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를 읊는 시간
시조를 읊는 시간
  • 문틈 시인
  • 승인 2019.10.31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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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적 마을 어른들이 동각에서 혹은 냇둑에 앉아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길게 빼면서 시조를 읊조리는 것을 가끔 보았다. 학교에서 공부하기도 전에 시조를 그때 귀에 익혔다.

시조는 시골 나이 드신 분들이라면 한 수 뽑는 것이 그닥 낯선 일이 아니었다. 창가도 아니고 판소리도 아니고 가락에 얹어 부르는 길게 빼는 시조는 시골의 한가한 자연 경치를 배경으로 인생의 애환을 노래하는 데 딱이었다. 나에겐 어른들의 시조 가락에 펼쳐진 그런 시골 풍경이 익숙하다.

그러나 풍류의 한 자락이였던 시조가 안타깝게도 지금은 마을에서 거의 다 사라졌다. 시조를 읊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모르면 몰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시조라는 우리 고유의 문학작품은 낯선 것이 되어버린 듯하다.

시조 읊는 사람을 보기 어려운 것은 여러 까닭이 있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네 삶이 여유가 없이 팍팍해졌다는 것을 먼저 들 수 있을 것이다. 옛 선비들은 세상살이의 희로애락을 시조 한 수 읊는 것으로 풀어내는 것이 예사였다.

여기, 내가 기억하는 중에 몇 수의 시조를 예로 든다. 고려가 망하자 충신인 길재(吉再, 1353~1349)는 조선의 관리 임용 제안을 마다하고 시골로 내려가 고려의 멸망을 슬퍼하며 시조를 읊었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들아드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 데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이 시조 한 수에서 고려의 마지막 장면을 보는 듯 가슴이 아린다. 조선의 유혹을 뿌리치고 낙향하여 늙은 모친을 돌보며 후학을 양성하는 길재의 곧고 단아한 모습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흔히 기생으로 알고 있는 황진이를 나는 조선조에서 가장 으뜸가는 시인으로 꼽는다. ‘청산리 벽계수’는 황진이가 개성 최고의 지성 서화담에게 보내는 당당한 자기 선언 같은 느낌이 있다.

청산리 벽계수는 초장, 중장, 종장 앞 머리마다 서화담의 학문연구를 연상시키는 듯 한자(漢字) 어귀를 쓰고는 이어 아녀자들이 쓰는 한글로 된 언문 단어를 써서 내가 당신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알 만큼은 아는 여자임을 은연중 드러낸 연시다.

황진이의 시조 중에서 나는 ‘동짓달 기나 긴 밤’을 엄지 척으로 친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 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른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비구비 펴리라’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는 여인의 마음을 이토록 절묘하게 쓴 시조는 다시 찾아보기 어려울 성싶다. 외로이 홀로 정든 님을 기다리는 긴긴 밤, 나는 님이 언제 올지 모르지만 일 년 중 가장 긴 동짓달의 밤 한 가운데를 잘라내어 봄 이불 속에 고이 넣어두고 있다가 따스한 봄에 님이 오면 그 시간을 꺼내 펴놓고 오래 님과 함께 밤을 지내고 싶다는 사랑의 절절한 마음이 가슴을 친다.

무엇보다 시간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잘라내어 따스한 봄 이불에 넣었다가 펴낸다는, 시간을 물질로 만들어낸 솜씨는 간절하고 빼어나다.

이런 입에 착 달라붙는 시조형식은 현대시조에 와서 종장의 첫머리 석자만 지키면 나머지 초장, 중장, 종장은 시조의 고유한 자수율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게 되었고, 삼장으로 된 형식마저도 거의 해체되다시피 되었다.

시조가 우리 입에서 사라져버린 두 번째 이유이지 싶다. 옛시조 형식을 일본의 하이쿠처럼 그대로 살려놓은 채 발전시킬 수는 없었을까. 일본의 하이쿠는 글자수가 5,7,5로 모두 17자로 된 전통 한 줄짜리 시다. 지금도 수 십 만개의 하이쿠 클럽이 활동 중으로 사랑받는 시다.

감상자들은 물론 시조를 쓴 현대 시인들조차 자신의 작품을 암송하지 못하는 것은 전통 형식과 자수율이 깨진 때문이 클 것이다. 그런 탓에 시인과 시조 사이에는 거리가 있어 보이게 한다. 사실 정형 시조의 자수율에 맞추어 이미지, 의미, 리듬을 담아내는 뛰어난 시조를 쓰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황진이 같은 고수라면 몰라도.

고려와 조선이 남긴 시조들을 보면 문학성이 뛰어난 작품이 참 많다. 생각해보면 전통 시조의 해체로 탄생한 현대 시조가 국민시가 될 수 있는 길을 막아버린 것만 같아 생각할수록 아쉬움이 크다.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평생에 우리 전통의 옛시조를 한두 수쯤 암송할 수 있는 여유를 가졌으면 한다. 나이 들어서 사는 일이 적적할 때 시조를 암송하노라면 삶의 위로를 받을 것이다. 시조를 잃어버린 사회는 암만 해도 허전하고 쓸쓸하다.

‘백설이 자자진 골에 구름이 머흐레라/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고/ 석양에 홀로 서서 갈 곳 몰라 하노라.’(이색, 李穡, 1328~1396).

산골짜기에는 겨울 흰눈이 녹고 짙은 구름이 험악하게 몰려드는구나, 반가운 매화는 이 봄 어디메 피었느냐, 이제 나이 들어 혼자된 몸 갈 곳을 모르겠구나. 위안이 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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