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5) 반속요(返俗謠)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5) 반속요(返俗謠)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6.11.22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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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차 이내 청춘을 어찌 해야만 할까요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불도를 위해 출가한다는 것은 대단한 결심이 아니고는 차마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번민과 고뇌 속에서 스님과 속인, 곧 삶과 죽음이란 평생선의 갈림길에서 그 번뇌는 극도로 심했을 것이다. 3개월이 어렵다고 하던가. 3년이 힘들다고 하던가. 참선의 고통은 속세의 그것과 비교할 수는 없기 때문이리라. 시인도 어려운 환경 속에서 스님의 길을 택했지만 다시 속세로 돌아 올 수밖에 없었던 여건적인 심회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返俗謠(반속요) / 여승 설요

담박한 마음으로 정숙을 생각해도

살골짝은 적막하고 인적도 끊겼어라

향내를 뿜어낼 마음 이 청춘을 어찌하랴.

化雲心兮思淑貞 洞寂寞兮不見人

화운심혜사숙정 동적막혜부견인

瑤草芳兮思芬蘊 將奈何兮是靑春

요초방혜사분온 장내하혜시청춘

장차 이내 청춘을 어찌 해야만 할까요(返俗謠)로 번역해 본 고시체 칠언절구다. 작자는 설요(薛瑤:660~693)로 여류시인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구름이 화하는 담박한 마음으로 정숙을 생각하고 / 산골짜기가 적막하니 사람들이 하나도 뵈지를 않군요 // 아무렴해도 장차 기화요초가 향기를 뿜어낼 마음일지니 / 장차 이 청춘을 어떻게 해야만 할까요]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속세로 돌아오며]로 번역된다. 꽃다운 열다섯 살 처녀가 아버지의 죽음 앞에 속세의 삶에 환멸을 느껴 머리를 깎았다. 그것은 뜨거운 청춘의 피 때문이었지만 인간 본연의 추구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삶은 괴로움의 바다’라 했다지만 그녀에게도 시를 쓰고자 하는 뜨거운 피가 흘렀다. 그는 환속 뒤에 당나라 장군이자 시인인 곽진(郭震:656~713)의 첩이 되어서 여생을 보내다가 당나라 통천현 관사에서 죽었다고 전한다.

시인은 구름이 화하는 그런 상황을 그리면서 사람이 없음을 매우 적적해 하고 있다. 그래서 담박한 마음으로 정숙을 생각해도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것을 싫어했다고 했다. 무척이나 사람을 그리면서도 비유적인 표현인 자기의 시를 알아주는 사람을 곁에 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화자는 아무렴 해도 머리 깎고 목탁을 두드리는 스님 되기엔 성격이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환속의 동기가 분명해 보인다. 한 송이 꽃이 첩첩산중에 묻혀 사는 것보다는 세상을 진동하고 천하를 주름 잡을 향기일진데 이 청춘을 그대로 둘 수는 없다고 하는 데서 화자의 기본적 마음을 드러내 보인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담박한 마음 정숙 생각 사람 하나 뵈지 않고, 기회요초 뿜은 향기 이 청춘을 어쩔거나’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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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설요(薛瑤:?~693)다. 당나라에서 활약한 신라 신문왕 때의 여류시인이다. 15세 때 아버지를 여읜 후 모든 것을 체념하고 비구니가 되었으나 21세 때 청춘의 애달픔을 노래한 [반속요]를 짓고 환속하였다. 당나라 시인이자 병부상서인 곽진의 첩으로 살다가 통천현에서 죽었다.

【한자와 어구】

化雲心兮: 구름으로 화한 마음이여! 곧 정숙한 마음이여! 思淑貞: 정숙한 마음을 생각하다. 洞寂寞兮: 산골짜기가 적막함이여! 不見人: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 瑤草芳兮: 기회요초의 향기여! 思芬蘊: 향기를 뿜어내다. 將奈何兮: 장차 (나를) 어찌할꺼나! 是靑春: 이 청춘을. 곧 이 청춘이 안타깝다.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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