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6) 송인(送人)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6) 송인(送人)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6.11.30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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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별의 눈물만 푸른 물결 더하는데

한국인의 가슴 속에는 많은 한이 서려있다. 수많은 침략의 시달림 때문일까. 아리랑과 흰옷이 상징적으로 주는 민족성 때문이었을까. 여인들이 느끼는 한은 더 했다. 참아야 하고, 쓰린 가슴을 부여안아야 했다. 이런 한을 더욱 부채질했던 일이 바로 이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이별과 한은 상관관계가 크다. 아래 한시도 이별의 정한(情恨)을 나타내고 있는데, 흘린 눈물이 대동강 물을 더한다는 구절에서 두 무릎을 치면서 아래와 같이 번안해 본다.

送人(송인) / 남호 정지상
비 개인 강둑에 풀빛도 물이 들고
남포로 임을 보낸 노랫가락 구슬픈데
대동강 마르지 않아 더해가는 이별눈물
雨歇長堤草色多    送君南浦動悲歌
우헐장제초색다    송군남포동비가
大同江水何時盡    別淚年年添綠波
대동강수하시진    별루년년첨록파

 

해마다 이별의 눈물만 푸른 물결 더하는데(送人)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남호(南湖) 정지상(鄭知常:?~1392)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비 개인 긴 강둑 위에 풀빛이 진하기만 한데 / 남포로 임을 보내는 노랫가락은 구슬프기만 하구나 // 대동강 물은 어느 때나 말라 바닥을 드러낼 것인가? / 해마다 이별의 눈물만 푸른 물결을 더하는데]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사랑하는 임을 보내며]로 번역된다. 이 시는 서정시를 대표한 시이자 이별을 대표하는 전형적인 시로 평가된다. 우리의 정서에 맞고 한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대표적인 시로 여기면서 이른바 인구(人口)에 회자(膾炙) 되어온 시다.
이 시를 읽고 있노라면 [임은 갔지만 나는 아직 임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라는 만해(卍海)의 시 구절까지도 연상하게 된다. 시인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비애에 젖는다. 비 개인 기다란 강둑엔 풀빛도 곱게 물이 들고 있음이라고 시상(詩想)을 일으키면서 남포로 임을 보내면서 한스럽게 불렀던 노랫가락이 잔잔하게 들린다고 했다. 검푸르게 흐르는 저 대동강 물이 바닥을 드러내고 말아야만 임이 그 바닥 길을 밟고 돌아올 수 있을 터인데 임을 그리면서 흘린 눈물이 해마다 더해만 가고 있으니 한탄스러움을 보인다.
화자는 자기 심회를 비유법이 분명한 한 마디를 쏟는다. 대동강물이 마를 날이 없겠다는 판단으로, 그러기 때문에 임을 만날 수가 없겠다는 한스러움으로 종장(혹은 결구)을 맺고 있는 기발한 시상에 감동을 받는다. 이런 점이 바로 시적 감흥이란 생각이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긴 강둑의 진한 풀빛 남포 떠난 임의 노래, 대동강 물 언제 마를까 이별 눈물 더한 물결’이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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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남호(南湖) 정지상(鄭知常:?~1135)으로 고려 중기의 문신이다. 서경 출신으로 서울을 서경으로 옮길 것을 주장하며 김부식을 중심으로 한 유교적이고 사대적인 성향이 강하던 개경 세력과 많은 대립이 있었다. 그 결과 서경을 거점으로 묘청 등이 난을 일으킨 계기가 되었다.
【한자와 어구】
雨歇: 비가 쉬다. 비가 그치다. 長堤: 기다란 둑에. 草色多: 풀빛이 진하다. 送君: 남편을 보내다. 南浦動: 남포로 보내다, 대동강 가에 있음. 悲歌: 노랫가락이 구슬프다. // 大同江水: 대동강 물. 何時盡: 어느 때나 마를까. [何] 때문에 의문문. 別淚: 이별의 눈물. 年年: 해마다. 添綠波: 푸른 물결을 더하다.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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