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역점(3)-①
춘추역점(3)-①
  • 이황 만암주역학연구소 소장
  • 승인 2016.05.26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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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황 만암주역학연구소 소장
진(晉)나라는 춘추시대 많은 나라들 중 다섯 패권국(春秋五霸)의 한 나라이다. 21대 군주인 헌공(獻公)은 아버지인 무공(武公)의 애첩이자 제나라 환공(桓公)의 딸인 제강(齊姜)을 취해 태자 신생(申生)을 낳았다. 융(戎)나라의 두 딸(姉妹)을 부인으로 맞아서 언니 호희(狐姬)에게서 중이(重耳)를, 동생에게서는 이오(夷吾)를 낳았다. 또 여융(驪戎)을 정벌하여 여희(驪姬)를 부인으로 맞아서 해제(奚齊)를, 여희의 동생에게서는 탁자(卓子)를 낳았다.

여희를 부인으로 맞을 때 점치는 관리가 점을 쳤는데 매우 흉하여 부인으로 삼지 말 것을 강력히 간하였으나 헌공은 듣지 않았고 그의 말년에는 여희에게 빠져 결국 피비린내 나는 정변이 일어나고 만다. 그에게는 9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신생, 중이, 이오가 가장 똑똑했다.

여희는 태자 신생을 구슬려 자신의 어머니 제강에 대한 제사를 성대히 지내게 하여 아버지에게 효성스런 아들로 보이라고 권한다. 이에 신생은 어머니 제강의 제사를 성대히 모시게 되고 여희는 제물로 쓴 돼지고기를 헌공에게 바치도록 권한다. 이때 여희는 왕에게 두고 간 고기에 몰래 독약을 발라둔다. 헌공은 고기에 독약이든 것을 알게 되고 아비를 독살하려 한 불효막심한 반역도라고 모함한 여희의 말에 넘어간 헌공은 태자인 탁자를 죽이려 한다. 결국 탁자는 자살을 택하고 만다. 여희는 중이와 이오도 공범으로 몰아가고 헌공이 죽이려 하자 두 사람은 각기 망명의 길을 떠난다.

기원전 651년, 그러니까 공자가 태어난 지 100년 후이다. 헌공이 죽자 여희의 아들 해제가 즉위하게 된다. 그러나 신하인 이극(里克)이 해제를 살해하는 정변이 일어난다. 이어 탁자가 즉위하였으나 역시 이극에 의해 여희와 함께 죽임을 당한다.

중이는 무려 19년의 망명생활을 하게 된다. 주로 어머니의 나라 융에서 12년을 보냈고 위(衛) 제(齊) 조(曺) 송(宋) 정(鄭) 초(楚) 진(秦)을 떠돌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중이가 배고픔과 병에 시달리고 어려울 때 그를 따르던 여러 신하 중 개자추(介子推)는 몰래 자기의 허벅지살을 떼어내 국을 끓여 중이를 먹였다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진목공의 도움으로 진나라를 얻게 된다. 공자 중이(重耳)가 친히 시초점을 치면서 말하기를 “원컨대 진나라를 얻게 해 주옵소서”라고 하였다. 이때는 진목공에게서 본국으로 들어가 제위에 오를 것을 권유 받았으나 국내정세가 예측불허한 상황이라 중이로서도 매우 불안했을 것이다. 생사가 걸려 있는 상황인지라 어찌 두렵지 않을 것인가? 진목공과 그의 신하들, 그리고 중이를 따르는 신하들과 마지막 승리를 위한 송별회를 마치고 나서 친 점이라 한다.

중이가 쳤다는 점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개자추에 얽힌 얘기를 하겠다. 중이가 진나라에 돌아와 등극하여 문공(文公)이 되고 19년간 그를 따르던 신하들도 모두 논공행상으로 공과에 따라 벼슬길에 오르게 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개자추는 여기에서 제외된다. 이에 그의 어머니가 “너는 주군을 위해 많은 공을 세웠다고 들리던데 어찌 그러고 있는 것이냐? 문공에게 말하지 않는 것이냐?” 이에 개자추는 어머니에게 “어머니와 함께 그동안 못한 효를 다 하고 싶습니다” 이에 어머니는 “네 뜻에 따르겠다” 하고서 모자는 면산(綿山)에 들어가 숨게 된다. 뒤늦게 이를 안 중이가 산을 뒤져서 개자추를 찾았으나 나오지 않아 산에 불을 놓으면 나올 것이라 판단하고 불을 지르게 된다. 불이 꺼진 후 산을 뒤져 보니 개자추는 거대한 버드나무 아래서 한편의 시만을 남긴 채 어머니를 끌어안고 불에 타 죽어 있었다.

고기를 베어 주군을 받들어 단심을 다 하였네(割肉奉君盡丹心) 다만, 주공께서 항상 맑고 청명하기를 바랄 뿐(但愿主公常淸明) 버드나무 아래 귀신이라도 끝내 찾지 못하리(柳下作鬼終不見) 임금을 섬기는 것보다 나은 것이 간하는 신하라네(强似伴君作諫臣) 만약 주공의 마음에 내가 남아 있다면(倘若主公心有我) 나를 기억할 때는 항상 스스로 돌아보기를(憶我之時常自省) 신은 구천에서도 마음에 부끄러운 바 없다네(臣在九泉心无愧) 정치에 힘써 청명하고 또 청명하소서(勤政淸明復淸明)

문공 중이는 그때야 탄식하며 “불로 인해 천하의 충신효자를 죽게 했다”하여 그날을 불을 피우지 않는 날로 정하고 개자추를 기리게 한 것이다. 또 그의 시에 나온대로 ‘청명’과 한식이 이어 있게 된 것이다. 불을 피우지 않으니 당연히 그날은 찬밥(寒食)을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한식에는 사람들이 집을 고치거나 묘를 손보는데 이날은 무슨 일을 해도 탈이 나지 않는 이유는 불로 인해 신들도 감동하게 한 충신효자가 죽었기 때문에 하늘신, 땅신, 산신, 조앙신 할 것 없이 모든 신들이 인간사에 일체 개입하지 않고 이날은 신들도 모두 도시락 싸서 놀러가고 없는 날이라서 그런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어찌 이런 지도자 한 사람을 찾을 수 없는 것일까?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를 보면 마치 불법 탈법 전시장을 국민에게 경연해 보이는 국가적 행사가 된지 오래다. 아! 소인(小人)이 흥하고 군자(君子)는 흉한 시대를 탓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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