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나이 평균 36세...너무 젊은 것 아닌가
판사나이 평균 36세...너무 젊은 것 아닌가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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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나이를 속인 매춘 청소년은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법원의 판결에 대한 논란이 일면서 '법관의 저연령화' 문제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이번 판결이 사회구성원 절대다수의 동의를 구하기 힘든데다 판결을 내린 판사의 나이가 30대 초반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판사들의 저연령화에 대한 문제의식이 일반 시민들의 법감정 인식과 관련해서 제기되고 있는 것.

특히, 법관의 저연령화는 유교사상이 뿌리깊은 우리사회의 특성상 자칫 재판과 판결에 대한 사회적 불복심으로 이어질 우려가 큰 것으로 지적돼 차제에 저연령화의 원인인 법관의 처우를 개선하고 사법시스템의 개혁을 진지하게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법조계 내부에서도 이 문제를 우리나라 사법제도의 모순과 한계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나이속인 매춘 미성년 보호받을 수 없다'
최근 판결 놓고 '법과 연령' 논란


지난달 14일 전주지법은 미성년자 안아무개(18)양 등 3명을 고용, 매춘을 알선해주고 5천 100여만원을 챙긴 혐의(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로 검찰이 오아무개(42.가요주점 주인)씨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담당 판사는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과 청소년보호법은 인격이 성숙하지 않아 적정한 판단력을 기대할 수 없는 청소년의 인권을 보호하는 데 입법 목적이 있으나, 21살이 넘었다고 업주를 속인 안양 등은 이 법이 보호하려는 청소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되므로 영장을 기각한다"고 밝혔다.

또 "거짓말로 자신이 미성년자가 아닌 것처럼 믿게 한 청소년까지 법으로 보호한다면 이에 속은 상대방에게 무거운 의무나 부담을 지울 소지가 있다"며 "이는 헌법상 평등의 원칙 등에도 위배된다"고 덧붙였다.

이 판결은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전북여성단체연합 등 여성계는 "법원의 이번 결정은 보호받아야 할 청소년에게 책임을 묻는 것으로, 청소년관련법 정착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유흥업주 등이 악용할 가능성이 크다"며 반발했다.

일부 언론은 "언제부터 우리 사회가 보호할 가치가 있는 청소년과 그렇지 않은 청소년을 구분했는가"라며 "거짓말을 한 청소년은 보호할 수 없고, 나이를 확인하지도 않고 매매춘을 통해 돈까지 챙긴 업주는 보호하는 법이 정말 우리 나라의 법인가?"라고 개탄했다.

게다가 일반인들은 이번 논란이 마치 '판사의 나이'때문에 비롯된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공무원 김모씨(35·광주시 동구 산수동)는 "신문 등을 통해 뉴스를 접한 뒤 직장동료들간에 말들이 많았다"며 "대체로 납득하기 힘든 판결이라는 생각들이었고, 요즘 판사들 나이가 너무 젊어지고 있다는데, 이번 판결도 판사가 너무 젊어서 판단을 잘 못 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 대부분이었다"고 말했다.

판사나이 36세-무엇이 문제인가
"사회적 불복심조장 우려 없나"


그렇다면 판사의 나이가 젊어지는데 대한 이같은 우려는 과연 정당한 것일까.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우리나라 판사들의 평균연령은 예비판사까지 포함해서 37.54세. 광주지방법원의 경우는 현재 기준으로 전체 61명(본원 기준)의 판사 평균나이가 36.54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광주지법의 경우 40세 이상은 부장판사급 10명에 불과하고, 20대 판사도 3명에 달하고 있다. 일반인들이 예상하는 판사의 평균연령이 40대 이상이라고 봤을 때 우리나라의 판사는 국민적 법감정이 기대하는 연령에는 훨씬 못미치는 '젊은 판사'인 셈이다.

판사의 저연령화에 대한 문제의식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유교전통이 강해 '젊은이'보다는 '어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풍조가 강하다는 점. 특히, 사회 양심의 최후보루로 받아들여지는 법관에 대한 사회적 기대치에는 양심과 법률지식, 도덕성은 물론 '연륜'이 포함된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전남대 한규석교수(사회심리학)는 판사의 연륜을 강조하는 사회풍조가 유교적 전통외에도 나름대로 과학적 이유도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인간의 발달심리학에 따르면 인간의 지능은 암기력 등 유전적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유동성 지능'과 후천적 경험과 학습·문화적 영향에 의해 습득되고 나이를 먹을수록 증가하는 '경직성 지능'으로 나뉘는데, 경직성 지능을 다른말로 하면 '지혜'라고 할 수 있다는 것.

