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6) 정부사(征婦詞)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6) 정부사(征婦詞)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7.04.26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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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역에 끌려간 남편을 향한 아내의 애정어린 노래

옛날의 노역 제도는 지금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상상을 초월했다. 전쟁을 위해 한 번 변방으로 끌려갔다하면 전쟁이 끝나야 돌아올 수 있었고, 노역에 끌려갔다하면 대역사(大役事)가 마무리 되어야 귀향할 수 있었다. 이것이 당시의 제도이고 관례였다. 중국의 만리장성을 쌓는 일도 그랬고, 한 전쟁에서 수십 년 동안 병사나 노역으로 전쟁을 치렀던 우리의 역사에서도 그런 기록을 만날 수 있다. 아래의 한시는 이런 점에 착안하여 읊었던 작품으로 다음과 같이 번안해 본다.

 

征婦詞(정부사) / 포은 정몽주

이별인사 이후로 소식조차 감감하고

변방가신 임 생사 그 누가 알려주나

가실 때 아이 편에다 옷 한 벌을 보냅니다.

一別年多消息稀     塞垣存歿有誰知

일별년다소식희     새원존몰유수지

今朝始寄寒衣去     泣送歸時在腹兒

금조시기한의거     읍송귀시재복아

 

노역에 끌려간 남편을 향한 아내의 애정어린 노래(征婦詞)로 칠언절구다. 작가는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1337~1392)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한번 이별을 했건만 지금까지 소식일랑 감감하니 / 변방의 임의 생사 어느 누가 알 수 있겠어요 // 오늘에야 이 애 편에 겨울옷 한 벌을 부치오니 / 떠나실 때 뱃속에 있었던 아이는 눈물로 인사를 했답니다]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남편이 전쟁에 나간 아내의 노래]로 번역된다. 우리 선현들이 쓴 한시에는 별리(別離)를 노래한 운문이 상당히 많았다. 이별은 가장 아픈 정한으로 표현되어서 이 과정 모두는 슬픔이고 두려움이었다. 그러면서 다시 만날 기약을 한다면 그 애절함을 담을 수밖에 없었다. 남편이 군역에 끌려가 소식도 없고 생사조차 알 길이 없었다면 더욱 말할 수 있으랴.

시인은 날씨가 추워져서 남편에게 옷 한 벌을 지어 부치게 된다. 은근과 끈기로 참았던 한국 여인의 전형이다. 한번 이별했건만 지금까지 소식일랑 감감하니 변방의 임의 생사 어느 누가 알 수 있겠는가를 묻고 있다. 이것은 당시의 제도이고 규정이었다. 생사조차 알 길 없다는 깊은 정한을 담는다. 아버지의 얼굴도 모르고 이만큼 장성한 자식을 보았을 것으로 생각되는 아비의 심정은 어떠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겠다.

화자는 오늘에야 이 애 편에 겨울옷 한 벌을 부치오니, 떠나실 때 뱃속에 있었던 아이는 눈물로 인사했다고 적는다. 내용의 구구절절함은 여인의 기다림이란 단어에서 엿보게 되는 은근과 끈기로 참아낸 한국 여성의 전형을 보인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한 번 이별 소식 감감 임의 생가 알 수 없어, 아이 편에 옷 한 벌 부치니 뱃속인사 했답니다’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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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로 고려 말의 문신, 학자이다. 성균관 박사로 유교 경전을 강의하던 당시 고려에 들어온 경서는 <주자집주> 밖에 없었는데, 정몽주의 강의를 듣던 사람들 가운데 그의 유창한 해석에 의심을 품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전한다.

【한자와 어구】

消息: 소식, 문안인사. 稀: 드물다. 塞: 변방, 국경지대. 垣: 담, 혹은 관청. 存歿: 소식이 없다. 有誰知: 누가 있어 알 수 있겠는가. // 今朝: 오늘 아침. 始寄: 비로소 부치다. 寒衣去: 겨울옷을 가지고 가다. 泣送: 눈물로 보내다. 歸時: 떠나실 때. ‘歸’는 가다와 오다는 뜻을 내포함. 在腹兒: 뱃속 아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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