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쇄원 원림은 창건 시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소쇄원사실(瀟灑園事實)을 통해 1519년경 소쇄정(瀟灑亭)이라는 초정에서 시작하여 그의 아들 양자징과 양자정에 의해 자리를 잡아나갔음을 알 수 있다.
광풍각(光風閣)은 ‘비 갠 뒤에 부는 화창한 바람[光風]’이라는 뜻으로 손님을 위한 사랑방이다.
제월당(霽月堂)은 ‘비 개인 하늘의 밝은 달[霽月]’이라는 뜻으로, 주인을 위한 집이며 여기에는 1548년 하서(河西) 김인후가 지은 <소쇄원 48영시> 등이 있다.
소쇄원 원림에 들어서면 먼저 대봉대(待鳳臺)가 보인다.
대봉대는 양산보가 조성하였다.
겨울의 북풍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 애양단이라는 담장이 있다. 담장 아래 터진 구멍으로 흘러든 물이 암반 위에서 다섯 굽이를 이룬다고 해서 붙여진 오곡문(五曲門)이 있다. 이 담장을 괸 돌은 선녀가 베를 짜던 베틀바위인 지기석(支機石)이라 하며 지석마을의 명칭도 여기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한다.
현재 이 원림은 조선시대 민간 원림의 원형이라 평가되고 있으며 국가 사적 304호로 지정되어 있다./김필호 시민기자
저작권자 © 시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