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저널리즘은 시민의 사랑을 먹고 자라는 나무
시민 저널리즘은 시민의 사랑을 먹고 자라는 나무
  • 박호재 시민의소리 부사장/주필
  • 승인 2015.02.11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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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소리’ 창간 14주년에 부쳐

▲박호재 시민의소리 부사장/주필
시인 김선우는 ‘피도 살도 뼈도 숨결도 없는 말’들이 난무하는 세상을 ‘텅 빈 말들의 무덤’이라 질타하며 ‘행동만이 그들의 진심이다’고 토로했다. 그리하여 ‘세상에서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우리 자신밖에 없다’고 유령처럼 떠돌아다니는 우리시대 언어의 풍속을 슬퍼했다.

타인을 움직일 수 없는 언어는 그렇듯 허무하지만, 언론인들은 여론이라는 ‘공유 지식’을 만들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것이 언론인들의 존재방식이며 실존적 숙명이다. 그 노력은 가상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대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여론을 만들어내는 일 자체가 정치적 과정이기에, 언론은 곧잘 불온한 목적을 위해 스스로를 도구화하고, 권력은 또한 그 과정에 개입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완구 청문회에서 드러난 ‘언론 능멸 사태’가 바로 그 적나라한 실상이다.

“언론이 국가권력이냐? 시장 권력이냐? 시민 권력이냐? 내가 묻고 싶은 것은 그것이죠. 진정한 의미에서 당신들이 선 자리는 어디입니까? 권력의 하수인 노릇을 하다가 그로부터 해방된 다음부터는 이 권력, 저 권력하고 제휴를 해요. 권력과 권력대안과 결탁해서 권력게임에 직접 참여하는 부정선수가 되어있는 거예요…언론이 제대로 되는 것, 그것이 이 시기 한국 민주주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고요, 그것이 우리 사회 발전의 한 과정에서 꼭 필요한 단계입니다.”

故 노무현 대통령의 오래된 언급이다. 조중동의 그물로부터 유일하게 자유로웠던 정치인이었기에 오염된 언론을 향해 쏟아낸 말들이 그처럼 통렬하고 직설적이다. 그렇다면 노통의 그 칼 같은 호소는 그의 죽음과 함께 시효를 다 한 것일까. 아니다. 한국의 언론에 드리워진 어둠은 더 깊어졌고 더 음험해졌다.

MB정권에서 박근혜 정권의 현 상황에 이르기까지 소위 유력 언론이라는 매체들이 자행해왔던 왜곡들을 되돌아보면 잘 알 수 있는 일이다. 용산참사에서 국가기관의 대대적인 대선 개입, 그리고 세월호 비극에서 쌍용 자동차 사태에 이르기까지 조중동이라는 조어로 호칭되는 한국의 유력 언론들이 누구의 편에 서있었는지를.

바른 언론 없이 바른 정치, 바른 사회도 없다는 명제는 그래서 여전히 유효할 수밖에 없다. 이는 풀뿌리 자치를 제대로 세우는 과정에서도 예외일 수 없다. 이제 우리는 조중동을 탓하기에 앞서 지역 언론의 문제들을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그 실태들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소위 조중동이라는 조어로 지칭되는, 권력화 되고 사유화된 악습이 고스란히 재판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아니 오히려 지방경제의 낙후성 때문에 그 오염의 악취는 더 지독하다.

‘시민 저널리즘의 실현’을 깃발로 내세우고 출범한 ‘시민의 소리’가 오는 21일 창간 14주년을 맞는다. 힘겹게 걸어온 길이다. 지역 언론을 둘러싼 환경은 갈수록 열악해지고만 있기에 눈앞에 펼쳐진 남은 길도 험난하기 짝이 없다. 14세가 되는 생일상을 앞에 두고 마냥 즐거워만 할 처지가 아니다.

민족민주운동 진영의 언론운동 일환으로 시작된 기병지의 정체성을 실현하고 있는지 깊은 성찰과 함께 새로운 희망에 대해 시민사회와 함께 고심해야 할 때이다.

시민 저널리즘은 시민의 사랑을 먹고 자라는 나무와 다를 바가 없다. 그렇게 무성해진 아름드리나무 그늘 아래 모여 ‘오순 도손 한 세상을 이뤄가는 시민공동체’가 시민의 소리의 꿈이며 희망이다.

지난 14년 동안의 시민독자 여러분들의 성원을 가슴에 새기면서, 염치없지만 변함없는 사랑으로 시민의 소리를 돌보아주시기를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간절히 호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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