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마리아인 법과 대한민국의 자화상
착한 사마리아인 법과 대한민국의 자화상
  • 이재열 S&Lee 컨설팅 대표
  • 승인 2016.09.08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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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열 S&Lee 컨설팅 대표

지난 달 대전에서 승객을 태우고 공항에 가던 택시기사가 운전 중 심정지로 쓰러졌지만, 함께 타고 있던 승객들이 구호조치는커녕 119에 신고도 하지 않고 자신들의 짐을 챙겨 가버린 사건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택시기사는 사망했고, 이 장면이 찍힌 블랙박스 영상에 많은 국민들이 공분하면서 ‘착한 사마리아인 법’의 제정이 이슈가 되고 있다.

‘착한 사마리아인 법’은 자신에게 특별한 위험을 발생시키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곤경에 처한 사람을 구해주지 않은 사람을 처벌하는 법이다.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은 개인의 양심과 도덕에 따른 판단이겠지만, 그 위험을 외면하는 ‘부작위’에 관해 법으로 강제를 해야 할 만큼 우리 사회가 각박해지고 있음이 씁쓸할 따름이다.

자신의 양심이 우선하는 ‘개인의 부작위’를 처벌하기에 앞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 할 책임 있는 지위에 있는 이들에 의해 이뤄지는 ‘국가의 부작위’이다. ‘옥시’로 대표되는 가습기 살균제가 국민들을 죽이고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법에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방치하고 사태를 키운 당국자들이 있다. 독성물질에 대해 유해성 심사도 정확히 하지 않고 서로 관리 책임을 떠넘기는 허가 당국,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을 때 역학조사를 미룬 질병관리본부가 있었다. 심지어 형사고발을 했음에도 3년이나 수사를 미루고 있던 ‘검찰의 부작위’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기울어져 침몰해가는 세월호 안에서 아이들이 애타가 기다릴 때 국가가 무엇을 했는지 우리는 아직도 진실을 알지 못한다. ‘사라진 7시간’에 대해 해경이 쳐다보고 있는 그 시간, 세월호 안에서 소방호스를 이용해 학생들을 구조했던 파란 바지의 영웅 김동수 씨는 억울함과 고통에 두 번이나 자해를 시도했다. 실종자 수색에 혼신을 다했던 잠수사 김관홍 씨는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당국자들의 ‘모르쇠’를 비판하며 세상을 등졌다.

또, 가진 자들의 부정을 세상에 알린 내부 고발자들에 대한 대우는 어떠한가? 그들은 공익을 위해 제보했지만 신변 보호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배신자라는 낙인을 찍으며 조직적인 불이익과 음해에 고통을 받는 것이 대부분의 현실이다. 사소하게 교통사고 현장에서도 제보를 꺼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목격자의 편의를 배려하지 않는 조사 때문에 본인이 괜히 귀찮아질 것이라는 인식이 방관자를 만드는 것이다. 범죄현장의 증인인 되는 경우는 보복범죄에 대한 우려로 두려움에 떠는 경우가 더 많다.

‘착한 사마리아인 법’을 제정하기에 앞서 우리 사회가 수많은 의인들을 어떻게 대우했는지에 대해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들을 영웅으로 받들어 달라는 것도 아니다. 최소한 의로운 행동을 한 사람이 정확히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주 부산에서 유치원버스가 빗길에 넘어진 사고에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어린이들을 구조하는 장면이 훈훈함을 주었다. 위험에 처한 사람을 돕는 것은 당연한 마음일 것이다. 우리 주변의 많은 ‘선한 사마리아인’이 안심하고 타인을 도울 수 있는 사회적인 분위기와 신뢰가 우선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안의 선한 의지는 굳이 법으로 강제하지 않아도 자연히 발현될 것이다.

또한 ‘국가의 부작위’에 의해 많은 국민들이 목숨을 잃었던 세월호 구조실패와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아직 진행 중이다. 철저한 진상 조사를 통해 지금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당국자들을 엄히 처벌해야 한다. 국가가 그 책임을 다하지 않을 때, 우리 공동체에 대한 신뢰는 존재할 수 없다. 국민들의 안전에 관한 ‘국가의 의무’를 명확히 규정하고, 책임 떠넘기기를 할 수 없도록 관련 제도를 정비해 다시는 이러한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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