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 사냥꾼들과의 대화
매미 사냥꾼들과의 대화
  • 문틈/시인,시민기자
  • 승인 2014.07.23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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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아침 산책을 나가면 으레 어린 매미 사냥꾼들을 볼 수 있다. 파란 모기장을 오려서 만든 것 같은 매미채와 매미를 잡아 가둘 이동식 집을 꿰차고 매미가 울고 있는 나무들을 쳐다보며 두셋의 꼬마 아이들이 신이 나서 돌아다닌다. 매미 사냥은 도시 아이들이 자연과 스킨십할 거의 유일한 놀이다.
우리가 어릴 적에는 논으로 메뚜기를 잡으러 다녔다. 메뚜기는 벼 잎사귀 뒤에 붙어 있다가 사냥꾼들이 다가서면 얼른 튀어 달아난다. 그래도 불리한 쪽은 늘 메뚜기다. 이 논 저 논 메뚜기 사냥을 하러 돌아다니다 보면 빈 소주병이 그득 찰 만큼 메뚜기들이 잡히곤 했다.

메뚜기들은 빈 병 안에서 살려달라는 듯이 긴 발가락을 꼼지락거린다. 붙잡힌 하늘의 병사처럼 갑옷으로 무장한 메뚜기들은 그날 기름에 튀겨서 사냥꾼들의 맛있는 간식거리가 된다.
아파트 숲에 사는 도시의 아이들은 매미잡이에 정신이 팔려 있다. 모양새를 보니 매미채며, 매미를 가두는 집도 다 마트 같은 데서 파는 것인가 싶다.
매미는 종류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거의 7년, 8년을 땅 속에 어린 애벌레로 살다가 마침내 이 세상에 나와 고작 한 달 정도 실컷 울고는 일생을 마치는 참 특이한 생명체다. 짝수 해엔 8년을 땅 속에 있던 매미가, 홀수 해엔 7년을 기다린 매미가 세상에 나온다고 한다. 매미가 우는 것은 수컷이 짝짓기를 하려는 목적으로 암컷을 목청 터져라 유혹하는 소리다.

가만 보면 자연의 모든 생명체들은 거의 짝짓기에 목숨을 건다. 거기에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짝짓기가 일생의 목표인 양 모든 생명체의 삶은 바로 그것을 향하여 진행된다. 이것을 동물사회학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1941~)는 모든 생명체는 ‘유전자를 운반하는 기계‘라고 표현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자칭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도 유전자 운반 기계일 따름이다.
어린 매미 사냥꾼들을 좀 골려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더운 여름을 시원한 에어컨을 튼 것처럼 소리쳐 합창하는 매미들을 무엇 때문에 잡는단 말이냐. 그저 재미 삼아서? 7, 8년이나 땅 속에서 세상에 나올 준비를 마치고 나온 신묘막측(神妙莫測)한 매미들을 잡다니.

“얘들아, 너희들 지금 무엇하고 있니?” “매미 잡아요.” “오, 그래. 학교 숙제로 잡는 거니?” “아니요.” 나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으응, 그렇구나. 집에 가서 매미를 구워 먹으려고 그러는 구나.” 그러자 아이들 모두 나를 의아하게 쳐다보며 입을 모아 “먹으려고 그러는 것 아니에요.”
내가 다시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투로 엄숙하게 “그러면 무엇하러 노래하는 매미들을 잡는 거니?” 우리의 대화는 여기서 일단 멈추었다. 어린 사냥꾼들이 매미집에 잡아 가둔 매미들을 보며 그 대답을 생각해보느라 입을 다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입을 열어 무어라 말을 하지 못한다.
나는 다시 말한다. 너희가 만일 매미라고 치자. 저기 나무 위에 올라가 자기 여자 친구를 부르느라고 하루 종일 노래를 부르는 매미라고 치자. 아이들은 진지하게 내 말을 듣는다. 그래서 저 나무 등걸에 붙어서 여자 친구를 부르는 너희를 내가 매미채로 탁, 잡아 매미집에 가두어 두면 괜찮을까. 그러자 아이들은 불안한 얼굴로 마치 서로 짜기라도 한 듯이 “지금 매미를 살려줄 거예요.”한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보니 어린 매미 사냥꾼들은 보이지 않는다. 필시 매미들을 꺼내어 날려 주었을 것이다. 생명의 무게는 똑 같다. 나비와 뿌사리(황소)의 생명의 무게는 어느 것이 더 무겁거나 가볍지 않다. 어린 매미 사냥꾼들에게 모든 생명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려 했던 산책길의 내 행동이 살짝 지나쳤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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