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이 이 정권을 떠났나 ... 보궐선거 3곳 민주당 참패
민심이 이 정권을 떠났나 ... 보궐선거 3곳 민주당 참패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10.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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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5재보선에서 희비가 엇갈린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하루밤을 지낸 26일 아침에도 그 여파가 계속됐다.

이날 아침 총재단회의와 의원총회를 연이어 가진 한나라당에는 웃음과 농담이 쏟아지며 선거승리의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고, 반면 재보선에서 완패한 민주당은 긴급 최고위원회의와 의원총회에서 내내 침통한 분위기 일색이었다.

환한 미소를 띄우며 9시 35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장에 모습을 나타낸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10·26사태' 22주년을 의식한 듯 박근혜 부총재와 한참 대화를 나눈 뒤 곧바로 인사말을 시작했다.

이 총재, "출입기자들은 한가족" 감사 표시

이총재는 인사말 서두에서 "감사드립니다"를 연발했다. "당선자 세명", "국민여러분", "당원과 당직자", "입당한 김용환, 강창희 의원" 등을 차례로 거론하며 감사를 표했다.

이 총재는 "우리당에 입당한 김용환, 강창희 의원 두 분께 감사드린다"며 "이번 선거에서 두 분이 공헌하신 바가 매우 크다"고 말해 충청권 조직표에 대한 공헌을 치하했다.

이 총재는 이어 다섯번째로 감사해야할 사람들을 거론했다. "특히"라는 강조법을 구사하면서.

"특히 이번 선거 기간에 애써주신 (한나라당) 출입기자들에게 감사드린다"

순간 의원들이 일제히 취재중이던 기자들을 향해 박수를 보냈다. 기자들은 연단을 바라보고 왼편에 20여명이 앉아 있었다. 때아닌 박수에 일부 기자들은 난처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일부 기자는 고개를 숙인채 취재노트를 응시했다.

박수소리가 잦아들자 이총재는 말을 이어갔다.
"립서비스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우리 한 식구로서 너무 애쓰셨다."

▲"정말 우리 한 식구로서 애쓰셨습니다"26일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의원들이 출입기자들에게 감사의 박수를 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다시 의원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의원들 일부는 "맞다"고 호응하면서 박수와 함께 웃음소리도 터져나왔다. 이총재가 인사말을 하는 동안 감사를 표한 다섯부류의 사람들 가운데 이 출입기자들만이 유일하게, 그것도 두번씩이나 박수갈채를 받았다. (세 당선자는 이총재의 인사말 이후 앞으로 나와 축하의 꽃다발을 받을 때 박수를 받았다)

이 장면은 그 동안 민주당에서 "언론이 한나라당의 의혹부풀리기를 사실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여과없이 그대로 보도해 선거가 어렵다"며 강력히 반발했던 것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이 총재는 이어서 "서울 두 지역은 과거 현 정권에 대한 지지층이 두텁던 곳으로 정권에 따끔한 경고를 주기 위해 우리 야당에 지지를 보내 준 것이기 때문에 만약 우리도 못하면 가차없는 질책과 채찍을 보여줄 것"이라며 "실로 두려운 마음과 겸허한 마음으로 이번 선거결과를 받아들이고 국민 우선 정치를 펼치자"고 강조했다.

평소 의원총회장에서의 모습과는 달리 이날 이 총재는 여유있는 미소와 행동을 보여 재보선 선거 결과로 인해 당내 입지가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자신감을 읽을 수 있었다.

이 총재는 인사말에 이어 재보궐 선거 당선자인 최돈웅, 홍준표, 이승철 후보에게 꽃다발을 증정했고, 세 사람은 짤막한 인사말을 하고 내려왔다.

또 김기배 사무총장은 당무보고를 하면서 "(내) 목이 붙어있게 된 것을 감사드린다"고 말해 의원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고, 이재오 총무는 "오늘 본회의에서 세 당선자들이 의원선서를 하기로 돼 있었는데 민주당이 패배한 체면이 있다고 봐달라고 해서 다음에 하기로 봐줬다"고 말하자 역시 웃음과 박수가 터져나왔다.

의원총회를 마치고 나오는 이 총재에게 <오마이뉴스> 기자가 "선거 승리의 원인은 무엇인가?"라고 묻자 이 총재는 "싸움이 끝난 뒤에는 승자도 말이 없고, 패자도 말이 없는 것"이라며 답변을 피했다.

한편 의원총회에 참석한 박종웅 의원은 "이번 선거를 평가해 달라"는 질문에 대해 "좀더 있다가 얘기하겠다"고 답변을 유보, 이번 재보선 선거결과로 인한 YS의 향후 거취에 대해 고민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이번 보궐선거에서 승리한 세 후보. ⓒ 오마이뉴스 이종호


민주당, "소용돌이칠 힘도 없다"

이에 앞서 8시 30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긴급 최고위원회의는 선거패배의 원인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을 쏟아내며 대책마련에 들어갔다.

세 곳 중 한 곳만 이겨도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이라는 사전분석에도 불구하고 단 한 곳도 이기지 못한 결과에 대해 당 지도부들은 적지 않은 충격에 휩싸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민주당에서는 이번 선거 결과를 놓고 책임론과 대선후보 가시화론이 제기될 전망이다.

