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들이 꿈길에서 노니는 이야기(1)
옛사람들이 꿈길에서 노니는 이야기(1)
  • 이홍길 고문
  • 승인 2016.08.16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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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하 몽유록을 소개한다①
▲ 이홍길 고문

광복절 날 박 대통령의 경축사를 듣는다. 자긍심을 고취하고 단합해서 발전의 원동력을 되살리자고 말한다. 진정한 개혁은 통일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라는 말로 개혁과 통일을 한데 묶는 전에 없던 발상을 내놓기도 한데, 전혀 실감이 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일본에 대해서는 역사를 직시해 미래지향적 관계를 만들자고 주문하는데 원님 맞는 황토 깔기의 도로미화작업이 아니길 바랄뿐이다. 기득권만 지키면 공멸한다는 반성적 화두가 심금을 울릴 법도 한데, 사드는 자위권적 조치라는 강변에 “기득권만 지키면 공멸”이라는 그녀의 반성적 화두의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

사드가 한`미`일 연맹의 군사체제를 완비하여 구 냉전체제에서 그들이 마음껏 구가하고 누렸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한 외연 장치임이 분명한데도, 그럴싸한 말로 우리들에게 고질화된 불안의식을 자극하는 안보몰이로 신 냉전체제의 주춧돌을 놓아, 기득권 안보의 신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라는 필자의 판단이 터무니없는 억측이라면 우리 모두를 위해서 천만다행이겠다.

중국과 러시아가 사드를 반대하면서 으름장을 놓고 있는데 중국은 제일 교역국이라는 사실, 중국시장 상실이 명약관화한 지경을 만들면서 발전의 원동력을 되살리자고 채근하는 뱃심은 어디서 나올까가 궁금해진다. 여걸은 남다르다 하고 감탄하면서 이웃들과 덕담이나 나누면 그만이겠지만, 사드파동으로 위태로워질 것이 분명한 국가공동체의 미래가 안타깝기만 하다.

부끄러운 자화상이지만 한민족공동체는 숱한 전란을 겪으면서도, 망국의 설움을 씹으면서도, 압제자와 외세의 수모를 당하면서도 끈기와 은근으로 살아남아 온 생명력이 있었음을 상기한다. 계속 긴장하고 불안하면 삶이 망가지기 때문에 출구를 찾아야 한다. 상상 속에 출구는 꿈속에서만 찾아지는데 일찍이 우리 조상들은 그 묘리를 터득했던 것 같다. 몽유록(夢遊錄)을 읽기로 한다.

몽유록은 꿈속에서의 삶을 기록한 것으로 조선의 중․후기 작품들 속에 나타나고 있는데 남가일몽의 고사도, 김시습의 금오신화 등이 그 일종이다. 이광수의 꿈도 같은 계열의 한 버전이라 하겠다.

오늘 여기에서 본격적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작품은 김광수(金光洙)의 「만하몽유록」이다. 호가 만하(晩河)인 저자는 이웃 장성 출신으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를 살았는데, 그의 몽유록은 시골의 한 젊은 지식인이 자신의 삶과 세상을 바라보며 고민한 문제를 형상화 한 고소설로 1907년 작이다.

이 작품이 우리가 관심을 갖기에 충분한 것은 작자의 한말의 국제정세와 국내정세에 대한 정보와 함께 그의 높은 식견과 인식이 드러나 있고 우리나라에 닥칠 미래에 대한 예견 또한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청이 망할 수밖에 없는 까닭을 설파하고 앞으로의 각국은 자본주의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언급과 일본과의 의병전쟁에 있어서는 지구전이 양책이라는 주장은 모택동과 장개석이 일본과의 싸움에서 시간을 공간으로 환치하는 지구전으로 마침내 최후의 승리를 담보하는 선하인 것 같아 그 전략 전술 감각의 탁월성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국문학자들은 애국계몽기와 일제초기에 몽유록 작품이 많이 쏟아져 나왔음을 말하면서 만하 몽유록은 옛 전통적인 몽유록에서 개화기 몽유록으로 가는 과도기적 특징을 보여준다고 한다. 수많은 중세 봉건적 고사와 인식이 함께 나타난다는 점에서 그 과도기적 자리매김의 근거를 찾는다. 국문학자가 아닌 필자가 관심을 갖는 것은 작품의 문학사적 위치보다도 그가 살았던 시대를 그가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던가와 지식인으로서의 그의 오뇌와 번민을 알고 싶은 것이다.

그는 일제의 학정에 항의하는 가운데 1915년 장살당한 이름 없는 의인이었던 것이다. 그의 많은 작품은 해제에 의하면 그의 아들 대(代)에 그 집안이 동란전후 좌우갈등과 투쟁 속에서 백양사 입구에 있었던 그의 집은 물론 마을 전체가 소실되어 그의 작품 또한 망실되어 세상에 전해질 수 없게 되었다.

만하 몽유록 중 제7회의 「저승 들어 충신역적 상벌 줌을 두루 보고 신궁에 가 조손간의 정의를 펼쳤구나.」를 간추려서 소개하고자 한다. 시대와 공동체에 책임을 다하려는 의기에도 불구하고 몽유로 출구를 마련할밖에 없던 선비와 민초들의 무기력을 슬퍼한다. 그러나 슬픔 뒤의 다짐은 꼭 있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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