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문명의 발상지 그리스를 가다(2)
서구 문명의 발상지 그리스를 가다(2)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 승인 2018.01.08 09: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테네 아레오파고스 언덕

이제 아크로폴리스를 내려온다. 현관인 프로필라이아에서 서쪽 출입구를 내려다보니 오른 편 아래 바위에 사람들이 꽤 많다. 현지 가이드에게 물으니 그곳이 아레오파고스란다. 아레오파고스라면 사도 바울이 설교했던 곳 아닌가.

프로필라이아에서 내려다 본 서쪽 출입구

서둘러 서쪽 출구로 내려가서 오른 편으로 조금 가니 아레오파고스 언덕이 있다. 언덕에 올랐다. 여기에서 보니 아크로폴리스가 잘 보인다. 프로필라이아 오른편에 있는 아테나 니케 신전과 왼편의 아그리파 기념비도 제대로 볼 수 있다.

아테나 니케 신전은 아테네 시민들이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세운 신전이다. 그런데 전쟁에서 늘 승리를 바라던 아테네 시민들은 승리의 여신이 아무데도 가지 못하도록 날개를 잘라내고 이 신전에 모셨단다. 아그리파 기념비는 원래 BC 178년 페르가몬 왕국의 에우메네스 2세가 판아테나 제전의 전차경기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세운 것인데, BC 27년 로마제국의 아우구스투스 사위인 아그리파에게 바치는 기념비로 바뀌었다.

아레오파고스 언덕에서 본 아크로폴리스 현관 프로필라이아

이윽고 아레오파고스 언덕 (Areopagus Hill) 안내판을 보았다. 여기에는 3가지가 적혀 있다. 첫째 아레오파고스의 위치, 둘째 아레오파고스의 유래, 셋째 바울의 전도와 그리스 최초의 주교 디오누시오이다.

아레오파고스 언덕

안내판 첫 부분에는 “아레오파고스는 해발 150미터의 아크로폴리스와 프닉스(Pnyx), 고대 아고라(Agora) 사이에 있는 해발 115미터의 언덕”이라고 적혀 있다. 즉, 아크로폴리스가 아테네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그 다음에 아레오파고스, 그보다 낮은 곳에 프닉스와 콜론 아고라가 위치하고 있다.

아테네도 처음에는 왕이 다스렸다. 그러다가 귀족들이 왕의 권력을 약화시키고 도시를 다스렸다. 귀족정치를 한 곳이 바로 아레오파고스였고, 권력기관을 아레오파고스평의회라고 한다. 아레오파고스 평의회는 임기 1년의 아르콘(행정관)을 선출하였고, 정치와 재판을 관장했다. 아르콘은 아테네의 일정한 재산을 가진 귀족들 가운데 선출되었는데, 아르콘은 1년의 임기가 끝나면 아레오파고스 평의회의 종신직 의원이 되었다.

프닉스는 그리스어로 ‘숨 막히는’이라는 뜻인데, 민회(民會)가 열린 곳이다. 즉, 아테네 민주제가 탄생한 장소이다. 아고라(Agora)는 ‘함께 모이다’라는 의미의 집회소이다. 이곳은 시장이었고 토론 장소여서 민주정치 1번지가 되었다.

이렇게 그리스 정치는 중심지가 높은 언덕인 아크로폴리스에서 중간지대인 아레오파고스로, 이후 더 낮은 곳인 아고라로 이동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귀족정치에서 민주정치로 옮겨가는 과정은 험난했다. 어느 나라나 그러듯이 귀족들은 자기 이익을 위해 권력을 휘둘렀다. 귀족과 평민의 갈등이 심해지자 아테네인들은 성문법을 희망했고, BC 621년에 드라콘이 법을 만들었다. 드라콘은 빚을 갚지 않으면 당사자와 그 가족이 모두 노예가 되어야 한다고 법률로 정했으며, 살인 · 방화 · 절도 등을 하면 무조건 사형에 처하도록 명문화했다. 심지어 과일 하나를 훔쳐도 사형이었다. 이 법은 평민에겐 엄청난 악법이었다.

BC 594년에 솔론은 개혁을 하여 시민에게 어느 정도의 권한을 부여하였고, BC 507년에는 클레이스테네스가 아고라에 시민이 모여 그 수가 6천을 넘으면 10년간 국외 추방시키는 도편추방제를 도입했다. BC 434년에 페리클레스는 시민의회의 지위를 높이고 아레오파고스평의회는 종교에 관한 사무만을 처리토록 했으며 투표 참여계층도 확대했다. 이로써 아테네는 명실상부한 민주정치가 이루어졌다.

이어서 안내판에는 ‘아레오파고스는 아레스에서 유래했다’고 적혀 있다. 아레오파고스는 ‘아레스(Ares)’와 ‘파고스(언덕)’의 합성어로 ‘아레스의 언덕’이라는 뜻이다. 아레스는 살육을 좋아하는 전쟁의 신이었다. 한번은 포세이돈의 아들 할리로티오스가 아레스의 딸 알키페를 겁탈하려 했다. 이에 격분하여 아레스는 할리로티오스를 때려 죽였다. 그러자 포세이돈은 신들의 법정에 아레스를 고발하여 이곳에서 재판이 열렸다. 신들은 아레스에게 무죄판결을 내렸다. 이후 아레오파고스는 살인 · 신성 모독 · 방화 등을 다루는 재판소가 되었고 오늘날에도 그리스 대법원을 ‘아레오파고스’라고 부른다.

아레오파고스 언덕에 있는 안내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