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미는 한반도 문제를 푸는 자양분"
"반미는 한반도 문제를 푸는 자양분"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2.2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80년 최초로 광주미문화원방화사건 주인공 임종수씨

광주시민이 금남로에 흘린 핏자국이 채 씻겨지기 전인 1980년 12월 9일. 전남도청 옆 광주미문화원 건물(현 황금주차장 자리)에 불길이 솟았다.

'오월 학살'의 배후인 미국에 대한 응징의 표현이었다. 당시 이 사건은 국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언론을 장악한 군사정권이 철저히 통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년 뒤 부산에서도 미문화원 방화사건이 발생하면서, 광주미문화원방화사건은 국내외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광주미문화원은 이 지역 대학생들에게 집중적인 타격을 받고 89년 잠정 폐쇄, 이듬해 서구 양림동에 재개원하나 역시 93년까지 집요하게 시달리 끝에 결국 최종폐쇄 결정이 났다.

광주미문화원의 역사는 결국 80년 오월의 역사가 말해주듯, 당시 미국에 대한 앞선 인식을 했던 이들의 끊임없는 민족자존을 지키려는 투쟁의 역사였다.

부시 미 대통령의 방한과 맞물려 미국은 한국에게서 어떤 의미인지를 돌아보기 위해 80년 광주미문화원방화사건의 주인공 임종수씨(43.광주시청 근무)를 만났다.

- 부시대통령의 방한에 대한 개인적 느낌이 있다면

= 부시 대통령의 방한에 즈음해 미국을 비판하는 국민여론이 소수에서 다수로 바뀌고 있다. 일련의 언론보도가 이를 뒷받침 해주고 있다. 22년 전 미국에 대한 나의 인식과 행동이 정당했음을 요즘 실감한다.

- 왜 하필 미문화원방화였나

= 평범한 대학 2학년생이던 5.18 당시. 백주대낮에 자국국민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군대를 현장에서 보았다. 충격이었다. 친구들과 공부를 했고, 학살의 배후에 미국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오월항쟁의 의미를 바로 잡고, 학살의 진실을 제대로 알리기 위한 가장 극적인 수단이 뭘까 많은 고민이 있었다. 그때 호메니가 이란 혁명을 하면서 미국의 부당성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미문화원을 방화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거다’ 생각했다. 당시 거사는 미 국무장관의 방한 시기에 맞춰 추진됐다.

- 한반도에서 ‘반미’ 그 다음은 뭔가

= 부시방한을 계기로 점증하는 반미정서는 한반도 문제를 푸는 자양분이다. 이 토대 위에 남북간 대화와 교류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그것만이 미국의 일방적인 힘의 우위를 억제하고 민족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길이다. 이와 함께 중국과 러시아 등과 교류를 넓히고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통일이 궁극적으로 이들 모두에게 국익이 된다는 것을 일깨워 줘야한다. 그래야 미국의 한반도에서의 독주를 막을 수 있다.

- 올바른 한미관계는 어떤 것인가
=양국의 평등한 이익에 도움이 되는 관계다. 양국 모두가 이익이 되는 평등한 동반자적 관계다. 여기서 우리는 이익의 밑바탕에 민족생존의 문제임을 절실히 깨닫고 관계형성이 임해야 한다.


*임종수씨는 광주미문화원방화사건으로 2년 6개월의 실형을 산 뒤 84년 전남대에 복학, 이후 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 간사 등을 사회단체 활동을 했다. 94년 광주에서 전남도의회 공보계장, 95년부터 광주시청 홍보관실에 근무중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