정세균 기조위원장은 "막판바람에 무너졌다"며 "투표율이 높았던 것이 바람"이라고 한탄했다. 패인 분석에 대해 정 위원장은 "불리한 지역의 투표율이 놓았고, 넥타이 부대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정 위원장은 특히 "당이 앞으로 소용돌이치겠다"는 기자의 질문에 "소용돌이 칠 힘도 없다"고 탄식했다.

한광옥 대표는 "선거 과정에서 나타난 민심의 소재를 파악해 반성하고 민생안정과 경제회복을 위해 국정개혁을 계속 추진하겠다"며 "국민의 뜻을 겸허히 수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또 지도부 책임론에 대해 "당 대표로서 책임을 느끼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그런 기조를 살려 당 공식기구 등에서 의견을 취합해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긴급 최고위원 회의시간이 다 됐는데도 최고위원들 참석이 저조하자 먼저 와 있던 이인제 최고위원이 짜증을 내며 "오는 것이냐 아니냐"면서 "정세균 기조위원장에게 "알아봐라"고 지시했다.

이어 정 위원장이 "오고 있다고 한다"고 말하자 이 최고위원은 "그럼 조금 있다 시작하지"라고 말했다. 이 때 "그냥 시작…"까지 말하던 한광옥 대표가 이 최고의 말에 그만 말 꼬리를 내리기도 해 민주당의 불편한 분위기를 짐작케 했다.

이날 긴급 최고위원회의에는 당대표 퇴임 후 처음으로 김중권 최고위원이 참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대표 퇴임 직전 구로을 후보로 강력하게 거론됐었다. 이에 대해 한 당직자는 "김 최고위원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나가지 않아서 졌다'고 하지만 화장실에 가서는 '휴'하며 안도의 한숨을 쉴 것"이라며 "김 최고가 나갔으면 아마 김한길 후보보다 몇 배 더 형편없이 졌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김근태 최고위원은 "'이와 같은 상황이 우려돼 당정쇄신을 촉구하지 않았느냐'는 식으로 비쳐질 것이 우려스럽다"며 "그렇게 보이면 안된다"고 말해 앞으로 취할 방향에 대해 신중히 검토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침통한 표정으로 본회의에 참석한 민주당 중진 의원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민주당 표정, "민심이 무섭다" "통렬히 반성해야"

이어 9시 30분에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한 이강래 의원은 "지금 이 상태에서 무슨 대책이 필요하겠나?"라고 말했고, 박양수 의원은 "민심이 무섭더라"면서도 "무슨 책임론이냐"면서 동교동계에게 책임이 돌아가는 것을 애써 피하려고 했다.

또 이상수 총무는 "가까운 시일내에 당 총의를 모을 수 있는 자리가 있을 것"이라고 말해 당차원의 워크숍 등이 논의되고 있음을 암시했고, 박상천 전 사무총장은 책임론에 대해 "아무리 좋은 인물을 갖다놔도 민심이 이런데 되겠느냐?"며 회의적이었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최고위원 워크숍에 대해서 논의가 있었다"면서 "민심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상투적으로 말하지 말고 통렬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위원은 또 김기재 최고위원이 주장한 '가족회의론'을 거듭 제기하며 "의사의 진단은 끝났다. 이제 가족이 집으로 모시고 가든지 아니면 응급수술을 하든지 모여서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말해 당 지도부의 결단을 촉구했다.

지난 '정풍운동'의 한 가운데 서 있던 민주당 초재선 의원중 한 명인 김태홍 의원은 향후 초재선 의원들의 동향에 대해 "지금은 쇼크받아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고, 폭탄이 떨어지는데 고개 쳐들기도 힘들다"며 "(선거패배 원인은) 국민들이 민주당을 정확히 봤다"고 꼬집었다.

역시 초재선 의원 중 한 명인 신기남 의원은 "아마 김한길 후보가 아닌 누가 나왔어도 희생됐을 것"이라며 "가짜 박사가 국회의원이 된 것은 (현 정권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국민들을 현명하지 못하게 한 것이고 이에 대한 책임은 우리 탓"이라고 탄식했다.

다음은 긴급 최고위원회의 전 만난 한광옥 대표와의 일문일답이다.

- 소감은?
"최선을 다했다.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를 지지해준 유권자에게 감사한다. 선거과정에서 나타난 민심소재를 파악해 반성하고 민생안정과 경제 회복을 위해 국정개혁을 계속 추진하겠다. 지금은 당이 단합하고, 정쟁을 지양하고 생산적인 정치를 해야 한다. 국민의 뜻을 겸허히 수용해야 한다."

- 패배 원인은?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 지도부 책임론이 제기되는데...
"당 대표로서 책임을 느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니까 모든 것을 포함해서 논의하겠다. 개인 의지가 당론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기조를 살려 당 공식 기구에서 의견을 취합해 결정하겠다. 분명한 것은 좌절하지 않고 이번 기회를 민심소재를 파악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당이 다시 단합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 후보 조기 가시화는?
"조기화든 뭐든 여러 가지 문제를 당 기구를 통해 논의하겠다."

- 이용호게이트 등이 영향을 미쳤나?
"당 대표가 특정 사안에 대해서 통합적으로 분석 판단해서 말해야...(되지 않겠나?)"

- 거대 야당이 되었는데?
"양의 정치, 수의 정치에서 질의 정치로 나가야 한다. 국민 상대 정치를 해야 한다. 아무튼 어려운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다. 어려운 상황을 다 말할 수는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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