한 걸음이라도 더 가까이 있느냐를 따진다.

도로가에 있는 아파트들을 볼 때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집안으로 밀어닥치는 소음과 먼지 속에서 어떻게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지 궁금해진다. 아파트의 문제는 집안에도 있다. 이른바 아파트 증후군 즉, 포름알데히드 같은 휘발성 물질이 끊임없이 새나온다.

새집뿐만 아니라 헌집도 마찬가지다. 시끄럽다고, 춥다고 문을 닫고 살면 아파트 집안 공기가 여러가지 유해물질로 금방 탁해진다. 자주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해야 하므로 번거롭다.

여러 모로 편한 아파트이지만 제대로 살기가 이처럼 만만치 않다. 내가 별나게 까탈스럽다 할 수도 있겠지만 아파트는 환경 측면에서 볼 때 공해 건축물에 가깝다.

옛날 로마 사람들은 술을 마실 때 납으로 된 술잔에 부어 마셨다. 로마인의 평균 나이는 40대에 불과했다. 납에서 흘러나온 중금속에 신체가 오염되어 수명을 단축시킨 것이다. 하긴 환경 공해를 따지고 든다면 아파트 말고도 식품, 물 같은 식품들도 위험군에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지금 내가 아파트에 반대를 하는 것인가? 아니다. 도시화는 문명의 진화 산물이고 좁은 땅에 아파트 같은 집합건물이 필연적으로 등장하기 마련이다. 아파트를 짓는 건축자재의 엄격관리, 아파트 주변의 도시숲 조성, 소음 차단벽 같은 보다 세밀한 친환경 조성에 관심을 갖는다면 아파트가 사람살이에 지금보다 훨씬 나아질 것으로 나는 믿는다.

‘몇 평에 사는데요?’ ‘값이 얼마 나가는데요?’ 이런 삭막한 질문 대상에서 비껴나 사람 살기 좋은 친환경 아파트를 지어야 한다.

매일 새나오는 집안의 공해물질, 삭막한 주변 풍경, 소음과 먼지에 묻혀있는 아파트. 그런데도 날이 새면 몇 억원이 올랐다는 둥 이런 데 정신이 팔려 있다. 그러니 정작 아파트 살이의 필요조건이 외면당하고 있다.

얼마 전 아파트 한 채에 26억원에 분양한 광주의 모 아파트가 순식간에 다 나갔다고 한다. ‘나 모모 아파트에 살아요.’ 이제 광주에서도 이런 말이 나오게 생겼다.

값비싼 아파트가 등장하는 것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친환경 아파트는 인권의 도시로 알려진 광주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어떨까. 그것이 인권의 바탕인 생명권 존중과 맞닿아 있기에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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