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정의롭고 관용하여’ 함께 가자(10)
더불어 ‘정의롭고 관용하여’ 함께 가자(10)
  • 이홍길 고문
  • 승인 2018.01.09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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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길 고문
이홍길 고문

북한이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하여 성공적인 대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우리민족 끼리를 내세우는 북한이 정치, 군사와 특별한 관계가 없는 스포츠 행사에 참가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만, 북핵문제로 경색된 남북관계를 염두에 두면, 낙관할 수만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현실은 당위로만 풀리지 않는 것이 한국 현대사에는 더욱 두드러진다. 해방된 땅이 점령지가 되고 민족 구성원의 열화와 같은 소망에도 불구하고 남북은 분단되고 분단을 막으려는 좌우 지도자들은 정치에서 배제되었던 것이다.

냉전으로 조성된 잘못된 진영논리가 아직도 잔명을 유지한 채, 종북 모함을 서슴지 않는 사람들이 양두구육의 지식인 행세를 하는 현실이 엄존한다. 북한의 평창대회 참가를 한미동맹의 이간질 우려 운운으로, 무식을 나라사랑으로 위장하는 몰골마저 횡행한다. 동맹의 연대가 그렇게 허약한 것이라면 그러한 동맹을 체결, 유지해 온 나라의 체통은 어찌된 것일까 하고 먼저 자문할 일이다.

왜곡된 역사는 왜곡된 삶을 조성하고 왜곡된 생각들을 생산한다. 그런데 분단 70년이 넘었다. 분단의 생채기가 미만한 역사와 현실을 목격하면서도 그 상처를 덧내는 속내는 무엇일까? 분단은 열린 우리들의 미래를 차단하고 후대들의 자유로운 발전을 저해한다. 대한민국의 대륙진출과 해양웅비를 위축시키면서 반도에 웅크리며 고사할 수밖에 없는 번데기 신세를 예고한다. 누구의 식욕을 돋우려고 우리 스스로가 번데기가 되려고 몸부림치는가를 숙고하고 숙고할 일이다.

이제 분단 70년을 벗어던져야 한다. 현실에서 어렵다면 마음속에서라도 극복해야 한다. 분단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월남인들이 되고 월북인들이 되었는가? 전화가 종식 된지도 70년이 넘었는데도 만나야 할 사람들을 못 만나게 하는 권력들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권력이란 말인가? 인민주권, 민주권력은 권력자들이 가지고 노는 노리개란 말인가? 인민권력의 반환을 요구해야 한다. 남북한의 인민주권 연대, 민주권력의 연대를 추동해야 한다. 남한에서 살아 온 우리들은 북에서 피난 온 월남자들의 애환만 생각했지 월북자들의 진정성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이극로, 홍명희, 안재홍, 김원봉, 김규식, 여운형의 가족 등이 북한에서 살 수밖에 없었던 사정과 함석헌, 장준하, 리영희, 이호철 등이 월남한 사정은 분단의 결과였는데, 그것은 인민의 결정도 아니었고 민족사적 당위도 아니었으며, 결코 세계사적 필연도 아니었다. 권력자들의 권력욕과 그들의 정치적 음모의 결과였다. 위기에서 더욱 현명해져야 할 사람들이 위기에서 권력에 급급한 소수자들에게 우리 모두는 농락당하고, 그것을 깨달았을 때 칼자루는 저들의 손에 쥐어졌고 우리 모두는 무력해져 각자도생마저 어려워져 버렸다.

1960년 4.19 민권혁명의 또 다른 얼굴은 공포와 불안을 극복하고 우리들의 열등감을 벗어난 해방 후의 첫 의거였다. 통한의 분단을 직시한 학생운동의 구호는 “오라 남으로, 가자 북으로”였다. 그러나 분단을 허물기 위한 자세를 정비하기도 전에, 그 전략전술을 세련시킬 시간도 갖기 전에 권력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박정희 도당들에게 젊은 민족·민주 역량도, 분단 극복의 에너지도 압도당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남북 권력자들이 분단의 현실을 희롱하는 가운데 정권 간의 소통은 경색되고 급기야는 동포들의 소통마저 막힌 채 생존을 위한 탈북 소동만이 소통뉴스가 되고 있다.

어렵더라도 동포끼리의 소통이 준비되어야 한다. 물론 ‘우리민족끼리’운동과 같은 평양정권의 통전에 의해서 추동되는 운동도 아니고 북녘 땅에 삐라를 날려 보내는 탈북집단의 소통도 아닌, 남북정권에서 자유로운 그야말로 순정적 소통세력이 이제 준비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북청년단과 같은 권력 앞잡이가 아닌, 그냥 생존하기 위해서 억압을 피해서 월남한 동포들의 진실을 월남자들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공산당과 평양권력을 확장하기 위해서가 아닌, 민족의 자존심과 양심의 자유를 위해서 월북한 인사들의 진실을 알아 그들의 마음을 통해 남북 소통의 틈바구니를 찾아야 한다. 중국의 민주혁명인 신해혁명의 원동력은 해외 화교와 유학생들이었다. 한국의 새로운 분단극복의 한 에너지로 교포와 유학생 역량을 기대해 보는 것도 가능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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