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이야기들로 가슴 적신다(2)
어머니 이야기들로 가슴 적신다(2)
  • 이홍길 고문
  • 승인 2016.04.28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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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홍길 고문
이제 고인이 된 시인 정의행을 김준태는, 세월호가 탄생시킨 노래꾼으로 지목한다. 그의 시집 ⌜노란 리본⌟을 펼치다가 ‘엄마 손’과 오월 어머니들께 드리는 시 ‘어머니’를 읽는다.

시 ‘엄마 손’의 한 구절. 애들아, 어서 올라와! 끝까지 기다릴게!
속울음 삼키며 글을 적습니다.
무심한 파도가 밀려오는 팽목항에서 아직도 바다 속 울고 있을 넋들에게 노란 편지를 바람에 띄웁니다.

세월호 사건 이후, 그들의 유가족도 아니면서 아픈 몸을 돌보지 않은 채 세월호 집회마다 한 번도 거르지 않았던 정의행 시인은 이제 그 노란 리본을 들고 세월호 젊고 어린 넋들을 만나러 하늘나라로 갔다. 그는 생전에도 부처님 마음으로 사람을 만나고 세간을 살펴, 백양사 방장스님인 지선은, 세월호에 대한 엄청난 분노를 유려한 시로 승화시킨 정의행의 ⌜노란 리본⌟을 높이 기렸다. 오월 어머니들을 위로하는 “어머니”의 일단을 소개한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식들 가슴에 묻고
울며불며 싸워 오신 어머니
이제는 울지 말고 웃으세요
한 맺힌 가슴 이제 풀어 놓으시고
아리랑 부르며 나아갑시다
(중략)
바람이 아무리 거세게 불어도 꽃은
피어나듯 이 땅에 평화는 반드시
오리니 억눌린 자 가슴 펴는 평등한 세상
행복한 나라 반드시 오리니
분열을 넘어 싸움을 넘어
하나 되는 세상 반드시 오리니.

이렇게 간구하던 정의행 시인의 복덕이 오월 영령에게도 미치리라 믿는다. 세상의 모든 아들들은, 딸들은 어머니가 그들의 마지막 귀숙처인데, 현실이 아프면 아플수록, 고단하면 고단할수록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사무친다.

일제하에서 민족 해방운동의 지하단체에 가담했다는 죄로, 출옥 후 사상범으로 교화보호소를 거쳐 산업 보국대원으로 사할린에 끌려가, 결국 그곳에서 생을 마친 작가 유시욱은 ⌜오호츠크해의 바람⌟이라는 15일간의 일기를 책으로 남겼다. 그의 일기에는 가슴 뭉클한 어머니와 고향에 대한 이야기가 넘쳐난다.

그의 어머니는 당시의 많은 어머니들과 마찬가지로 17살에 시집 와서, 하루도 편할 날 없이 괴로움 속에 일생을 사셨다. 그러면서도 작자를 위해서는 그의 표현대로 “당신 가슴 속에 있는 심장의 불길을 다 쏟아서” 정성껏 그를 키웠다.

그가 풍달이라는 어려운 병으로 40일간이나 병석에 누워 사경을 헤맬 때에 행여 죽을까봐 밤잠을 자지 않고 간호하였으며, 일사병으로 30일간을 누워 앓았을 때에는 하루도 빼지 않고 벼 이슬과 익모초 물을 받아주셨고, 옆에 앉아서 가슴이 답답하다고 외치는 그에게서 부채질을 멈추지 않으셨다.

작자 유시욱은, 그가 청진으로 서울로 남원으로 마지막에는 사할린까지 표랑하며, “언제나 어머니의 가슴에 ‘자식에 대한’ 걱정이라는 자리를 비워”본 적이 없는 천하의 불효막심한 자식이라고 자신을 애통해 하면서 세상의 누구보다도 어머니 생각을 할 때에 그 애정을 뼈저리게 느끼곤 하였다.

소학교 6년 동안 그가 고향 한오리의 신작로를 걸어 학교를 다닐 때, 도시락 그릇에는 어머니의 애정이 차곡차곡 담겨 있었고 어머니가 챙겨준 속적삼에도 애정은 풍겨왔고, 모자라는 학비 때문에 얼굴을 찌푸리는 그에게 아비지 몰래 주머니 끈을 푸시는 어머니의 애정은 사할린의 산중에 까지도 그의 가슴을 적셔왔다.

그의 어머니는 유교의 세례를 받으셔서 폭군이시던 아버지에게 조금치도 반항하지 않았다기 보다는, 가정의 심한 불화가 어린 자식들에게 가는 영향을 두려워했던 것으로 회상하였다. 어느 때인가 그의 아버지가 주무시는 사랑방 문 앞에 하얀 백고무신인 낯선 여자의 신이 놓여 있었는데, 한쪽은 뜰에 한쪽은 마당에 떨어져 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난 어머니는 그 신을 가지런히 갖추어 놓으시고 아무 말 없이 부엌으로 들어가신 것을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들들의 영원한 고향이다. 어머니에 대한 회상에 이어 고향 그리움이 켜켜이 쌓여 “내 고향, 푸른 벌판을 뚫고 나간 하얀 한오리의 신작로여!” 하는 작가의 탄성은 그의 일기의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온다. 그리하여 그는 고향이나 조국을 생각하지 않고 주의니 사상이니 하는 것은 뿌리가 없이 언제라도 넘어질 수 있는 얇은 지표면에 붙어 서있는 나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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