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일곱에 찾아온 '봄처녀의 꿈'
스물일곱에 찾아온 '봄처녀의 꿈'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3.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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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년 대학생시위 중 화상 입은 도미선씨>

어느덧 13년이 지난 일이지만 아직도 시대의 아픔 속에서 잊혀지지 않는 이름 하나. 도미선(여.27)
그의 이름은 어쩌면 ‘고통’의 동의어였다.

89년 당시 14살 중학생이었던 도씨에게 닥쳤던 첫 번째 불행은 ‘불’이었다. 당시 백담사에 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서울로 돌아온다는 소식에 이 지역 대학생들이 아침 일찍 민정당사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였고, 이들이 던진 화염병 하나가 잘못 날아가 등교버스를 기다리도 도씨를 덮치면서 그녀의 가혹한 운명이 시작됐다.

온몸에 심한 화상을 입고 3일을 넘기기 힘들 것이라는 의사의 진단이 있었다. 손가락도 타들어 잘려나갔다. 그러나 도씨는 끈질긴 생명력으로 이겨냈고, 이후 계속되는 수술도 잘 견뎌냈다.
하지만 그녀의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도씨의 아버지가 병원으로 가는 길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던 것이다. 도씨는 그때가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한다.

'고통' 속에서도 약국에서 일해가며 틈틈이 자격증 취득
인권운동센터 제안으로 지난 2월 북구청 공무원 특채


도씨는 이 역시 주위사람이 놀라워할 정도로 잘 이겨냈다.
“목포대 사학과를 나온 뒤 한동안 약국에서 일을 하기도 했어요. 그래도 꿈은 따로 있어서 컴퓨터 자격증도 따고 나름대로 공부를 했었죠.”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그의 바람은 일단 이뤄졌다. 일용직이긴 하지만 지난달 14일부터 광주시 북구청에서 전화교환 업무를 시작하며 꿈에 그리던 공무원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아직도 배우는 중이예요.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6시에 퇴근해요. 급여는 전보다 적지만 훨씬 안정감이 있고, 일도 만족하구요.”
그녀의 얼굴엔 아직 당시의 아픔이 남아 있지만, 대신 목소리로 구청의 얼굴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것이다.

도씨의 취직은 지난해 여름부터 광주인권운동센터(회장 정근식)에서 그의 사고가 민주화운동의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며, 인권차원에서라도 특채할 수 있겠느냐는 제안에 따라 북구청측이 마침 자리가 생긴 통신실 채용을 결정한 것.

"컴퓨터·수영 등 아직도 배우고 싶은 게 많아요"

생활신조가 뭐냐는 물음에 도씨는 “일 할 땐 일하고, 놀 땐 열심히 논다”는 ‘평범한’ 답을 했다. 어쩌면 이 단순해 보이는 답이 한 인간으로서 감내하기 힘든 어려움 속에서도 밝은 모습을 간직하게 한 힘이었는지도 모른다.
일요일엔 잠자기 바쁘다고 말하는 평범한 직장인. 컴퓨터, 수영 등 아직도 배우고 싶은 게 많다는 스물여덟의 아가씨에게 이제 제대로 봄이 찾아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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