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들 모두 죽으란 말이냐
농민들 모두 죽으란 말이냐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10.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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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값 폭락 현장... 지금 화순 들녘에선
14일 화순군 춘양면 화림리 들녘은 늦은 가을추수로 한창 바쁜 모습이었다. 마을 곳곳에는 거둬들인 나락들이 '떨어진 쌀값' 어두운 소식에도 불구하고 가을 햇살에 잘 말려지고 있었다. 이곳 춘양쌀은 옛날부터 '죽은 송장도 무겁다'고 할 정도로 맛과 품질을 인정받은 이름 있는 쌀.


점심을 먹기 위해 당산나무 그늘로 삼삼오오 모여든 주민들은 정부의 수매정책 얘기가 나오자 한 농민이 대뜸 "정부와 농협이 이래도 되는거냐. 수확할 마음이 싹 가신다"며 성난 속내를 거침없이 토해낸다.

인건비 못 건지는 수맷값 분노 가득

1만5천평에 쌀농사를 짓는다는 민기성(39)씨는 "올해는 가뭄으로 모심기가 늦었지만 비가 덜온 덕분에 병충해 피해가 없어 300가마 이상 수확이 될 텐테, 5만3천원으로는 도저히 채산성이 안맞는다"며 "최소한 수맷값 5만8천원은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민씨는 "농사비용으로 모내기, 농약값, 벼베기, 논갈이 등에 900여만원이 들었으나 배정받은 정부수매 물량 120가마로는 경작비용, 농협 빚, 이자 등을 갚고 나면 살림을 도저히 꾸려 나갈 수 없다"고 한숨을 내쉬며 "정부가 공산품 위주로 정책을 펴기 때문에 농촌이 망해가고 있다"며 "'농협 빚 안갚기' '양담배피우기' 운동을 해서 농민들이 한번 일어서면 무섭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며 정부에 대해 '분노의 경고'를 보냈다.

2만편 쌀농사 "남은 건 빚더미"


쌀 전업농으로 2만평을 짓고 있는 노종진(39)씨도 "5천4백만원의 쌀 수익 중 농사비용 2천만원, 농지 임대료와 농지구입자금 1천8백만원, 부채이자 1천만원 등을 제하고 나면 6백만원 정도 남는데 여기에 콤바인, 트랙터, 이앙기 감가상각비를 고려하면 인건비도 못 건진다"며 "빚내서 빚 갚은 꼴로 악순환만 되풀이 되고 있다"며 농사꾼의 처지를 전했다.


노씨는 "수매가격이 보장되지 않으면 올해 말에 농업기반공사에 갚아야 할 농지임대료와 구입자금을 벼로 현물납부 해야 할 판"이라며 "1년 농사를 지어 생산비에도 못 미치는 가격으로 팔아야 한다면 누가 쌀 농사를 짓겠느냐"며 정부의 농업포기정책을 비판했다.


노씨는 또 "그나마 논 값이라도 오르면 차액으로 돈을 벌었다고 자위해보지만 이곳의 논값은 평당 5만원 하던 시세가 3만원으로 떨어진 채 아예 거래조차도 없다"고 전했다.

"이래서 누가 농사짓나" 한숨소리 높아

세 자녀를 중고교, 대학에 보내고 있는 백종현(47)씨도 "뼈 빠지게 4천평에 농사를 지어봐야 아이들 교육비 1천5백만원, 이자 갚고 나면 끝이다. 남은 것 없이 굶어죽을 농사"라며 "쌀도 모르는 이들이 정치를 해서 그렇다. 이렇게 가다간 5년안에 논에는 벼 대신 잡초만 무성해 풀 뜯는 염소 떼 만 보일 것"이라고 쌀 농사의 어두운 미래를 꺼냈다.


잠시 논을 바라보던 임씨가 "이제 농민들도 사기 치고, 도둑질해서 주식조작하며 살수밖에 없다. 정부가 농민들을 '같이 죽자식'으로 내몰고 있다"며 "농자천하지대본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다"고 하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점심을 마치고 논으로 향하는 이들의 발걸음이 한층 무겁게 보였다.

"농촌 살리라고 찍어줬는데..."곳곳 DJ비난

마을 안 빈터에서 벼를 말리던 김용순(여·72)씨는 "매상 값을 올려 줘야 하는데 무장 떨어져 사방에서 대통령을 욕하고 난리다. 농촌 살리라고 대통령 찍어줬는데 너무 잘못하고 있다"며 "서울이든 광주든 데모하러 가야겠다"며 DJ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박흥규(73)씨도 "평생 농사를 짓고 살았지만 요즘처럼 앞날이 적정스러울 때가 없었다"며 "매상을 30가마를 해도 따져 놓고 나면 아무 것도 남는게 없어 다른 사람에게 맡겨 버리고 싶지만 그래도 내가 지은 것이 낳을 것 같아서 붙잡고 있다"며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살아온 농민의 마음을 하소연했다.


이날 화순 춘양 뜰에서 만난 농민들은 나이를 떠나 누구 나 할 것 없이 정부에 대해 '한판'을 단단히 벼르며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돌아선 농사꾼들은 더 이상 현정권에 '농자천하지대본'을 기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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