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인의 파리문화기행12-르 발 Le Bal 갤러리
정대인의 파리문화기행12-르 발 Le Bal 갤러리
  • 정대인 전 미국산타페예술대 교수
  • 승인 2014.12.11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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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SAD 교환학생 시절 알게 된 갈라 Gala Vanson와 만나기로 했다. 내가 속해있던 3학년 학생 중 한 명이었다. 미국에서 익숙해졌던 적극적이고 말을 똑부러지게 하던 미국 여학생들과는 달리, 내가 ENSAD에서 속해있던 반의 프랑스 여학생들은 조용조용하고, 차분한 성격들이었다. 나도 적극적인 성격은 아니었기에 다른 학생들과 친해지기가 더 힘들었던 것 같다.

갈라와도 그동안 딱히 그동안 교류가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페이스북 친구이기에 이런저런 작업하는 것을 관심있게 보고 있었다. 파리의 젊은 예술가는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연락을 해보니, 그녀는 흔쾌히 만나자고 했다. 만남 장소로 정한 곳은 사진, 비디오, 뉴 미디어 작업을 주로 다루는 르 발 Le Bal 갤러리. 얼마 전부터 새로운 작품들이 전시 중이라고 했다.

갤러리는 몽마르트르 지역에 있었다. 성심성당 Sacré-Cœur 주변은 관광객들에게 점령당했지만, Place de Clichy 역에 내려보니 이 쪽은 비교적 한산해보였다.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니 주의깊게 보지 않으면 갤러리인지도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조촐한 건물의 입구가 보였으며 벽에 세로로 적힌 Le Bal이라는 글자를 보고 잘 찾아왔구나 알 수 있었다.

건물은 1920년대에는 젊은이들이 북적대던 쉐 이시스 Chez Isis라는 술집이자 댄스 클럽이자 호텔이었고, 2차대전 이후에는 프랑스에서 가장 큰 도박장이었다가 2006년 파리 시에서 건물을 구입하고 매그넘 포토의 친구들 협회의 제안으로 지금의 갤러리로 탈바꿈했다고 한다.

아침에 살짝 비가 와서 일층 카페 앞 벤치에 물방울이 맺혀있었다. 앉아있기 망설여져서 사진 몇 장을 찍으면서 조금 기다리자 갈라가 왔다. 양쪽 볼을 대고 하는 프랑스식 인사는 항상 어색하다. 일단, 전시회부터 보기로 했다. 전시회 제목은 S’il y a lieu, je pars avec vous - 필요하다면 나는 당신과 함께 떠나겠다 쯤으로 해석될 듯하다.

모든 작품의 소재가 고속도로와 연관이 되어있어서 의아해하고 있었는데, VINCI라는 프랑스 건설 대기업의 후원으로 이루어진 전시라고 갈라가 설명해줬다. 그래서일까. 몇몇 작품에는 기업의 로고가 작품의 일부로 포함되어 있었다. 예전 화가들은 자신의 후원자들의 초상화를 그리곤 했었는데, 이제는 후원하는 기업의 로고를 작품에 넣는 것으로 보아야할까.

그에 대한 판단은 일단 미뤄놓기로 했다. 5명의 작가들이 로드 트립을 떠나서 고속도로로 향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단지 목적지를 향하기 위해 거쳐가는 그 곳에서 받은 영감으로 만들어진 작품들에는 그들의 개인적인 시선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전시회 감상을 마치고, 얘기를 나누러 근처 카페로 향했다. 파리의 젊은 예술가인 갈라는 ENSAD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을 2010년 졸업했으나, 현재는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주로 하고 있다. 갈라의 그림에는 에펠탑이니 개선문이니 파리하면 등장하는 단골 소재는 없지만, 왠지 모르게 볼 때마다 프랑스와 파리를 생각나게 한다. 흐느적거리는 선의 느낌이 참 좋고 독특한 색깔의 조합을 보여주는데 짧게 끊어진 선들이 마치 판화를 보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선과 면과 다양한 색감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리듬이 참 매력적이다.

작업을 할 때는 항상 라디오를 듣는데 얼마 전부터 라디오 관련 일러스트레이션 일을 맡았다며 좋아한다. 어린이 동화책 작업도 한다고 한다. 그렇게 어느 회사 소속으로 짜여진 일만 하지않고, 자유롭게 자신이 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옮겨다니면서 하는 모습이 좋아보였다.

파리에서 본 많은 서점에 놀랐다고 말하자, 아마존 같은 대기업보다는 동네 서점에서 책을 사는 것을 더 좋아한다면서 Place des Libraires 라는 좋은 웹사이트를 알려주었다. 이 곳에서 책을 검색하면 근처 어느 서점에 재고가 있는지 확인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렇게 새로운 서점을 발견하는 것도 파리 생활의 작은 즐거움이라면서.

헤어지는 길에 갈라에게 길을 물어보았더니 핸드백에서 작고 예쁜 지도책을 꺼내서 보여준다. 그래서 장난스럽게 한마디 건넸다.

“갈라, 솔직히 말해서 난 파리지엔도 지도를 가지고 다니는지 몰랐네. 난 관광객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길거리에서는 지도를 보지 않거든.”

“나도 필요해. 그리고 난 내 지도가 좋다고!"

재미있는 행사가 있으면 알려달라고 부탁하고, 다시 프랑스식 작별 인사를 건네며 헤어졌다. 자유롭게 작업활동을 펼치는 갈라에게 행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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