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불열사연작시 6-들불부부
들불열사연작시 6-들불부부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1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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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불열사님들이여, 우물 안에서 개구리가 하늘을 봅니다·6 - 들불 부부 <1> -축- 결혼 청첩장은 안 돌려 모르는 사람 모르고 아는 사람은 알아서 몇몇 몇몇이 부줏돈 어히할까 흰 봉투는 어히할까, 한겨울 매운 칼바람 속에 모였네라 저만큼 저만큼 예식장 앞에 두고 젖은 눈시울 닦아내고 옷깃 여미우고 아무렇지 않은 듯 심장 깊이 산도 무너질 듯한 한숨 크으게 내쉬고 다들 모이었네라 상여 꽃상여 뒤를 따르듯 마음 속에 깃발 나부끼며 만장 자락 나부끼며 축하하러 온 사람 사람들 살아 있는 사람들 살아 남은 사람들 <2> 신랑 흥- 일배- 건너 2월의 마른 풀 우우우 일어나 가녀린 잎잎 흔들고 건너 2월의 마른 나무 으흐흐 어깨를 세워 낮게 박수를 치고 신부 흥- 일배- 고와라 연지 곤지 수줍어라 붉은 두 볼 무명이라 또렷이 적힌 유택의 주인도 뼈 마디 부딪혀 축하를 하고 저 건너 아니 보이는 신랑이 고개와 허리 숙여 무릎 꿇고 절을 하네 이 건너 아니 보이는 신부 이마에 양손 맞대고 다소곳 절을 하네 저 건너 이 건너 작은 비석으로 말없이 마주 서서 맞절을 하네 당신은 천사였소, 천국의 신부도 한 옛날 시집가던 날 떠올리며 꽃다발 선사하고 용준 정연도 바람결에 목청 높혀, 형님 형수님 축하해요 행복하게 사세요. 언제 웃을 일 있었으리 곁에 누운 망자들도 황토흙 털고 일어나 오랫만에 웃음꽃 신부 어머니는 영정 속의 딸 사위에게 가슴 깊이 묻어둔 기순의 옛 공장월급 3만원 손에 쥐어주며 잘 살소 어짰든 잘 살어 이것으로 어디라도 휭허니 댕겨들 오소 지화자 좋아라 이 좋은 날 지화자 설워 설워라 영혼의 눈물의 신부 신랑이여 <3> 때는 82년 2월 20일 여전한 칼바람 마음 속의 만장 자락은 더욱 거세게 나부끼고 행진. 두 몸이 한 몸 되고 두 마음이 한 마음 되는 첫 발자욱. 아니 보이는 신부 신랑이 팔짱을 끼었네 넋으로 영혼으로 내딛는 첫 발자욱 어느새 칼바람 잠들고 마른 풀 마른 나뭇가지 숨을 죽이고 행진!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명세 - 무명의 유택 주인 입을 열어,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 천국에서 만납시다, 천국의 신부 입을 열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 두 주목을 불끈 쥔 용준과 금희오빠 입을 열어,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 흐드러지던 웃음꽃 접고 망자들 입을 열어, 앞서서 가나니 산 자여 따르라 - 신부 박기순 신랑 윤상원 입을 열어 한 입으로, 앞서서 가나니 산 자여 따르라 - 행진은 계속되고 님을 위한 행진곡은 들불처럼 멀리멀리 번져가고 <4> 바람이 차요. 별빛은 따듯한데-. 그래요, 달빛도 따뜻해요. 기억하는지? 나는 생각나요 안 잊어 먹고 있어요 님의 눈길 성탄의 노래 아득히 내가 누워 서늘히 누워 숨도 아니 쉬고 거기 영안실에 누워 있을 때 님이 내 곁으로 오셨지요 말을 잊고 망망히 나를 바라보던 님의 눈길 안 잊혀요 속울음으로 님은 말했지요, 불꽃처럼 살다 간 누이여 왜 말없이 눈을 감고만 있는가 하고. 그래, 나도 기억하지. 그날을 잊을 리야 흰 솜으로 그대의 코를 막고 흰 솜으로 그대의 열린 입술을 막았을 때 나는 속으로 외치고 있었다오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그러면 참말로 기순이는 죽어 버린다고 고마워요, 고마워요. 숨이야 멎었지만 님의 애타는 속엣말을 차웁게 식은 귀로 듣고 있었어요 넋으로 다 들었어요 기순 누이 이제는 나의 아내여 두 볼이 흐르던 장미빛 그대는 늘 서럽도록 아름다웠지. 개원 오빠 이제는 나의 남편이여 공장에서도 들불에서도 내가 넋으로 지켜본 저 도청 안에서도 그대는 믿음직한 오빠였어요. 정다운 이야기는 끝이 없고 달이 차서 기울어도 둘만의 첫날밤은 기울지 않았네라 설레이는 신방도 없이 묘지의 첫날밤은 그렇게 그렇게 <5> 꽃이 피고 한 계절 꽃이 지고 한 계절 삼백예순 날 새움 돋고 칠석날 눈비 오고 섣달그믐 또 삼백예순 날 달 뜨는 그 언덕에 망월에 계시는 님들은 님들은 들불의 부부 남들 다 있는 찬란한 천연색의 빛 바랜 흑백의 결혼사진 한 장 없어도 살은 흙이 가져가고 뼈는 흐르는 세월이 데려가도 영혼으로 함께 살아 5월의 자식들을 열도 스물도, 백 명도 천 명도 더 낳고 키우고 기를 우리들의 영원한 신부 신랑이여 님들께 바친 노래는 님들 앞에서 목놓아 부르던 님을 위한 행진곡은 이제 이제 우리를 위한 행진곡이 되어지고 ●들불야학의 핵심멤버로 활동했던 박기순, 윤상원 두 열사는 82년 2월 망월묘지에서 영혼결혼식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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