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없어요!”라는 언어적 차이 힘들어
“일없어요!”라는 언어적 차이 힘들어
  • 박재완 시민기자
  • 승인 2014.06.04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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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출신의 시인 수필가 황영애의 이야기 2

기자가 황영애 작가와 만남은 우연한 기회였다. 서로 인사를 나누며 명함을 받았는데 문인협회 회원 시인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런데 그녀와 대화에서 억양이 좀 다른 것 같아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살며시 미소 지며 조선족의 특유의 억양으로 “중국 하~알삔에서 왔어요”라고 이야기 한다.
나에 편견이었을까? 외국에서 거주하는 우리 동포들은 시인이 되지 말라는 규정은 없다. 뭔가 경이롭게 보이며, 특별한 것이 순간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아직은 조선족, 고려인이 한국 문인단체에서 활동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4년제 조선족사범학교(사범대학)를 졸업하고 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다가 중국에서 한족에 밀려 조선족은 제2국민으로 차별을 받는다고 했다. 같은 조건의 학력과 여건이면 취업, 승진 등에서 밀리고, 승진을 하더라도 부(副)를 달고 다니는 2인자 선에 머무른다는 거싱다.
동네에서도 한족과 싸움나면 이웃과 주변동네까지 합쳐서 한족들이 무리를 지어 쳐들어와 함께 하는 바람에 조선족은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웬만한 것은 참고 견딘다. 억울한 일이 있어도 별수 없다는 것이다. 고위급간부를 알고 있지 않는 한 조선족이 어렵다고 이야기 한다.

이런 환경에 질린 일부 조선족들은 아예 처음부터 아이를 한족으로 뿌리를 바꾸어 중국학교에 보내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지금은 조선족의 인구감소로 인해 조선족 학교들이 학생 감소로 운영이 힘들어 폐교되거나 중국학교에 통합이 되고 있는 실정이란다.
이런 환경이 싫고, 더 이상 국어와 단절될 것이 두려워 그녀는 과감하게 한국행을 선택했다. 지금도 하얼빈에는 형제자매가 살고 있다.
10 여 년 전 그렇게도 그리워했던 한국으로 왔건만, 막상 들어와서 보고 느낀 것은 어디에도 고향의 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한민족 고유의 아름다운 우리말과 글은 그 말이 무색할 만큼 외래어와 그리고 국적불명의 언어의 홍수 뿐이었다.
시내의 홍보문구나 광고물, 등에 표시된 단어를 묻거나 질문을 하면 그 뜻을 모르는 바보 또는 이방인 취급당하는 시선이었다.

그녀는 이런 이야기도 들려준다. 차 수리하는 곳을 카센터라고 하는데 카센터라는 뜻을 몰랐단다. 문화적인 개념의 차이다. 그녀가 알고 있는 센터의 개념은 포괄적인 모든 것을 주관한다는 뜻이었다.
카센터를 자동차에 관한 모든 것을 책임지는 곳으로 알고 있어서 무심코 질문한 것이 눈물이 나올 정도로 무시당했다고 이야기 한다.
또 한 번은, 그녀는 대화도중 ‘괜찮다’는 단어를 ‘일없다’고 말하자 주위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봐 진땀을 흘린 적도 있었다. 조선족들은 많이 쓰는 단어인데, 그게 북한식 단어인 줄을 나중에 알았다.

한국과 문화교류가 빈번하지 않던 때에 아마 북한교재를 많이 참고하여 배웠기에, 그녀는 북한식 표현어를 구분할 여유가 없었단다, 한글을 배울 수 있단 것만으로도 좋았다며, 지금은 주변을 웃기려 일부러 ‘일없다’는 단어를 쓰고 있었다.
그녀는 ‘그때는 별것이 다 힘들게 느껴졌던 것 같다’고 배시시 미소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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