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럽고 방탕한 컬트영화, 허영의 껍데기는 가라
어지럽고 방탕한 컬트영화, 허영의 껍데기는 가라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1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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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홀랜드 드라이브]

컬트영화에선 어지러움에 느글거리는 메스꺼움을 느낀다. 컬트영화의 출발점은, 현대 기계문명이나 거대 도시문화의 어두움과 숨막힘에서 나온 저항적 몸부림이다. 그 어두움과 숨막힘에 저항하는 건 정당방위이다. 그러나 그 모습이 그리 바람직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어지럽고 방탕스럽고 문란하다. 이건 정당방위라기보다는 자학이다. 폭압이 극악스러울 땐, 최후의 수단인 '테러리스트적인 자학'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겠다. 그러나 폭압과 자학이 맞부딪히면, 함께 공멸이다. 우리는 서로 미워하면서 서로 닮아간다고 한다. 자학은 폭압의 닮은 반대쪽이다. 폭압을 닮아서는 안 된다.

서양의 진보적 저항이 갖는 문제점이, 바로 '자학적 저항'이라는 것이다. 나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에서 '독선적 폭압'에 진저리치고, 뉴 레프트나 포스트 모더니즘를 비롯한 진보적 저항에서 '자학적 그로테스크'에 섬짓하다. 그래서 서양의 진보적 저항문화에 편안함을 얻지 못하고, 네온불빛아래 스산한 밤거리에 외로이 방황하는 늑대의 검은 그림자를 본다. 락 펑그 헤비메탈 얼터너티브 힙합, 다다이즘 아방가르 초현실주의, 그리고 해체주의나 포스트 모더니즘, 그 어디에서도 위로를 찾지 못한다.

작년 라스폰 트리에가 [어둠속의 댄서]라는 깊은 영화로 칸느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는 믿음에, [멀홀랜드]의 데이빗 린치가 최우수감독상을 받았음에 기대하였다. 나와는 체질이 맞지 않은 컬트영화이어선지, 이런 영화를 보면 서양문화에 절망한다. 그래서 그 자학적 그로테스크를 흉내낸, 장선우 감독의 [거짓말] 김기덕 감독의 [수취인불명]을 그리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자학적 그로테스크라고 할 수는 없지만, 사회성 짙은 컬트영화적 분위기를 밑바닥에 깔고 있는 홍상수의 [강원도의 힘]이나 [오! 수정]이라는 영화나 뭔가 깊은 예술성이 있는 체 폼잡는 인디영화들이, 내게 별 다른 예술적 감동을 주지 못하는 것도, 실험적인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나, 결국 우리의 생생히 살아있는 이야기를 제대로 드러낼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개인과 사회의 문제의식을, 우리 체질에 맞게 그리고 살아있는 대안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민기나 박재동 이창동 임순례처럼 말이다.

단연코 말한다. 서양의 유명한 학자 예술인의 저서나 작품에게 주어지지는 자자한 찬양에 그리 주눅들 필요 없다고. 지금 살아가는 바로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잔잔하게 펼치고, 거기에 우리의 희로애락을 꾸밈없이 그대로 보여주면, 바로 거기에 우리 자신이 가꾸어낼 '새로운 터전의 싹'이 자라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고. 거창하고 시끌벅적하게 유명한 곳엔, 아무 것도 없다. 요란스런 인간의 덜 떨어진 허영만 넘실거린다. 바로 우리 생활 가까운 주변에서 살아있는 이야기를 깊은 눈으로 찾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 광주를, 5.18 신묘역처럼 돈으로 돈지랄해서도 안되며, 패거리와 똥고집으로 말아먹어서도 안 된다. 그것이 비엔날레든 영화제든 들불기념사업이든, 이제 그런 껍데기로 살아선 안 된다. 그 때 그 날의 그 서러움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님들의 먼저 가신 주검을 승화시켜내지는 못할 망정, 이리도 욕되게 해서, 무슨 낯으로 하늘을 이고 걸어갈 수 있으리오!

우리 광주에서도 영화제가 열린단다. 부산 부천 전주의 뒷북치는 모양새이다. 그렇고 그런 영화로 그렇고 그런 뻔한 영화제는, 우리 광주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광주에서 영화제가 살아나려면, 돈보다 더 중요한 게, 이 일을 앞장서 끌고 가는 사람이다. 임권택으론 부족하다. 나는 제안한다. 김민기 박재동 이창동 임순례. 그들이 아무리 자기 나름의 일로 바쁘더라도, 광주 오월의 설움과 분노를 화창하게 승화시켜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하라고... . 그들이 우리 광주를 일으켜 세울 때, 광주가 가장 광주답게 일어설 것으로 확신한다. 껍데기는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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