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의 《매천야록》을 읽고
황현의 《매천야록》을 읽고
  • 조성효 시민기자(대광여고 3학년)
  • 승인 2015.04.16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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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성효 대광여고 3학년

매천(梅泉) 황현은 구한말의 지식인이다.
어릴 적부터 총명하여 그의 스승인 왕석보는 황현이 훗날 반드시 훌륭한 선비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왕석보의 말대로 황현은 한말 글 솜씨로 인해 삼재(三才) 중 한 명이 되었으나 과거를 응시하는 도중 맛보게 된 사회의 부정부패에 실망하여 평생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초야에 묻혀 살았다.

전남 구례 월곡마을에 칩거하며 《오하기문》《동비기략》등의 책과 수많은 시를 남겼으며 《매천야록》은 그의 저서 중 하나로 개항기인 1864년부터 1910년 경술국치까지의 구한말을 편년체(통시적 기록 방식)로 기록한 책이다. 나는 허경진 교수의 매천야록 번역판을 읽었다.

매천야록은 총 6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황현은 1권에는 약 30년이란 세월을 연월일도 없이 때로는 과장되게, 때로는 시간 순서도 맞지 않게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2권부터는 꽤나 자세하고 정확한 서술을 하고 있으며 지식인으로서 조선의 앞날을 걱정하는 현실 비판적인 태도가 주를 이룬다.

매천야록을 통해 개화부터 강제 합병까지의 근대사에 대한 황현의 시각을 접할 수 있으며 망해가는 조국에 대한 황현의 걱정과 안타까움을 느낄 수 있어 구한말을 보다 생생하게 들여다 볼 수 있다. 보통 역사책에서는 깊게 다루지 않는 한말 인물들의 행보를 자세하게 서술한 것도 매천야록의 특징이다.
역사책을 집필하려는 목적보다는 재빠르게 변화하는 정세에 대해 각주를 붙이는 형식으로 서술하였기 때문에 그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사건들을 임의로 골라낼 수 있어 인물을 많이 다루는 것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황현에게도 한계는 있었다.
첫째로 매천야록에 실린 기록의 편중과 사실여부이다. 서울에 있는 동안은 직접 경험한 내용을 써내려갔지만 구례에 칩거할 때는 나라가 돌아가는 소식을 다른 사람의 이야기와 신문에 의존해 알 수밖에 없었다.
둘째로는 양반이라는 신분이다. 재야 선비로 머물러있으며 나라를 진심으로 걱정한 그였지만, 재지사족의 입장에서 그는 동학과 의병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다. 한말, 국가가 속수무책으로 열강에게 이권 침탈을 당할 동안 그에 맞서 직접적인 개혁 정강을 펼치고 황무지를 되찾는 쾌거를 이룬 근본이 농민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매우 아쉬운 태도이다.

역사적 배경 지식이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이 책의 모든 사건과 인물들을 낱낱이 알아야만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매천야록은 역사책의 기능보다는 황현의 주관적인 시선에 더 중점이 있으며 그의 비판적 태도를 중심으로 큼직한 사건들만 잘 따라간다면 충분히 이 책을 잘 읽었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오늘날 급변하는 국제 사회에서 우리나라가 주체성을 지키며 어떤 외교 정책을 펼쳐야 할 지 생각해볼만 하다.

구한말과 같이 시대를 거스르는 정책을 펼치다 강대국에게 휘둘릴 것인지, 동학 농민운동 정신을 계승한 민초들의 여론을 수렴하여 새로운 방법을 구할 것인지, 새로운 강대국들 사이에서 양보와 강경한 태도의 균형을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지 등에 관한 다양한 숙고를 통해 우리가 가야 할 길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역사를 배우는 법이고, 황현의 매천야록은 우리에게 그 길을 안내해주고 있다.

새와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네
무궁화 이 나라가 이젠 망해 버렸네.
가을 등물 아래 책 덮고 지난 역사 생각해 보니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 어렵기만 하구나.

절명시 중 제 4수이다. 황현의 우국 의식과 깊은 슬픔이 진하게 배어 있다. 특히 마지막 수에서는 경술국치를 맞는 지식인의 사명의 무게를 묵묵히 감당하는 황현의 절조 있는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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