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슬픈 뉴스
날마다 슬픈 뉴스
  • 문틈 시인
  • 승인 2019.05.12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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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각오로 악착같이 살면 될 것을” 하고 자살자를 타박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편으론 “오죽하면 하나뿐인 목숨을 끊겠느냐”고 동정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한마디로 말해서 남의 자살을 놓고 함부로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은 주제넘은 짓이다.

인간은 타인을 영원히 이해하지 못한다. 이것은 불변의 진실이다. 절박한 자살자의 마음을 누가 온전히 이해하랴. 그러므로 죽을 마음으로 살면 될 것을, 하고 말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죽은 자에게 욕된 일일 수도 있다.

생명이란 하늘로부터 받은 귀하고 신성한 것이다. 이를 해치는 것은 마땅히 벌 받을 일이다. 그렇긴 하나 살아가면서 직면하는 일들 중에는 필사적인 상황도 있다. 죽고 싶을 정도로 절망적이고 비참한 지경에 처하는 경우도 있다는 말이다.

엄청난 빚과 생활고로 자신의 존엄을 도저히 지킬 수 없어 생을 마감한 사람들을 우리는 과연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 ‘자살은 없고, 타살이 있을 뿐이다’고 하는 철학자도 있다. 자살조차도 깊은 뜻에서 보면 환경이라는 자살요인이 있으므로 타살이라는 것이다.

그런 관념론을 떠나서 나는 신문에 자주 나오는 자살 뉴스에 늘 가슴이 아프다. 얼마 전에도 어린 아들 딸을 둔 30대 부부가 차 안에서 집단 자살했다. 나는 그날 너무 슬퍼서 도무지 걸음을 뗄 기운이 나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다리에서 자살을 시도하던 한 모녀는 사람들의 신고와 구조요원의 설득으로 자살을 멈추고 이 세상으로 되돌아왔다.

요새는 하도 자살 뉴스가 잦아서 그런지 사람들은 그런 비극적인 뉴스를 접하고도 덤덤하게 넘어간다. 개인도, 사회도, 국가도 어느 누가 자살했대서 1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나는 이런 비정한 현실이 자살자에 대한 슬픔만큼이나 가슴 아프다.

지금 이승만 대통령은 거의 적폐 수준으로 폄하되고 있지만 그분의 역사적인 평가는 차치하고, 그분은 대통령직에 있을 때 자살 뉴스를 보고 “내가 정치를 잘못해서 백성이 목숨을 끊었다.”고 애도한 사실을 나는 기억한다.

나는 그 한마디 때문에 그분을 쉽게 욕할 수 없다. 어느 정치인이 세계 최고로 많은 이 나라의 자살자에 대해 이렇다 할 한마디를 한 적이 있던가. 내가 만일 당국자라면 자살한 국민의 장례식장에 국가의 이름으로 조화를 보내겠다.

한 사람이든, 가족이든, 누구든 이 나라 사람이 자살했다면 국가가 품어주고 자살자의 영혼을 위로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는 한 해 인구 10만명당 24.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 국가’라는 오명을 입고 있는 않는가.

영국에는 ‘외로움부’라는 정부 부서가 있다고 한다. 영국 정부는 ‘외로움’을 심각한 사회 문제로 인식했다. 2018년 1월 영국 총리는 세계 최초로 외로움부 장관을 임명했다. 외로움부 장관은 범정부 차원에서 외로움 대응 전략을 마련하기 위한 책임자(Chairman)다. 외로움이라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범정부 차원에서 협업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생명존엄부 같은 것을 두어서 자살을 막는 노력을 할 수는 없을까.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전 세계를 구하는 것이나 진배없다. 자살을 방치하는 것은 알게 모르게 생명 경시 사상을 퍼뜨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나뿐인 생명, 한번뿐인 인생, 잘 살든, 못 살든, 이 나라 모든 백성의 생명을 국가공동체는 마땅히 지켜주고 안아주어야 한다. 현 정부는 국민복지에 무척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 복지 개념에 자살을 막고 보듬어주는 정책도 들어 있어야 한다고 본다.

만일 우리가 어느 한 사람의 자살에 대해 국가의 힘으로 막을 수 있다면 이 나라는 행복한 나라가 될 것이다. 자살의 원인을 줄이는 데 전국가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 국가는 외부의 적으로부터 뿐만 아니라 내부의 적으로부터도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한다.

그러려면 억울한 일이 없어야 하고, 궁핍, 핍박, 그리고 질병으로부터 지켜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생명 존귀 사상을 일상화해야 한다.

영국 시인 존 던은 노래한다. ‘누구든 그 자체로서 온전한 섬은 아니다./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전체의 일부이다./만일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면/유럽의 땅은 그만큼 작아지며,/....../ 어느 누구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왜냐하면 나는 인류 전체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죽어도 좋은 인생이란 없다. 죽을 때까지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살아내야 한다. 삶은 누구에게나 ‘극한 직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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