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아무리 좋다 해도 자연을 따라갈 수 있나요
그림이 아무리 좋다 해도 자연을 따라갈 수 있나요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10.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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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재 허백련 화백의 화업과 삶의 정신을 기려 무등산 자락 증심사 입구에 세워진 의재미술관이 다음달 17일 문을 연다. 개관을 앞에 두고 의재미술관이 지난 19일 2001한국건축문화대상을 받았다. 그 미술관은 일부 시민단체가 무등산 권역 자연환경 훼손 및 침해를 우려하면서 한때 건립 자체를 반대해 논란을 빚기도 했었다.
어떤 미술관이길래…. 미술관 건립을 총괄한 의재문화재단 허달재(한국화가)이사장을 만났다.



<의재문화재단 허달재 이사장-의재미술관 다음달 17일 개관한다>

"작품이, 그림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자연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허씨는 개관을 앞둔 의재미술관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앞으로 어떻게 기능할까에 대한 화두를 이렇게 꺼냈다.

할아버지(그는 의재 장손자다)의 작품을 폄하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자연의 오묘함도, 작품도, 의재의 정신도 모두 중요하다는 뜻을 건축물에 함께 담았다.

1층 기획전시실에서 2층 상설전시실로 올라가는 경사진 길의 벽면을 반투명유리로 장식했다. 경사진 길에서 마주 부딪히는 벽면엔 의재선생 사진과 작품이 이어진다. 2층으로 오르는 도중 자연에 심취해버리면 그림 감상 효과가 떨어질 것을 우려한 허씨의 배려다.

그래서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그림과의 조화를 매우 많이 고민하면서 (집을) 지었다'. 아니 굳이 그림이라기 보다 의재 정신을 실천하고, 이를 후대로 잇게 하겠다는 뜻이 더 정확하다.

자연 거스르지않는 그림과의 조화 고민하며 지어
의재 정신 후대 계승 희망 담아


의재미술관은 증심사로 오르는 길을 따라 걷다보면 자연 속에 묻혀 자칫 그냥 지나치기 쉽다. 심플한 직육면체 유리공간 위에 목제상자 하나 얹어놓은 듯 무표정한 건물로 다가온다. 그러나 건물이 담고 있는 심오한 뜻을 새기고 나서 보면 다르다.

먼저 건축문화대상 수상한 소감을 물었더니.
"남종화풍 한국화를 연상해 한국적인 것 하면 기와집, 전통한복 등을 생각한다. 그래서 건축물이 겉돈다, 모양이 이상하다는 말을 여기저기서 많이 들었다. 그런 건물이 큰 상을 받았으니 이제 그런 인상이 해소되지 않을까. 다행이다."

우선 무등산이라는 자연과를 조화시키려고 부단히 신경썼다. 시대가 발전하면 건축물도 그에 맞게 따라가야 한다. 광주에 조선시대 건물만 있어서 되나. 그림도 어떤 재료를 썼느냐 보다 어떤 느낌으로 그렸느냐가 중요하다.

자연 속 콘크리트물이지만 자연과 일치되도록 회색 톤을 주로 사용했다. 노출콘크리트기법의 회색계열이 자연(그린계열)과 친화적임도 강조했다. 세월이 흘러 이 건물에 때가 앉고 이끼가 끼면 자연 속에 묻혀있는 바윗돌로 연상될 것이란다.

노출콘크리트기법 자연과 친화적
남종화 산실·차밭 공존…'광주의 상품'으로 키우겠다


그는 또 자연과의 친화라는 장소성에, 의재선생으로 상징되는 정신성의 조합이 갖는 의미도 강조한다. 삼애(愛天·愛人·愛土)정신 아래서 개화기 근대농업교육과 차재배 및 보급(춘설차)을 통한 민족정신 함양을 강조한 의재선생의 사고는 누구보다 진취적으로 시대를 앞서 산 인물로 대표된다. 그래서 건물도 그런 사고에 맞게 앞서가는 건물로 만들었다.

"시대가 발전하면 정신도 앞서가야 한다. 이를 즐기는 여유를 가지려면 그런 공간이 있어야 한다. 의재미술관이 그런 상품역할을 하면 좋겠다."

곱씹어보면 큰 뜻이 깔려있다. "광주는 하나의 상품이다. 의재선생의 화업은 기릴 만큼 기려졌다. 이제 의재선생으로 기록되는 호남화단의 미술사적 의의를 바탕에 깔고 광주지역 미술문화를 선도하는 공공미술관의 역할을 기대한다."

의재미술관 건너편 차밭 입구에 있는 춘설다헌(춘설차 시음장)도 현재 개보수 중이다. 28평 남짓되는 공간을 전국 유일한 춘설차 맛을 즐길 수 있는 분위기로 꾸밀 예정이다.

남종화의 산실과 차밭이 공존하는 의재미술관. 전시실 내부로 들어서면서 그는 "산에 오르면 숨이 헐떡인다. 이 미술관 내부 그 자체가 산이라는 축소된 자연 공간으로 생각하면 된다"며 스스로 시범도 보인다.

비탈 심한 산을 오르는데 힘이 덜 들게 하기 위해 설계기법에서 완만한 경사의 다리와 계단을 많이 사용했다. 광주의 명물, 광주의 자존심으로 키우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자연을 거스른다기 보다 자연과 호흡하는 건축에 골몰했기에 의재미술관에 건축문화대상이 안겨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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