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알면 돌멩이 하나도 다시 보인다
의미알면 돌멩이 하나도 다시 보인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7.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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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쇄(瀟灑)'하다. 말 그대로 기운이 맑고 깨끗해서일까. 날마다 눈을 뜬 채 새하얗게 밤을 지새운지 꼬박 달포 남짓. 1주일간 15시간밖에 눈을 붙이지 못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몸은 피곤함을 모르고 머리는 갈수록 맑아지는 느낌이다. 머리 속으로 한줄기 상쾌한 바람이 지나가는 것 같다…."

소쇄원 자원 해설사 사선 나희준씨

나희준씨는 오늘도 가벼운 걸음으로 담양 소쇄원을 찾았다. 거의 매일 찾는 곳이지만 올적마다 새로운 풍광들이 펼쳐진다. 이파리들이 사각대는 대나무숲길을 지나니 오늘은 계곡 물에 비친 '광풍각' 그림자부터 그를 맞는다. 밤새 잠을 설쳤지만, 금새 원기가 솟는다. 이곳 저곳 둘러보는 사람들, "안녕하세요. 이곳은 대봉대라는 담장인데요…" 방문객들을 안내하는 그의 하루가 시작된다.

우리문화유산 홍보대회 참가 인연

스물 다섯의 청년 나희준씨는 소쇄원을 찾는 손님들을 안내하는 자원봉사 해설사이다. 이번 여름방학이 시작하자마자 일을 시작했으니 벌써 한달이 지났다. 나씨는 동강대 관광학과를 나와 다시 광주대 관광학과로 편입했다. 소쇄원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해 담양 가사문학권 개관기념으로 열린 '우리의 문화유산 홍보대회'때.

당시 소쇄원에서 열린 이 대회에 대학생부로 참여한 나씨는 대상을 탔다. 곳곳에 대한 안내와 설명도 잘했거니와 참신한 이벤트(?)로 심사위원들과 구경꾼들을 감동시켰다. 사방이 고요하던 전날 새벽 대봉대 밑을 흐르는 계곡물소리를 휴대폰에 녹음해 이를 마지막 순간에 마이크로 들려줬던 것. 나씨는 "광주 토박이지만 우리고장 문화유산을 제대로 알고,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서 자원봉사에 나선 것 뿐 아무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매일 소쇄원 찾아 방문객 곳곳 안내

하지만 나씨가 하는 일이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다. 그가 소쇄원에서 보내는 시간은 오후 1시께부터 6~7시까지 대략 대여섯시간. 주로 무리 지어 다니는 방문객들에게 다가가 자신을 소개하고 해설에 나선다. 대나무밭 - 대봉대 담장 - 외나무다리 - 매대 - 제월당 - 광풍각을 따라 안내하다보면 30분이 금방 간다. 아무 생각없이 놀러왔다 나씨의 설명을 들은 방문객들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탄성을 지르는 것은 당연지사. 말그대로 돌멩이 하나, 풀 한포기, 현판 글자 등 주변 풍광 모든 것이 '살아있는 의미'로 다가온다.

대봉대 담장·제월당·광풍각 설명에
그냥 놀러왔던 이들도 끄덕끄덕


나씨는 "유원지 정도로 생각하고 왔다가 설명을 듣고는 놀란 표정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조용히 자기만의 생각할 시간을 가지려는 사람은 관심도 별로 없어 안내나 설명도 거부하곤 하는 경우가 많다"며 어려움도 털어놨다. 이와는 반대로 얼마전에는 전북 익산에서 한자를 공부하는 모임회원 15명이 방문, 이들을 안내했더니 '고생많다'며 3만원을 건네주려해 사양하느라 진땀을 빼기도 했다.


나씨는 소쇄원 해설사로 나선 이후 신비로운 변화도 체험하고 있다. 밤이 깊을수록 머리가 한없이 맑아지며 잠을 못 이루는 날이 지속되고 있는 것. 하지만 몸이 피곤하거나 머리가 아픈 느낌없이 가벼워진다는게 나씨의 체험담이다. 마치 '천석고황'(산과 물을 즐기는 것이 정도에 지나쳐 마치 불치의 병과 같다는 말)을 앓는 것처럼.

소쇄원 보존활동을 하고 있는 전고필 동강대 겸임교수(관광과)는 "실제 나씨의 경우처럼 소쇄원에 오래 머무는 사람은 머리가 맑아지며 불면증에 빠져드는 경우가 많다"며 "그래서 그런지 소쇄원의 기가 세다는 얘기가 옛부터 내려온다"고 귀뜸했다. 전교수 역시 소쇄원 명해설사로 이름을 떨치고 있고, 나씨는 동강대에서 전교수의 가르침을 받았다.

"찾는 이 모두 '살아있는 뜻' 느꼈으면"

주변에서는 "그 선생에 그 제자"라는 말로 소쇄원에 대한 나씨의 열정을 칭송하지만, 올 여름이 끝나면 소쇄원에 들러도 그의 안내를 받지는 못할 것 같다. 여름방학이 끝나 학교로 돌아가는 그는 다시 겨울방학에야 소쇄원을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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