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의병정신의 뿌리를 찾아서5. 을미의병의 중심 제천의병
호남 의병정신의 뿌리를 찾아서5. 을미의병의 중심 제천의병
  • 충북 제천=김다이, 송선옥 기자
  • 승인 2015.10.11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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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양영당에서 비롯해 학자가 의병장되다

충북 제천으로 들어서자 ‘2016 올해의 관광도시’라는 커다란 광고가 곳곳에 보였다. 관광도시를 꿈꾸는 제천의 모습은 어떤 모습을 지녔을까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쌀쌀한 날씨로 옷깃을 여미게 되지만, 그림자가 짧은 한 낮에는 햇빛이 쨍쨍해 겉옷을 벗게 만든다. 제천은 의림지와 먹거리로 '빨간오뎅'이 유명한 지역이기도 하다.

제천의 울고 넘는 박달재로 가는 길에는 가을의 정취를 느끼려는 등산객들을 가득 실은 대형버스가 줄지어 있었다. 충북 제천은 ‘의병’ 키워드 하나로 상징적인 지역이기도 하다. 을미의병의 본거지인 제천은 당시 전국 의병장들이 비밀회의를 하던 본부가 소재했던 곳이다.

▲자양영당
제천의병을 논했던 자양영당

그 중심에는 을미의병의 최고 지도자 의암(毅菴) 유인석(柳麟錫 1842~1915) 의병장이 서있다. 제천에서 의병활동에 대한 자료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곳은 제천시 봉양읍 의암로에 위치한 제천의병 전시관이다.

의병 전시관과 자양영당(紫陽影堂)이 위치한 일대의 정문에는 높게 솟아 신성한 곳에 악귀를 물리치는 붉은 홍살문이 세워져 있다.

먼저 의병운동의 진원지이자 유인석의 영정이 봉안된 자양영당과 함께 자리한 자양서사(紫陽書祠)로 발길을 돌렸다. 자양서사는 조선말기의 유학자인 성재 유중교가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1889년(고종 26년)에 처음 세운 서당이다.

1907년에 창건된 자양영당은 송시열, 이항로, 유중교, 유인석, 이소응 등을 모신 곳이다. 특히 이곳은 교육자 유중교가 제자들을 가르친 곳으로 유인석이 나라를 구하고자 의병봉기를 논의한 장소이기도 하다.

충주성 점령 등 큰 전과내기도

을미의병을 이끌었던 유인석의 호는 의암(毅庵), 자는 여성(汝聖), 본관은 고흥(高興)이다.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난 유인석 선생은 14세의 나이에 이항로의 문하에 입문하게 됐다. 그렇게 학자의 길을 걸었던 그는 민 씨 정권의 개화정책을 반대하면서 1893년 제천 장담마을로 이사하게 된다.

이후 1895년 단발령이 내려지고, 명성황후 시해 사건으로 그는 제천의병을 전개하게 된다. 제천의병은 충주성을 점령하고, 중부지역 일대를 장악하는 등 큰 전과를 냈다.

그러나 유인석 선생은 제천에서 관군에게 패전하면서 1908년 평안도를 거쳐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하게 됐다. 이곳에서 독립운동을 계속해 왔지만 결국 1915년 연해주에서 숨을 거두게 된다. 이후 자양영당에 배향되었고,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상이 추서됐다.

자영영당과 제천의병전시관 사이에는 성재 유중교 선생의 거택이 있다. 거택의 일부는 관리사무소로 사용되고 있었다. 아침 일찍 방문한 탓에 거택에서 만난 제천의병전시관 관리인이 서둘러 전시관 문을 열고, 전시관에서 조금 떨어진 유인석 거택의 문을 열어 놓겠다는 말을 했다.

지난 2001년 개관한 제천 의병전시관에 들어서자 동판으로 만들어진 의병들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이 동판 부조는 국사책에가 가장 많이 본 의병들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었다.

영국 ‘데일리 메일’ 신문사의 맥켄지 기자가 한국을 방문했을 시 찍은 의병들의 모습을 부조로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후손들 기증 물품 모아 전시관 마련

또한 후손들의 기증으로 채워진 의병전시관 내부에는 당시 사용했던 유품, 의병기록물, 사용했던 무기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제천의병사를 연도별로 자세히 정리한 도표가 제법 잘 정리되어 있었고, 유인석이 입었던 옷과 유물이 잘 보관되어 있었다. 의향의 고장이라는 호남지역에 제대로 된 의병전시관이 하나 없는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었다.

그렇게 제천의병전시관을 나와 왼편에는 의병기념탑이 세워져있다. 기념탑은 제천의병이 한말 의병항쟁의 상징적 존재였음을 뜻하며 일제의 침략에 항거하여 구국의 일념으로 목숨을 바친 의병정신을 기리고자 건립됐다.

중앙의 탑은 의병이념을 상징하고 좌우에 세워진 동상들은 의병활동을 생생하게 묘사해 의병정신과 항쟁을 표현했다.

제천의병전시관 앞 공터에는 목판인쇄, 스템프 인쇄 등 체험프로그램 운영 부스만 덩그러니 설치되어 있었고, 안내원이 한명도 없어 아쉬움이 남았다.

해마다 꾸준히 제천의병제 개최해

기념전시관을 나와 왼편의 길을 따라 가면 의암 유인석 선생의 거택이 있다. 희미해진 제천의병대장 의암 유인석 선생 거택 입구라는 안내판이 있었지만, 사전에 정보를 알고 가지 못했더라면 그냥 발길을 돌렸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암 유인석 선생의 거택에 들어서자 ‘추모 유인석 선생의 열’이라는 문구로 업적을 알리는 글이 적혀져 있었다. 아쉬운 점은 복원된 거택이나 유적지들은 늘 문이 굳게 잠겨 있다는 것이다.

문이 열려 있다고 해도, 안에는 텅 빈 공간으로 관련 인물의 생활상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것들이 전혀 배치되어 있지 않는다.

제천은 제천시와 제천군이 통합되는 해인 지난 1995년부터 ‘제천의병제’를 해마다 추진해오고 있다. 올해에는 10월 8일부터 11일까지 자양영당 일대에서 열렸다.

한편 한말 의병활동이 활발했던 지역답게 제천을 중심으로 전국의 도시들이 의병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뭉치기로 했다. 지난 7월에 ‘대한민국 의병도시협의회(가칭)’모임이 발족해 전국 44개 광역, 기초 단체들이 참여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이렇듯 한말 일본군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일어섰던 의병들은 후일에 독립군의 모태가 되어 우리 한 민족의 의로움을 확인 시켜줄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의향의 고장이라고 내세우는 호남지역에도 의병의 활약상을 한 데 모아 살펴 볼 수 있는 의병기념관이 세워지기를 기대해본다.

▲의암 유인석 거택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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