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44) 야좌차두시운(夜坐次杜詩韻)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44) 야좌차두시운(夜坐次杜詩韻)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7.09.03 08: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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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한 백년 세월이 참으로 슬프기만 하구나[1]

나이 들면 밤에 자는 잠이 적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초저녁에 일찍 자고 새벽이면 일찍 일어나 지난날을 회상하거나 옛 시문을 떠 올리기도 한다. 시인도 예외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잠도 오지 않는 깊은 밤에 두보나 도연명의 시에 취해서 빠지기도 하고 시에 운자에 차운하는 시도 짓는다. 율시였으니 2구․4구․6구․8구에 있는 운자는 당연했을 것이니...

자기가 하고자 하는 대로 일은 되지 않고 몸은 병들어 있음을 한탄하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夜坐次杜詩韻(야좌차두시운)[1] / 유항 한수

오늘도 뉘엿뉘엿 날은 또 저물고

무심한 백년 세월 참으로 슬프구나

뜻대로 되지도 않고 병이 들고 늙었네.

此日亦云暮            百年盡可悲

차일역운모            백년진가비

心爲形所役            老與病相隨

심위형소역            노여병상수

 

무심한 백년 세월이 참으로 슬프기만 하구나(夜坐次杜詩韻1)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율시의 전구다. 작자는 유항(柳巷) 한수(韓修:1333~1384)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오늘도 또 하루의 날이 이렇게 저물어 가는데 / 무심한 백년 세월이 참으로 슬프기만 하구나 // 마음먹은 대로 일은 잘 되지를 않고 / 몸은 자꾸 늙어서 병마저 따라서 생겼나구나]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밤에 두보의 운에 맞춰 시짓다1]로 번역된다. 약관의 나이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던 시인이고 보면 남보다 먼저 세상의 영화를 누렸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인간에서 주어진 운명이 있다면 가야할 길은 평생선이다. 생명이 유한이라면 벼슬길도 영원할 수는 없는 법임을 가르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처럼 승승장구가 아닌 인간의 한계가 있다면 시인은 나이 연만하여 한거의 생활에 몰입하고 있음을 직감한다. 날이 저물어 가니 무심한 백년 세월이 슬프다고 했다. 사람이 한번 마음먹은 대로 일이 되지 않는다고도, 몸이 늙어 병들었다고도 한 내용에서 깊은 상관관계가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모든 것이 젊은 나이의 자기가 아님을 고백하고 있다.

화자는 마음먹은 대로 일은 잘 되지를 않고 몸이 자꾸 늙어 병마저 따라서 생겼다고 한탄했다. 후구로 이어지는 시인의 상상력은 [연기 냄새 식으니 향불은 꺼지고 / 창문이 환해지면서 둥근 달이 떠오르네 // 마음속이 답답하나 함께 할 이 없으니 / 애오라지, 옛 사람의 시에 응대하며 답이나 하자] 라고 했다. 옛 사람의 시에 응대하며 시나 읊으며 살겠다는 다짐이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하룻날 저물어 가고 백년 세월 슬프구나, 일은 마음대로 되지 않고 몸은 늙고 병만 생겨’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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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유항(柳巷) 한수(韓脩:1333~1384)로 고려 말의 문신이다. 1347년(충목왕 3) 등과, 여러 벼슬을 거쳐 동지밀직에 이르러 공신의 호를 받고 청성군에 피봉되었고, 판후덕 부사 재임시 사망했다. 지행이 높고 견식이 밝아 사림의 모범이었고, 특히 초서·예서를 잘 썼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한자와 어구】

此日: 오늘. 亦: 또 다시. 云暮: 날이 저물다. 百年: 백년. 흘러간 세월이 무심함. 盡可悲: 모두 참으로 슬프다. // 心爲: 마음대로 하다. 形所役: 부리는 바가 되지 못함(부정의 뜻이 있음). 老與病: 늙고 또한 병들다. [與]는 ~과. 앞과 뒤를 이은 연사. 相隨: 따르다. 곧 [老]와 [病]이 따르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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