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섬기기
부모 섬기기
  • 문틈 시인
  • 승인 2017.09.20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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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놀드 토인비는 세상을 떠날 때 하늘나라로 가지고 가고 싶은 것이 있다면 한국의 대가족제도라고 한 적이 있다. 세계적인 역사철학자가 한국의 대가족 제도를 극구 찬탄한 때가 엊그제 같은데 대가족제도는 한 세대만에 붕괴되고, 그나마 핵가족에서 떨어져나가 독립 세대를 이룬 1인 가정이 인구의 30퍼센트에 달한다.

대가족-핵가족-1인 가족으로 급변하는 우리의 가족제도는 그 미래를 예감하기 어려울 정도로 급격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예전엔 부모가 자식을 키운 후에 노년에 자식의 보살핌을 받는 인생 여정을 기대했으나 지금은 노후에도 자식들의 보살핌을 기대할 수 없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고단한 여생을 걸어가야 할 처지가 되었다.

대가족제도는 이제 박물관에 처박혀 있다. 가족제도가 붕괴, 분화되어가는 원인의 하나로 나는 아파트 살이를 든다. 아파트는 아무리 커도 대가족이 살기 어려운 구조다. 핵가족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그들끼리 오순도순(?) 살아가게 설계된 구조다.

이제는 그것마저도 싫다 하여 장성한 자식들은 결혼하기 전에 집을 탈출하여 1인 가구로 독립하는 중이다. 살기가 힘들어진 것은 서로에게 의지가지하며 살기를 거부하고 홀로서기를 하려는 데서 온 탓도 있다. 이제는 옆집 사랑 밑 숟가락 갯수를 알던 이웃사촌은 없다. 아파트 살이를 하면서부터 옆집과 친교를 나누며 살던 풍습도 사라져버렸다.

한국에서 늙어간다는 것은 하나의 질병이나 다름없다. 젊어서 고생하며 자식들을 대학 보내고, 결혼시키고, 집 마련해 주고 나서는 폭삭 늙은 몸으로 어디 기댈 데 없이 남은 여생의 생계를 꾸려가야 한다. 청년들이 ‘헬조선’이니 하는 말을 함부로 하는데 연세 든 분들이야말로 헬코리아다.

제금난 자식들은 부모 찾아뵙기를 꿈에 떡 보듯 한다. 고려장이 따로 없다. 물론 이 나라가 노인들의 나라가 아니란 것을 모를 사람은 없다. 그렇다 치더라도 이건 너무한다. 이웃 일본은 부모가 늙으면 멀리 떨어져 살다가도 자식들이 부모 곁으로 이사를 가서 가까운 거리에서 부모를 보살피는 것이 사회가 합의한 풍습이다.

늙고 병들어 어쩌지 못한 지경에 처한 부모들이 급격히 늘고 있다. 대체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까. 옛날 영화에 ‘바렌’이라는 영화가 있다. 에스키모의 생활을 그린 영화다. 노모와 함께 이글루에서 함께 살던 아들 가족은 사냥감을 찾아 썰매를 타고 이동하면서 생활한다.

노모가 늙어 거동하기 어려운 상태에 이르게 되자 아들은 북극 추운 얼음판에 곰털 방석을 깔고는 그 위에 어머니를 앉혀두고 일가족이 썰매를 타고 다른 곳으로 출발한다. 노모는 아들 가족에 손을 흔들며 얼음바닥에 앉아 죽기를 기다리고 있다.

가까운 얼음더미 뒤에 있던 백곰이 어슬렁어슬렁 노모가 앉아 있는 곳으로 오고 있다. 눈물을 흘리면서 바라본 비정한 장면이었다.

인디언의 노인들은 천문을 잘 본다고 한다. 자식 등에 업혀 터전을 옮겨가는 중에 열심히 하늘을 보며 눈비가 올지를 알아내 가족들에게 알려주는 것으로 ‘밥값’을 하다 보니 저절로 전문가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한몫을 담당하여 죽을 때까지 아들 가족의 보살핌을 받는다.

지금은 그런 수렵이나 유목생활을 하는 시대가 아닌데도 노부모는 사실상 자식들로부터 버려진 채로 살아가는 노부모들이 많다. 늙는 것도 서러운데 늙어서 비바람치는 광야에 남겨지는 살풍경은 차마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이다.

그런데 자식들이 버린 노부모를 국가가 섬기겠다고 나섰다. 노인들에게 기초연금을 크게 올려 주고 복지 공무원이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아프면 저렴한 비용으로 치료해주는 시스템으로 바꾸어가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돈 가지고도 안 되는 것이 있다. 따스한 마음으로 외로움을 덜어드리는 일이다. 이 일은 천상 가족밖에는 할 도리가 없다.

노령 인구는 급격히 늘어가는 데 국가가 돌보는 데는 한계가 있다. 곳곳에 노인요양원이 들어서고 있는 모습을 보면 착잡한 생각이 든다. 그곳에 인생의 황혼기에 이른 몸을 의탁하고 생의 마지막 페이지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면 늙는다는 것이 질병을 넘어서 머리끝이 쭈뼛 서는 공포로 다가온다.

그러니까 이 나라의 노인들은 늙고 병든 채 누구의 따스한 돌봄도 받지 못하고 마지막 길을 나서야 한다. 마치 폭풍에 흔들리는 여객기에서 벨트를 매라는 지시를 받은 승객처럼.

우리는 새로운 시험을 치르고 있다. 긴 노년기를 보낼 시니어들에게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 지원을 어떻게 해주어야 할 것인가. 노령 인구가 늘어나는 것을 누구는 재앙이라고 하는데 그것을 축복으로 바꿀 묘책은 없을까.

노인들이 모두 천문지리에 통달하지 않고도 자식들의 돌봄을 받을 수 있는 길은 없을까. 인간의 말년이란 쓸쓸한 것이 당연한 일이고, 그래서 그 쓸쓸함을 담담히 받아들여야 한다고도 하지만 말이다. 노인의 축 처진 어깨를 안아줄 따스한 손은 없단 말인가. 그런데 90세의 어머니는 밤하늘의 별이 달에 가끼우면 비가 올 징조라고 귀뜸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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