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문명의 발상지 그리스를 가다(5)
서구 문명의 발상지 그리스를 가다(5)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 승인 2018.01.29 0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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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감옥 (2)
소크라테스 조각상

소크라테스는 『변론』에서 서두를 이렇게 꺼냈다.

“내 나이 일흔이 넘었지만 재판정에 나온 것은 오늘이 처음입니다. 저는 과거의 고발인에 대해 먼저 변호하고 나서 최근 고발인에 대하여 변론하겠습니다. 왜냐하면 과거 고발인들은 사람 수가 많을 뿐 아니라 오래전부터 시종 근거 없는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나를 무고해왔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아니토스를 위시한 고발인보다 훨씬 더 무섭습니다.”

이어서 소크라테스는 과거 고발인들이 비난한 내용에 대해 말한다. 이는 멜레토스의 고발내용이기도 하다.

“소크라테스는 주제넘게도 천상과 지하의 일들을 연구하고, 사론(邪論)을 정론으로 만들뿐만 아니라, 이것들을 남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이 비방의 원조가 희극 『구름(Clouds)』을 쓴 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라고 말한다. 『구름』은 소크라테스가 46세 때인 BC 423년 봄에 초연되었다. 이 『구름』에서 소크라테스는 주연으로 나온다. 소크라테스는 돈을 받고 젊은이들을 교육하는 ‘사색학교(Thinkery)’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바구니에 탄 채 공중에 떠서 하늘을 열심히 바라보며 연구하고, 그의 제자들은 지하를 탐구하고 있다. 또한 “아들이 부모를 때릴 수 있다(당시 그리스에서는 심각한 범죄였다)”는 궤변을 그럴듯한 논증으로 증명하는 젊은이들을 타락시키는 소피스트였다. 그리하여 학생의 아버지는 화가 나서 사색학교에 불을 질러 완전히 무너뜨린다. 이 순간 소크라테스는 숨이 막혀 컥컥거리며 제자들과 함께 탈출하면서 연극이 끝난다.

이 『구름』으로 인해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에서 첫 손에 꼽히는 소피스트로 인식되었고, 평범한 아테네인들에게 위협적인 존재였다.

BC 423년에 『구름』이 상영되었을 때 소크라테스는 극장에 있었다 한다. 관객들이 무대 위의 소크라테스와 실제의 소크라테스를 비교할 수 있게끔 연극이 상영되는 동안 줄곧 서 있었단다. 이 때 소크라테스는 그냥 웃어넘길 수 있었다.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면서 거짓과 비방에 너그러웠다.

하지만 『구름』의 소크라테스 모습에는 전통적인 가치관이 무너질까봐 아테네의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모든 것, 즉 기만적인 수사법과 도덕적 상대주의, 위험한 과학적 연구, 무신론 등이 반영되어 있었다. 1)

소크라테스는 배심원들 앞에서 『구름』은 사실이 아니라고 변론했다. 자기는 자연철학자도 아니고 자기가 돈을 받고 사람을 가르치는 소피스트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희극 『구름』은 소크라테스 이미지를 계속하여 나쁘게 만들었고, 특히 BC 404년에 아테네가 스파르타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인 BC 399년, 즉 『구름』이 상영된 지 24년 후에 그 비방이 되살아나 소크라테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였다.

한편 소크라테스가 살던 시절에는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펴고 상대방의 주장을 격파하는 변론술이 유행했다. 변호사가 따로 없던 시절에 변론술은 재판에 이기기 위해서 필수적이었으며, 또한 민회에서의 연설을 잘 하는 정치가는 명성을 얻었다.

그래서 아테네의 젊은이들은 출세하기 위해 앞 다투어 수사학을 배웠다. 이런 변론술을 가르치는 사람이 바로 소피스트였는데 이들은 수사학 · 웅변술을 가르치면서 그 대가로 돈을 받았다. 철학이 상품화된 셈이다.

대표적인 소피스트가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말한 프로타고라스이다. 그는 인간의 주관성을 설파하면서 상대적 다원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알렉산드리아와 해적의 차이를 예를 들어보자. 알렉산드리아는 수 많은 배와 군사로 다니니 대왕이고, 해적은 배 한 척 혹은 소규모로 다니니 해적이 된 것이라는 원리이다.

이는 텔레마쿠스의 ‘이기는 것이 정의’라는 극단으로까지 나아가게 되었는데, 소크라테스는 이를 경계하였다.

요컨대 아테네 사람들은 소크라테스를 소피스트로 취급한 반면에,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가 아니라고 변론했다.

1) 콜라이아코 지음 · 김승욱 옮김, 소크라테스의 재판, 작가정신, 2005, p 81-83

2) 원래 소피스트는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뜻이다. 철학(哲學)을 의미하는 필로소피(philosophy)의 어원도 ‘지혜(Sophia)를 사랑하는 사람’에서 유래했다.(정재영 지음, 철학, 도시를 디자인하다 2, 풀빛, 2008, p 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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