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사람들이 꿈길에서 노니는 이야기(2)
옛 사람들이 꿈길에서 노니는 이야기(2)
  • 이홍길 고문
  • 승인 2016.08.29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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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홍길 고문

「만하 몽유록」의 발문에서 저자 김광수는 ‘꿈이라는 것은 마음과 뜻에 관계된 일이 생각에 감응하여 이루어지는 것’으로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마음과 뜻을 자연스럽게 드러내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언정, 꿈이 거짓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꿈이 거짓인지 아닌지는 나를 아는 것이 어느 정도 인지에 달려있다’고 거듭 다짐하여 그의 현실인식에 대한 주변의 공감을 신뢰하고 있었다. 몽유록 마지막인 7회를 따라가면서 그의 시대적 고민이 어떻게 형상화 되는가를 감응하기로 한다.

저자는 꿈길에 노니는 가운데 병자호란의 삼학사의 안내를 받아 해동 충의의 문을 거쳐 대한 충신 민영환, 조병세의 문에 이르게 된다. 고국 사정을 묻는 두 충신의 물음에 저자는 ‘지금 우리 대한의 이천만 동포는 충군 애국하는 정성과 자유롭게 활동하는 마음이 3,4년 전에 비해 몇 백배나 되지만 운세가 가고 바뀌어서 사직의 멸망이 조석에 달렸다’고 대답한다. ‘저들은 강하고 우리는 약하니 백성들이 죽을 위험에 빠지는 것이 급박하게 되었습니다. 상공께서는 밝은 영이시니 혹 저승 세계에서 도와주시지 않으시렵니까?’하고 애소하면서 ‘만백성의 운명은 도탄에 빠져 힘겨워 하고 일제의 압제를 받아 욕을 당하니 살았어도 살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하고 고국의 사정을 전한다.

이어서 자살한 두 충신에 대한 저자의 아쉬움이 계속된다. ‘사람마다 모두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린다면 우리 임금은 장차 누구와 환난을 함께하며 또한 누구와 더불어 세상을 다스리겠습니까. 두 공께서는 국가의 기둥이요 세상 사람들의 태산 북두성이니 위로는 임금의 마음을 바꿀 수 있고 아래로는 백성의 바람을 거둘 수 있습니다. 충성과 힘을 다하여 임금을 보필하고 백성을 구제한다면 삼천리 강산과 오백년 사직을 다시 일으킬 수 있을 것입니다’, ’군신과 부자가 성을 등지고 한번 싸워 사직과 함께 죽어도 좋았지요. 계책은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데 죽음을 먼저 하였으니 나라의 기둥은 꺾였고 태산북두도 무너진 것입니다. 비록 죽은 자는 영예롭다 하더라도 백성들은 어떻게 합니까?’ 두 혼령을 앞에 둔 저자의 아쉬움과 애통은 절절하다.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단발령을 당한 후 러시아 공사관에 피신한 고종은 애통 조서를 발표했고, 유인석을 비롯한 많은 선비들이 의병을 일으켰다. 유인석은 「격고 팔도열읍」의 격문을 발하는 속에서 ‘군신, 부자가 마땅히 성에 배수의 진을 치고 한번 싸워볼 생각이 있는데 천지 귀신은 어찌 밝은 데로 향하는 이치가 없겠습니까?’라고 말하고 있는데, 김광수의 결전의지도 유인석의 격문과 그 괘와 결을 같이 하고 있고, 을사늑약으로 자진한 시종무관장 겸 육군부장 민영환의 유서 「결고아 대한제국 이천만 동포」에서 ‘영환은 죽어도 아주 죽는 것이 아니요 기필코 구천 밑에 가서라도 제군들을 도우리라’고 다짐하고 있어 몽유록 저자의 도움 요청이 내력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된다.

저자 김광수의 애소에 민영환과 조병세의 혼령은 통곡하고 슬퍼하며 탄식하고 말한다. ‘내가 전에 속으로 생각하기를 이 몸이 인간 세상에 있으면 드러내놓고 죽일 수 없지만 혼이 되어 지하세계로 돌아가면 저들을 몰래 벨 수 있을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한번 저승에 드니 아득하고 어두워 인간 세상의 일에는 간여할 수 없었습니다’하고 말하였다. 어찌해볼 수 없는 막다른 현실에서 신령의 보우를 기대하는 것은 유인석도, 민영환도, 조병세도, 또 저자 김광수도 마찬가지여서 우리 애국가의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가 민족의 심리적 내력을 갖고 있음을 새삼 느낀다.

망국 이후 또 분단 이후 사드정국이 바야흐로 무르익는 내우외환의 오늘에 이르기까지 신령들과 하느님의 보우는 왜 일어나지 않는지 야속하기만 하다. 사람의 일은 민영환의 혼령이 말하듯 ‘한번 저승에 드니 아득하고 어두워 인간세상의 일에는 간여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인간들의 몫일 수밖에 없음을 몽유록 저자는 혼령의 입을 빌어 제시하고 있었다. ’저들은 강하고 우리는 약하니 부끄러움을 머금고 욕됨을 참으며 교제를 친밀히 하여 그와 더불어 개화를 하여야 합니다. 십년간 무리를 모으고 십년간 가르쳐서 지식을 교환하고 기계 다루는 일을 마치며 재원을 원활히 유통시켜서 백성을 활동하게 합니다. 그런 후라면 수모를 막고 원수를 갚을 수 있겠습니다.‘

위정척사론을 벗어난 애국계몽가의 모습을 저자에게서 발견하게 된다. 외국과 교제를 친밀히 한다는 충고를 통하여 치우치지 않는 등거리 외교가 우리들의 국제적 활로임을 꿈속의 옛사람들을 통해서도 실감하게 되니, 미국과 중국의 줄다리기에서 추락하고 짓밟히는 일은 없어야겠다. 분명 온고지신은 영원한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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