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의 불안과 초조함을 담다
젊은 날의 불안과 초조함을 담다
  • 권준환 기자
  • 승인 2014.10.09 14: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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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혜림 작가 첫 번째 개인전 ‘생각하는 아이’
유스퀘어 갤러리 3관서 8일부터 14일까지

9일 오후 금호 유스퀘어 갤러리 3관. 아직 전시준비가 덜 된 모양새로 작품들이 걸려 있었다. 작품 제목들이 붙여지지 않아 작품마다 무엇을 뜻하는지 곰곰이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작품들은 아이들을 그려놓은 것으로 보였다. 두툼한 입술에 뭉툭한 코. 홍조를 띈 볼. 4등신의 귀여운 신체조건. 이 소년, 소녀들은 눈을 감고 있지도, 뜨고 있지도 않았다. 희미하게 뜬 눈으로 시선은 아래를 향한다.
그 시선의 끝자락에 핸드폰이 있든, 저 멀리 수평선이 있든, 어쨌든 분주히 생각하고 있다. 이들의 시선이 향하는 45도 각도의 아래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분명 어린 아이들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27살 기자의 모습이 비치는 것은 왜일까.

▲어른이 된 나는 어지러워, oil on canvas, 116.8×91.0, 2014
작품들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종이컵 전화기를 통해서든 핸드폰을 통해서든 분명 누군가와 소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통을 하고 있는 대상이 보이지 않는다.
소녀가 귀에 대고 있는 종이컵에 연결된 끈은 캔버스 밖으로 이어진다. 분명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고 있거나, 혹은 듣기 위해 종이컵을 귀에 댄 것일 테지만 그 목소리의 주체는 당장 눈앞에 있지 않다.

▲오늘도 얼마나 많은 이들을 지나쳤는가..., oil on canvas, 162.2×130.3, 2014

핸드폰으로 인해 현실의 접촉과 만남 줄어

옆으로 몇 발자국을 옮기면 길 위에서 서로를 지나치는 한 무리의 어린이들이 보인다.
작품에 등장하는 6명 중 뒷모습만 보이는 한명을 제외하고도 4명의 손에 핸드폰이 들려있다. 4명 중에서도 3명의 시선은 손바닥크기 만한 핸드폰 액정화면에 멈춰있다. 분명 이 작은 기계 하나로 SNS나 메신저를 통해 친구, 동료, 그 밖에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과도 소통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정작 현실에서의 접촉과 만남은 줄어들고 있다. 길을 걸으면서도 작은 액정 안에 머물며 사람들과의 아무런 의미도 없는 지나침은 항상 우리 곁에 있다.

동선을 따라 몇 작품을 지나면 결혼하는 두 아이가 있다. 분명 모습은 아이인데 결혼이라니. 그들의 표정에선 결혼식의 설렘이나 기대, 두근거림의 느낌이 들지 않는다. 무표정함 속에 적막만이 감돈다.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입었지만 어울리지 않는다. 짙은 화장과 길게 늘어진 속눈썹은 그들의 눈을 숨기고, 유일하게 반짝이는 것은 신부 머리위의 티아라와 진주 귀걸이 뿐이다.

이번 전시의 주제는 ‘생각 하는 아이’다. 하지만 우울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 전시의 진짜 의도는 ‘생각하지 않는 아이’가 아닐까 싶다. 요즘의 젊은이들은 연애나 진로, 취업 등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긴 하지만, 정작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너무나 중요한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랄지 소통에 있어선 생각하고 있지 않는 듯싶다.

작품을 둘러보며 작가가 의도한 바가 무엇일까 고민하고 있을 때에 성혜림(27) 작가가 막바지 전시준비를 위한 물품들을 들고 갤러리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첫 개인전이어서 그런지 무척 분주해보였다. 인사만 잠깐 나눈 후 작품을 더 둘러보겠다 말했다. 성 작가는 가지고 온 물품들을 정리하고, 전시 팜플렛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잠시 후 그녀가 커피 한 잔을 건넨다. 그리고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신체는 성장했지만 마음은 아직도 아이

그녀는 어렸을 적부터 뭔가를 만들고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미술을 배운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였다. 부모님은 안정적인 직장을 찾기를 원했고 반대를 많이 했었다.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광주시립미술관 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가 되면서 작업을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이때부터 전시도 들어오게 되고, 조금씩이나마 작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졸업 후 바로 사회생활을 하지 않고 작업을 하다 보니 그녀는 사회로 나아가기엔 자신이 아직도 많이 부족하고 아이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외적·신체적으로는 성장했지만 심적으로는 아이처럼 불안하고 초조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녀의 내면 심리들이 충돌하면서 이번 전시가 이뤄질 수 있었다.
그녀는 “사회에 나가는 초년생으로서 어딘가에 의지하고 싶어 하는 내 자신이 너무 아이 같았다”며 “내면의 자화상을 표현해보자 해서 아이 캐릭터로 첫 개인전을 보여주게 됐다”고 설명했다.
작가 내면의 자화상이긴 하지만 그녀와 비슷한 시기의 또래들이 겪고 있는 고민이나 상황들을 표현해보려고 한 것이다.

성 작가와 이야기를 하면서 작품을 보며 느꼈던 것에 대한 보충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핸드폰을 보며 서로를 지나치는 그림의 제목은 ‘오늘도 얼마나 많은 이들을 지나쳤는가?’였다. 1대1로 만나 대화하는 시간은 줄어들고 이어폰을 끼고 조그만 액정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작금의 실태를 표현한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들이 계속 되다보면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고독하고 외로운 사회가 되지는 않을까 염려한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서로를 지나치는 군중들의 모습을 아이라는 가면 씌워 묘사한 것이라고 설명해줬다.

▲wedding, oil on canvas, 91.0×116.8, 2014
또 무표정한 얼굴의 신랑신부를 표현한 작품의 제목은 ‘wedding’이었다.
최근에 그녀의 주위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통해 느꼈던 것들을 표현한 작품이다.
성혜림 작가의 나이는 올해로 스물일곱. 주변에서 한두 명씩 시집을 가고 가정을 꾸리게 되는 나이다. 하지만 종종 원치 않았던 임신 등으로 인해 결혼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SNS를 통해 보는 글이나 사진에서는 ‘아이가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또한 요즘 결혼은 단순하지 않고 많은 것들을 따지면서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점들도 ‘wedding’작품에 담고자 했다.
그녀는 “정해진 사람을 만나 정해진 틀에 맞춰 형식적으로 결혼해야 하는 상황들이 많은 생각을 하게했다”고 말했다.

무거운 주제지만 재밌게 볼 수 있었으면

그녀는 “첫 개인전을 해야 하는 시기가 있는데 그 시기가 늦어졌다”며 “그러다보니 일을 하면서 작업을 해야 하는 등 쫓기게 됐다”고 털어놨다.
개인적으로 공간을 빌려서 하는 것은 부담이 되기 때문에 공모전을 최대한 활용해서 선보여야겠다는 생각을 해서 이번 청년작가 전시공모에 응모해 이번 전시를 치르게 됐다.

아무래도 젊은 청년들이 안고 있는 불안감과 초조함을 표현한 작품들이다보니 무겁거나 진지해 보일 수 있는 측면이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주제가 무거울지언정 색채는 밝고 화사하게 사용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도록 하려고 했다.
그녀는 “제 또래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앞으로 해결해나가야 하고, 성장해나가야 하는 방향으로 재밌게 봐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런 캐릭터들을 그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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