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추가절(仲秋佳節)에 추사(秋史)의 난차망(孏且莽)을 읽다
중추가절(仲秋佳節)에 추사(秋史)의 난차망(孏且莽)을 읽다
  • 이황 만암주역학연구소장
  • 승인 2017.09.26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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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사(秋史) 선생의 시, 난차망(孏且莽) 목각판

난차망(孏且莽)

한가롭고 또 여유롭구나

 

소봉래수(小篷萊手)

소봉래에서 쓰다.

*小蓬萊 : 추사의 집 뒤에 절로 오르는 길가 바위에 새긴 글이기도 하다. 이는 도가적인 은둔자의 사상도 은연중 담긴 글 일게다.

 

小亭怪石如人立(소정괴석여인립)

작은 정자 주위에 괴이한 돌은 마치 사람같이 서있는 것 같고

壞道哀湍動客吟(괴도애단동객음)

허물어진 길 물도랑에서 나는 물소리 길손이 읊조리는 것 같구나.

雪霽大江看石壁(설제대강간석벽)

눈 개인 큰 강엔 석벽이 바라보이고

楳開古寺訪寒溪(매개고사방한계)

매화 핀 옛 절엔 찬 냇가의 계곡물 소리뿐이네.

寺前絶壁高千尺(사전절벽고천척)

절 앞 절벽은 그 높이가 천척에 이르고

澗上蒼松大十圍(간상창송대십위)

개울 위 푸른 소나무 크기가 십 아름드리어라.

曾于雨後鋤瓜否(증우우후서과부)

비온 뒤 일찍이 오이 밭은 메었는가?

纔自庄西割麥歸(재자장서할맥귀)

겨우 서쪽 집 근처 보리는 베고 돌아왔구려.

亭是盧公吟杜地(정시노공음두지)

이 정자는 본시 노공이 두보의 시를 읊조리는 곳이요.

*盧公 : 누구인지 필자로서는 알 수 없음. 다만 청대의 노문초(盧文弨)를 칭한 것으로 추측해 봄. 노문초는 청대의 유명한 경학가로써 경의(經義)에 통하여 벼슬이 시독학사(侍讀學士)에 이름.

家隣董子讀書臺(가린동자독서대)

집 가까이에는 동중서가 읽는 독서대가 있네.

*董子 : 당대에 유학을 국교로 확립시킨 대학자 동중서(董仲舒)를 칭함. 저서로는 춘추번로(春秋繁露)가 있고 춘추(春秋)에 대한 당대 최고의 학자였음.

人與梅花太冷澹(인여매화태냉담)

사람과 매화는 서로 같아 매우 차고 담박하거늘

天敎明月來商量(천교명월래상량)

하늘로 하여금 밝은 달이 비춰 헤아려 생각케 하네.

酒美便恩招快友(주미편사초쾌우)

좋은 술이 있어 문득 유쾌한 벗을 부르고 싶고

詩狂直欲上靑天(시광직욕상청천)

시에 미쳐 곧바로 푸른 하늘로 올라가고 싶네.

從今習氣消除盡(종금습기소제진)

이제부터는 세속의 습기를 다 씻어내고

向後浮雲自在行(향후부운자재행)

앞으로는 뜬구름처럼 세상을 마음대로 살고 싶다네.

離奇柳樹嵇中散(이기류수혜중산)

괴이한 수양버들 숲은 혜강이 살았던 곳이요

*혜중산(嵇中散) : 혜강(嵇康), 죽림칠현의 한 사람으로 벼슬이 중산(中散)이었음. 기이한 수양버들 숲 속에서 대장간을하였음.

窈窕梅花宋廣平(요조매화송광평)

요염한 매화는 송광평과 같네.

*송광평(宋光平) : 당대(唐代)의 정승(政丞)을 지낸 이로 그의 매화부(梅花賦)라는 시(詩)가 유명함.

數行怪鳥穿深竹(수행괴조천심죽)

수많은 괴이한 새떼는 대숲을 뚫고 들어오고

百丈寒藤上古松(백장한등상고송)

백장 높이의 등나무는 늙은 소나무를 타고 올라가네.

万山之外重携手(만산지외중휴수)

만산 밖에 있는 친구와 손을 맞잡고 싶은데

一月爲期住小齊(일월위기주소제)

달 하나 내가 머무는 이 작은 정자에 비추고 있네.

龕裏維摩看偈語(감리유마간게어)

감실 안 유마거사의 게송 다 살펴보고

門前老樹無秋聲(문전노수무추성문)

문 앞의 늙은 소나무는 가을이 왔는데도 소리가 없네.

老槐燈火圍書屋(노괴등화위서옥)

낡은 등잔은 작은 서실을 비추고,

明月鬚眉照酒人(명월수미조주인)

밝은 달은 술 취한 내 눈썹과 수염을 비추네.

紅葉已飄山四際(홍엽이표산사제)

붉은 단풍은 이미 온 산에 사방으로 흩어지고

白雲忽起樹中間(백운홀기수중간)

흰 구름은 홀연히 일어나 나무 숲속으로 흘러가네.

人間怪鳥古難識(인간괴조고난식)

인간이란 괴이한 새떼처럼 옛부터 알기 어려운데

天上一星何處來(천상일성하처래)

하늘에 떠있는 별은 어디에서 오는가?

