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이 된 일기장 보신 적 있어요?
환갑이 된 일기장 보신 적 있어요?
  • 백승현 대동문화재단 편집장
  • 승인 2014.06.12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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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호 가옥에 가면 이름만큼 구수한 시골 농부 김봉호 어르신을 만나 뵐 수 있다. 광주 광산구 하남대로 54번 안길 161에 있는 김봉호 가옥은 광주 문화재자료 제25호이다. 이 문화재를 보러 온 목적의 사람이라면 실망할 수 있다는 점을 먼저 말하고 싶다. 이런 고가 문화유산은 광주에 더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봉호 가옥은 그런 가옥들과 약간 다르다. 아름드리 소나무숲을 병풍처럼 두르고 옹기종기 모여 앉은 ‘경암(景岩)’ 마을. 말 그대로 ‘빛바위’라고 불리는 하남의 작은 마을에 김봉호 가옥이 있다. 맨 처음 순천 박씨가, 그 다음에는 경주 김씨 김규환 공이 들어와 터를 이루었다. 2004년 하남 택지 조성으로 마을이 깡그리 없어지기까지는 20여 가구가 살았는데 경주 김씨가 많았다.

김봉호 가옥도 그런 전형적인 농촌의 농가였고 지금도 그렇다. 그러나 지금은 이 문화재가 농가주택이었다고 느낄 수 없도록 주변에 아파트와 단독주택이 많아 마치 고가가 현대식 고층 건물들에게 포위된 느낌이다. 가옥의 뒤쪽에 근린공원이 없었다면 더욱 이 고풍스러움은 흔적이 없을 것이다.

어쩌면 김봉호 어르신이 이 가옥을 택지 조성지로 팔아버렸다면 이곳이 신흥 주택지로 더 어울린다고 생각할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김봉호 어르신은 이 가옥을 팔면 ‘한몫 챙길 거라는’ 은근짜들의 발림말을 내쳤다. 이 자리에서 5대째 살아온 애착 때문에 문화재로 가옥을 지정하면서까지 태자리를 지켰다.

가옥은 농가의 검소하고 단아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고 실용성이 돋보인다. 주인 김봉호 어르신의 부친인 김기상 공은 넉넉하지 못한 농부의 살림임에도 온 정성을 다해 집을 지었다. 부친은 모친의 묘 밑에 당집을 짓고 시묘를 해 광주향교의 표창까지 받기도 한 전형적인 농부의 태도를 보여주었다.

김봉호 가옥은 그래서 아직도 안채, 문간채, 헛간, 계사, 돈사, 잠실이 있고, 우물, 집안 자료관도 있다. 농가에서 쓰던 물건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제자리에 보관되어 있다. 양반집 터수의 고가에서 느낄 수 없는 그런 친근함과 소박한 아름다움을 주는 가옥이다.

여기 온 사람들은 주인의 아무 욕심 없고, 다정하고, 조촐한 성품에서도 더욱 감동을 받는다. 한 번도 주인은 늦게 일어나본 적이 없다. 일찍 일어나서 집안을 가꾸고 치우고 청소한다. 가옥의 어느 한곳도 이 주인의 손길을 타지 않은 것이 없다.

거기다 1952년 10월 24일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기를 써온 그 농부 근성은 놀랍기만 하다. 52년 이후의 한국의 한 개인의 다큐멘터리는 다락 속 살림살이들과 사진첩에서도 생생하게 살아나 있다. 주인은 ‘정돈의 왕, 기록의 왕’이다.

자기가 쓰던 살림을 한 번도 그냥 버리지 않았다. 우리 현대사의 한 개인 기록사가 주인의 일기에 담겨있다. 그것 때문에 우리는 이곳을 찾아와 그 주인의 정성을 문화재 가옥보다 더 높게 쳐주는 것이다. 놀랍고 정겨운 문화재가 김봉호 가옥의 주인 김봉호 어르신이다.

1944년에 착공하여 1945년 해방을 전후하여 완공된 이 가옥을 찬찬히 들러보면 가옥을 지키고 가꾸라는 선친의 말씀을 지키고 농부로서의 성실함을 끝까지 고수하려고 한 주인의 마음이 그대로 읽혀져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 우리들을 얼마나 순간적인 삶에 일희일비하며 사는가? 도대체 평생을 오로지하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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