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愛國)이라는 말
애국(愛國)이라는 말
  • 문틈/시인, 시민기자
  • 승인 2014.08.20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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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엔가 일어났던 일이다. 한 초등학교 학생이 아파트 베란다에 태극기를 내걸다가 추락하여 생명을 잃은 일이 있었다. 나는 짧게 실린 그 신문기사를 읽고 한참 눈물을 참았다. 그 아이는 깨금발을 하고 베란다 한켠에 세워진 국기 게양대에 태극기를 달려고 손을 내뻗다가 그만 중심을 잃고 높은 층에서 바닥으로 태극기와 함께 땅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 후로 나는 국경일만 되면 애써 그 아이의 마음을 상기하며 태극기를 내건다.
국기는 상징물이다. 성스럽다고까지 주장할 생각은 없지만 우리 선조들은 이 태극기를 공중에 달기 위해서 숱한 피와 눈물을 흘려야 했다. 일제하에서, 6.25 전란 중에, 태극기는 말못할 슬픈 수난을 겪었다. 태극기는 그러므로 단순한 상징물이 아니다. 이 깃발은 그야말로 우리 국가와 민족의 아픔이 깃든 ‘소리없는 아우성’이다.

무슨 일로 잠시 미국에 체류하던 때 매일 집집마다 성조기를 내걸고 있는 것을 보고 미국은 날마다 국경일인가 하고 갸우뚱했었다. 알고 보니 그들은 국경일이 아닌 평일에도 날마다 국기를 달았다. 성조기는 상징물이라기보다는 나 같은 외국인의 눈에는 거의 우상으로 비쳐질 정도로 그들은 성조기에 대한 자랑과 숭배의 염이 짙었다.
엊그제 광복절에 보니 우리 마을에 태극기를 내건 집은 몇 집이 되지 않았다. 태극기를 내건 집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다. 뭐, 그것을 가지고 시비를 걸 생각은 없다. 하지만 마음 한 쪽에 통증 같은 것을 느꼈다. 혼자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는 애국이라는 말을 쓰면 뭔가 시대에 뒤진 사람처럼 여기는 듯하다.
애국이라는 말이 어쩌다 이렇게 홀대받게 되었는지 참으로 서운하다. 애국이라는 말은 어느 정권이나 시류를 타는 유행어가 아니다. 한데도 어쩌다 세상이 이렇게 되었는지 애국을 말하면 꼴통보수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마저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하기사 애국이라는 말이 때 묻게 된 까닭을 대라면 없는 것도 아니다. 역대 정권 중에는 애국을 앞세워 독재를 일삼은 경우도 있었고, 이것을 앞세워 되레 국민을 억압하는 데 이용하기도 했었다. 한편으로 남북 관계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애국이라는 말이 마치 분단을 강화하는 듯한 느낌으로 밀려나기도 했다.
애국이라는 말도 태극기처럼 수난을 당해온 셈이다. 어쨌거나 현실적으로 요즘 세상에 애국이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무엇인가 낡은 말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베란다에 태극기를 내걸고 바라본다. 그 태극기가 펄럭이는 사이로 우리의 피맺힌 역사가 겹쳐 떠오른다. 고 김대중 대통령이 대선 후보로 출마했을 때 연설장마다 나가서 태극기를 흔들던 기억, 일부러 옷을 잘 차려입고 친구들과 함께 무슨 말인지도 잘 안들리는 광장 끄트머리쪽 군중에 섞여서 나라의 변화를 바라며 태극기를 마구 흔들던 지난날의 추억이 잊혀지지 않는다.

누가 그랬다. 사랑이란 맹목이라고. 남녀간의 사랑뿐만 아니라 국가에 대한 사랑도 그렇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땅에 태어나 이 땅의 햇빛과 물과 바람 속에서 살아온 내가 내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은 차라리 본능과도 같은 것이다. 국경일에 국기를 내걸 나라가 있다는 것, 그 나라를 자랑스러워할 수 있다는 것, 공중에 매단 국기에 경례를 바치는 모습은 언제나 가슴을 벅차게 한다.
사실 우리는 국가에 대한 사랑을 별로 못 느끼며 살고 있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되레 국가에 대해 불만을 많이 느끼며 살고 있다. 세월호 참사 사건 이후로는 그런 감정이 더 깊어진 것 같다. 잘나도 못나도 우리는 국가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국가는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들이 모여서 된 얼굴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국가에 불만이 많아도 우리가 고쳐가야 할 얼굴이다. ‘목욕물을 버릴 때 아기까지 버리지 말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세상일이 잘 안 풀리고 불안하고 어지럽다고 해도 국가는 우리 자신인데 어찌 버릴 수가 있으랴.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은 우리 사회를 사랑하는 마음이고 그것은 가족을,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한다 해서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국가를 꼭 특정한 정권의 통치대상이라고만 보아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케케묵은 말이지만 정권은 유한해도 국가는 영원하다.

누구랄 것 없이 이 땅에 사는 우리 스스로가 사랑받는 국가를 만들어가야 한다.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취임연설에서 “국가가 당신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지 말고 당신이 국가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물으십시오.“라고 했다. 정말 가슴 찡한 말이다.
이 땅에 태어나 이 땅에 묻힐 우리에게 국가는 영원히 사랑할 연인이나 다름없는 존재다. 물론 그 사랑하는 방식은 한 가지가 아니고,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속에서 다양하게 표현될 것이다.

국가는 이 땅이요, 이 산이요, 바다요, 이 백성들이다. 이렇게 쓰는 나는 별로 국가를 위해 한 일이 없다. 그저 이 한 몸 건사하느라 힘들게 살아왔다. 남북을 가로지르는 철조망을 거두기 위해서 한 일도 없고, 나라가 부강해지기 위해서 무슨 생산적인 일을 한 일도 없고, 아무리 생각해도 국가를 위해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나를 국가는 어머니처럼 이 평생 보듬어주었다.
나는 여기에 쓴다. 이 나라에 감사한다고. 그런 마음으로 떨리는 마음을 안고 태극기를 파란 하늘에 내건다. 그저 미약한 한 백성에 불과하지만 이 나라에 소털 하나만큼이라도 보탬이 되는 존재가 되고 싶다. 애국이라는 말은 참 아름다운 말이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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