花始破萼 禽皆出巢(화시파악 금개출소)

꽃술은 배시시 입을 벌리고 새들은 모두 집에서 나오는데

筆意亦動 偶然欲書(필의역동우연욕서)

붓 들어 일필휘지 하고파 붓 가는대로 우연히 쓰다.

 

果老 金正喜(과로 김정희)

과천의 늙은이 김정희

 

이 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추사의 친필 시첩에서 옮긴 것이다. 번역이 완전하지 못함을 알지만 10여일에 이르는 연휴가 낀 정유년 한가위에 한 시대를 풍미한 대학자이자 서예가의 32행에 이른 7언 시를 감상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해서 올려본다.

추사의 글씨 중에서도 ‘우연욕서(偶然欲書)’는 지금까지 4편 정도가 발견 되었다고 한다. 누군가를 위해 쓰는 작품,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작품이 아니라 ‘필의역동(筆意亦動)’하여 일필휘지 하는 작품이 최고일 것임에 이의가 있겠는가? 그래서 이 시는 추사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높이 쳐주는 명필로 평가 받는다.

이 시는 말년에 자신의 인생을 마무리하는 의미가 담긴 시이자, 중국 역사상 위대한 사상가이거나 시인들과 자신을 비교하여 회고하는 시로, 지식인의 고뇌가 고스란히 드러난 명작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시첩은 추사 글씨에 대한 최고 감정가였던 이가원 교수가 감정하고, “추사선생의 가장 훌륭한 뜻과 힘을 모은 최득의지작(最得意之作)”이라 평하였던 작품이다.

필자는 이 작품을 가로 220센티 세로 70센티에 이른 대형 괴목판(사진)에 각을 하여 사무실에 걸어 놓고 늘 감상하고 있다. 번역의 부족함을 여러 독자들의 지적으로 보충하고자 한다. 또 시(詩)를 이해하는 것이야 해석하면 되지만 서체를 접하는 것은 이런 지면으로는 쉽지 않은 탓에 판각한 사진도 올려 보는 것이다.

한가위 연휴에 추사 시를 들고 나온 데는 또 다른 진짜 이유가 있다. 지금 한반도 주변정세는 한말의 상황과 너무나 유사한 상황이다. 다른 것은 딱 하나 문재인 정권이 정확히 촛불에서 잉태한 『촛불정부』라는 것이다. 헌정 이래 이 땅에서 최초로 완전한 민의의 정부란 뜻이다.

촛불이, 민중이 세운 정부이지만 잘되고 못되고는 전적으로 지성을 갖춘 지식인의 몫이 아니겠는가? 추사 김정희 선생 같은 그런 지성을 말하는 것이다. 북핵을 중심으로 세계 4대 열강이 다시 한반도에서 세력 싸움을 전개하고 있는데, 우리에게는 이를 주도적으로 풀어나갈 지도력이 보이질 않는다.

6.25전쟁이라는 내전화된 세계 이데올로기 전쟁을 이 좁은 땅에서 민족의 희생으로 치러야 했는데 우리는 그 굴레에서 한발자국도 비켜서지 못하고 있질 않는가?

추사 시를 정리 하면서 오래 전에 읽은 김기림 시인의 시가 자꾸 뇌리에 떠오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남북분단은 우리 삶의 모든 것에서 영향을 미치고 있고, 학문과 사상에 있어서는 우리 지성사를 절름발이로 만들어 왔다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다. 6·25전쟁 때 납북작가로 알려진 김 시인의 시 『다시 팔월(八月)에』의 후반부에서 그는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백성들의 슬픔 노염 몸부림 속에서

시시각각 커가는 꿈 백성의 나라

지층(地層)을 흔들며 파도치며 그는 거기

우리들 곁에 닦아 오지 않느냐

 

가슴마다 노래를 기르자

불독아니처럼 세차게 타오르자 별가까히 닥아서자

어듬지튼 까닭에 홰불은 도리혀 그뭄밤이 곻읍지 않느냐

 

반석(磐石)처럼 밀물처럼 시간(時間)의 수레에 밀려

그는 지동(地動)치며 오지 않느냐

 

1948년에 발행된 시집으로 ‘민족공동체의 재발견’이라는 기치로 발간한 시집 『새노래』에 실린 시(詩)인데, 8.15 해방을 다시 생각하며 지은 시일게다. 마치 지난 겨울에 우리가 들었던 촛불, 바로 그 슬픔, 노여움, 분노를 노래하고 있다. ‘어둠이 짙은 까닭에 횃불은 도리여 그믐밤이 곱지 않느냐’. 지난해 온 나라를 뒤흔든 촛불이 그랬다. ‘반석(磐石)처럼 밀물처럼 시간(時間)의 수레에 밀려 그는 지동(地動)치며 오지 않느냐’. 그렇다.

따라서 ‘그는’과 같은 인재를 길러내는데 노력하는 사회를 염원해 본다. 시인이 말하는 ‘그는’이 민족을 구할 메시아가 아니어도 좋다. 지성이 넘치는 나라, 그래서 국격이 높은 나라가 되는 것을 바란다. 그것은 통일을 이루거나, 최소한 남북이 서로 공정하게 서로를 인정하고 상호협력의 공동체가 되었을 때에야 국격을 높일 수 있을 것 같아 하는 말이다. 농부가 봄부터 피땀으로 힘써 가을의 결실을 얻고,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며 풍성한 한가위를 맞이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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