한교수는 "판사는 '지혜'가 많이 요구되는 직업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나이가 젊다면 덜 완숙했다고 일반적으로 말할 수 있다"고 말하고 "특히, 피고나 일반 시민들 입장에서는 실제로는 업무과중 등 다른 영향때문인데도 불구하고 재판의 질이나 선고판결에 불복심이 생길 경우 이를 '판사의 젊은나이'탓으로 돌릴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목포대 조천수 교수(법철학) 역시 "판사의 나이가 젊어지는 것은 원론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며 "판결이라는게 법조문에 대한 해석만이 아니라 실제적으로는 사람이 살아가는 관계를 주축으로 이뤄져야하기 때문에 당연히 판사의 소양이나 경륜이 필요하다"고 말해 법관임용 등 전반적인 사법시스템의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판사의 저연령화가 자칫 재판결과에 대한 사회적 수용도를 낮추는 쪽으로 작용할 우려가 크다는 것을 각계에서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판사 1명이 1년에 4,000건. 하루 40~50건도

이같은 우려에 대한 법조계의 시각은 엇갈린다. 일부는 심각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반면, 일부는 저연령화 자체가 문제되지는 않는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저연령화 현상이 법관의 과도한 업무량과 낮은 처우때문에 발생하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고, 나아가 법관임용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데는 한결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광주고법의 한 판사는 "재판은 나이로 하는 게 아니다. 정의감이 있는 젊은 사람이 더 잘할 수도 있는게 아니냐"며 "문제는 법관의 높은 이직률로 법원이 싫어서 나가는 경우보다는 경제적 형편이나 승진제도 등 문제로 일찍 법복을 벗고 떠나는 일이다"고 말했다.

서울고법의 정진경판사는 사법시스템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우선 법원의 역할이 무엇인가부터 살펴야 한다고 강조하고 "법률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데 초점이 있다면 현재 우리나라와 같은 독일식 사법관료제 시스템이 매우 유용하지만, 그 이상의 깊이 있는 판결로 사회의 나아갈 방향까지 제시해야 하는 역할이라면 사정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정판사는 이어 "우리나라의 경우 국민들이 판사의 기계적 판결보다는 연륜이 배어나는 판결을 원하기 때문에 장단점을 검토한 뒤 장기적으로는 변호사를 거친 뒤 판사로 임용되는 영미식 사법시스템으로 가야한다"며 "1년에 100여명의 법관이 직분에 대한 만족을 하지 못하고 떠나는 현실에서 사법시스템의 개혁이 없이는 판사의 저연령화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 판사 1명이 담당하는 사건분량은 지난 한햇동안 본안사건과 본안외사건을 합해 평균 3천 977건으로 4천건에 이르고 있다. 이를 하루업무량으로 환산하면 하루 10건 정도로 공휴일 등을 제외하면 더욱 많아진다. 특히 상대적으로 업무가 많이 몰리는 지방법원 판사의 경우는 하루 40~50건까지 이를 정도로 일에 치이고 있다.

이러다보니 재판을 받는 법률소비자 입장에서도 불만이 많다. 지난 3월 폭력혐의로 광주지법에서 재판을 받은 바 있는 윤모씨(42·영광군 영광읍)는 "피고인 진술조차 듣지 않고 재판 자체가 일사천리로 진행되는데 할 말을 잃었다"며 "이래가지고 어떻게 제대로 된 재판이랄 수 있느냐"고 불만을 털어놨다.

한규석 교수도 "지금과 같은 과도한 업무량으로는 판사가 담당한 사건에 대한 연구를 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고, 경범죄처벌 사건이라면 모르지만 '지혜고 뭐고 따질 게재가 아니다"며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법관으로서의 자아실현은 물론 국민적 신뢰도 확보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상황속에서 변호사 개업 등을 위해 사직하는 법관수만 한 해 100여명으로 지난해는 95명, 올해에만 50여명으로 '대량퇴직'현상이 잦아들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사법개혁으로 풀어라

법관의 저연령화문제는 현 사법시스템의 개혁으로 밖에 풀 수 없다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다. 정진경판사는 지난해 사법개혁을 주창하며 "국민은 신속하고 능률적으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법기술자가 아니라 무엇이 법이고 정의인지 선언할 수 있는 지사의 모습을 판사에게서 원하고 있고 이는 현재의 판사임용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는 불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일에 치이고, 낮은 처우에 만족하지 못해 법복을 벗는 판사가 1년에 100여명에 이르고, 법정에서 검사나 변호사가 판사보다 연륜과 경륜이 앞서는 경우가 허다한 현실에서 어떻게 법원에 대한 신뢰가 확보되겠느냐는 것이다.
정채웅 변호사(천지합동법률사무소) 역시"판사를 하다 개업한 변호사들도 이구동성으로 몇년간 변호사 경험을 쌓은 뒤 판사를 하는 것이 재판을 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하고 있다"며 "적어도 4~5년은 검사나 변호사 경력을 거친 뒤 판사로 임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공감대가 많이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사법공무원, 그 이상의 무엇?
과다한 업무 낮은 처우로 일찍 법복 벗어
법조계내에서도 '임용제도 개혁'제기


결국, '판사 저연령화'문제에 대한 답은 법관을 우리사회가 어떻게 자리매김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예를 들어 법관을 단순한 법적 분쟁해결의 전문직으로만 인식하는 경우 법관은 '사법공무원'의 지위로 충분하다. 이때 법관의 자격요건은 주로 법률지식의 구비여부에 따라 결정되어질 것이고, 나이가 적고 많음도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법관에게 법률전문가 이상의 기능을 기대하게 되면 문제는 달라진다. 당연히 최소한의 사회경험과 실제적 판단력을 갖출 정도로 일정한 경력이 요구되어진다. 검사나 변호사 등 일정한 경력히 있는 사람중에서 판사를 임명하도록 법관제도를 개선하자는 주장도 이같은 인식에서 출발한다. '판사 나이 36세', 우리사회는 언제까지 법관이 '사법공무원'으로 계속 남아 있기를 요구하고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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