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 버리고 자연 속으로
모든 것 버리고 자연 속으로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10.2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림읽기-고갱의 '브르타뉴 여인들'>

만약 함께 살고 있는 당신의 남편이 어느 날 짧은 편지를 한 장 남기고 홀연히 사라진다면, 하는 생각 해 보셨습니까?

폴 고갱, 전형적인 프랑스 부르조와였던 그가 다섯 명의 자녀와 아내를 두고 홀연히 그림을 그리겠다는 명목으로 집을 나선 건 그의 나이 서른에 다섯을 더한 나이였습니다. 증권회사 직원에, 지참금 적당히 가져온 아내와의 삶은 사실 그를 그다지 힘겹게 하지 않았을 건데, 그넘의 예술이 뭔지, 그는 자신에게 부여된 편안함과 안락함을 송두리째 내던져버렸지요.

생각하면 분하기 짝이 없는 노릇입니다. 함께 살 맞대고 잘 살다가, 무슨 개풀 뜯어먹는 소리라구 예술입네 하고 자식과 아내를 버린단 말입니까.
그러나, 나무그림, 그의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그를 그저, 무책임한 가장이었노라고 쌍심지 켜며 비난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림이 워낙 멋있어서요? 아닙니다. 그럼 그가 성공한 화가라서 일까요? 그것도 아닙니다.

그냥, 그가 그려낸 원색의 그림들을 보면, 뭔가 치밀어 오르는 듯한 외로움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뭐, 더 심한 말하자면, 내 일이 아니라서 그렇겠지요. 허허.

고갱은 당시 대부분의 화가들이 강박관념처럼 지니고 있던 색의 편견을 버린 화가입니다. 브류타니 여인들 그림은 그래서 단순하게 칠해 버린 논밭의 묘사가 어쩐지 촌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게다가 인물과 대상들의 명암법이 거의 없어 보입니다. 어디가 그림자부분이라 어두운지, 어디가 햇살을 더 받아 환한 부분인지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어 보이지요.

고갱 그림이 평면적으로 보이는 이유가 바로 그겁니다, 마치 초등학교 4학년 정도 되는 아이들의 첫 불투명수채화 같은 느낌의 그림들. 명암법을 벗어난 대신 그가 사용하는 색채들은 맘껏 자유로와 보입니다.

그러나 그가 가족을 버리고 타히티라는 먼 섬으로 길을 떠나는 동안, 혹은 파리의 어느 뒷골방에서, 물감 살 돈은커녕 삼일씩이나 담배 한 모금도 못 핀 채 꼬박 굶는 그런 생활을 하고 있는 동안, 어쩌면 그도 외로웠을 거란 생각이 들거든요, 그도 자신의 가정이 그리웠을 거란 생각이 불현듯 들거든요. 그래요, 어쩌면 그 역시 운명의 희생자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몇 년을 떨어져 살던 그에게 아내는 이혼을 요구했고, 그는 겸허하게 그 이혼을 받아들입니다. 그리곤 13살짜리 타히티 원주민과 결혼을 하고, 미친 듯 강렬한 색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생각해보면, 고갱은 누구와도 살 수 없는 인물이었는 지도 모릅니다. 타히티의 13살짜리 여자와 살았다는 사실은 아마도 그가 가장 자유롭게 자연 그 자체와 살을 섞는 느낌으로서가 아니었을까 막연히 생각해봅니다. 즉 소녀를 사랑한 게 아니라, 소녀라는 자연과 원시를 사랑한 거란 소리지요.

그래, 그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을 거야. 그는 그저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를 가지듯 소녀와 함께 살았겠지. 차라리 그렇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가 사랑한 것은 자신의 그림, 아니,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자신, 혹은 모든 것을 버리고 철저히 자연 속에 하나가 되고 싶다는 욕구 그 뿐이길 빕니다.

왜냐구요? 젊은 여자와 살기 위해 조강지처를 버린 넘으로 생각해버리기엔 그가 너무 아까와서 입니다. (cyberjubu.com 제공)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