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4) 추야우중(秋夜雨中)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4) 추야우중(秋夜雨中)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6.11.17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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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 앞에는 만리 고국 향한 마음 서성인다

봄은 여자의 계절,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 한다. 봄은 생명의 계절이요, 가을은 사색의 계절, 수확의 계절이라고도 한다. 만리타향에 있는 사람에게 가을은 더 없이 쓸쓸했을 것이 분명하다. 868년 어느 날, 당나라로 떠나는 열두 살 고운에게 그의 아버지는 한 마디를 던진다. “10년을 공부하고도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면 내 아들이라 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한마디를 깊이 새기면서 열심히 공부하면서도 향수에 젖은 나머지 읊조린 시를 다음과 같이 번안해 본다.

秋夜雨中(추야우중) / 고운 최치원

     
 

가을바람 괴로워서 시 한 수 읊조리니

내 마음 알아주는 이 어찌 이리 없다던가,

깊은 밤 등잔불 켜니 만리 고향 서성이네.

秋風唯苦吟 世路少知音

추풍유고음 세로소지음

窓外三更雨 燈前萬里心

창외삼경우 등전만리심

등불 앞에는 만리 고국 향한 마음 서성인다(秋夜雨中) 오언절구다. 작가는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1857~?)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소소한 가을 바람에 오직 괴로운 마음으로 시를 읊조리니 / 세상에 나를 진정으로 아는 사람은 이렇게 적구나 // 창 밖에는 밤이 깊도록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 등불 앞에는 만리 고국 향한 마음만이 서성이네]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가을밤에 비 내리는 가운데]로 번역된다. 최치원은 약관의 나이에 당나라로 유학을 떠난 후, 17년간 당나라 생활을 접고 귀국한다. 884년 당 희종이 신라왕에게 내리는 조서를 가지고 귀국할 당시 그의 나이는 28세였다. 신라 헌강왕은 최치원에 대한 큰 기대를 갖고 요직에 썼으나 다음해에 승하했다.

시인은 원대한 포부를 갖고 당나라에서 유학하면서 고향산천을 그리워함은 인지상정임을 보인다. 소소한 가을바람에 오직 괴로운 마음으로 시를 읊조렸으니 세상에 자기를 진정으로 아는 사람은 이렇게 적다고 했다. 자기의 학문과 인격을 알아주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으로 보아 많이 외로워했다는 정황을 엿볼 수 있다.

화자는 학문적으로나 문학적으로 자기의 재주를 몰라주는데 대한 서운함과 오직 고국을 향한 만리심이 있다는데서 엿보인다. 창 밖에는 밤이 깊도록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등불 앞에는 만리 고국 향한 마음만이 서성인다고 했다. 예나 이제나 영재는 외롭다는 생각을 느끼게 하는 구절이다. 위 한시는 결구(結句)에서 보인 등잔불 앞에서는 고국심이 서성이고 있음에서 그 격을 높인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괴로운 마음 시를 읊고 아는 사람 진정 적네, 밤 깊도록 비는 내리고 만리 고국 서성이네’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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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857∼?)으로 통일신라 말기의 학자이자 문장가다. 회남절도사 고변의 추천으로 관역순관이 되었다. 고변이 황소의 반군을 토벌하기 위한 제도행영병마도통이 되자, 종사관으로 참전해 4년 동안 표·서계·격문 등의 문서작성 일을 도맡았던 것으로 전한다.

【한자와 어구】

秋風: 가을바람. 唯: 오직. 苦吟: 괴롭게 읊다. 고통스럽게 시를 읊다. 世路: 사람들이 다니는 길. 少知音: 소리(괴로운 소리)를 알아듣는 이가 적다. // 窓外: 창 밖엔. 三更雨: 삼경(밤 11시부터 새벽 1시 사이)에 내리는 비. 燈前: 등잔 앞. 萬里心: 만리타향에 있는 고향(신라)을 그리는 마음.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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