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실은 '팥죽' 배달합니다
사랑실은 '팥죽' 배달합니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3.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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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바우 시장의 철가방 '팥죽 아저씨'

매달 2, 4, 7, 9로 끝나는 날은 말바우 시장(광주시 북구 중흥동)이 서는 날이다. 광주 뿐만 아니라 담양, 옥과, 화순 등지에서 몰려든 상인들만 해도 족히 1천명이 넘는다.

백화점과 마트들 때문에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재래시장이지만 그래도 말바우 시장은 아직 건재하다. 변함없이 이곳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 중에도 장안의 인기는 철가방 아저씨 정성주씨(44). 오전 11시 30분만 되면 시장 곳곳을 누비는 정씨의 철가방 안엔 다름아닌 따끈따끈 김이 나는 '팥죽' 대여섯 그릇이 들어있다.


한그릇에 천원, 팥죽으로 '정' 나누기
주고객층 '할머니들'의 특별한 외식


"팥죽이요. 팥죽 드실 분!" 정씨가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며 이렇게 외치면 상인들이 하나둘 정씨를 불러세운다. 한그릇에 1천원 하는 팥죽은 부담없이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별미'.
"손님들이 시도 때도 없이 오는데 자리 비우면 손해죠. 그렇게 하루종일 앉아서 장사하시는 할머니들을 위해 애기 엄마가 이런 배달 형식을 개발해 냈어요"

유리장사를 하다 3년 전 '매일팥죽' 간판을 내 건 정씨는 오후 2시까지는 쉴 틈 없이 움직여야 한다. 굳이 배달을 주문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정씨는 기다리는 사람은 많기 때문. 날씨 좋고 잘 팔릴 때는 7~80그릇도 팔린다고.
정씨가 말바우 시장에 터를 잡은지 10년. 그는 재래시장이 살아남는 것은 자신의 주고객층이기도 한 '할머니들' 덕분이라고 장담한다.

"할머니들 덕분에 재래시장 건재"
이문 남길 생각 없어…"그저 열심히 살 뿐"


"할머니들이 시골에서 조금씩 직접 해오는 물건들 절대 무시해선 안되요" 이렇게 삼삼오오 앉기 시작하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장사진을 이룬다. 이는 대인시장이나 양동시장에서 보기 힘든 광경이기도 하다.

"장날 맞춰 돈벌기 위해 이곳저곳 떠도는 장사꾼들이 많을수록 재래시장은
죽어요" 정씨는 다른 재래시장들이 도태되는 이유는 백화점이나 마트 등의 상업적인 장사꾼들과 차별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제가 보기에 저 물건으로 차비나 나올까 싶을 정도의 것도 눈에 띄어요"

하지만 할머니들은 하나 더 팔기보다 사람 구경하고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새벽밥 지어먹고 이곳을 찾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물론 점심 겸 간식으로 먹는 팥죽 한 그릇도 할머니들의 빼놓을 수 없는 '특별한 외식'이다.

한그릇에 1천원씩 팔면 남는 게 하나도 없을 성 싶다. 하지만 정씨는 "죽어서 이고 지고 갈 것도 아닌데 많이 버는 게 중요한 건 아니죠"라며 "열심히 산다"는 생각에 즐거운 마음으로 반죽을 빚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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