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날 차량행렬을 바라보면서
한식날 차량행렬을 바라보면서
  • 신문식 시민기자
  • 승인 2014.04.08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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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명절 중의 하나로 후손이 조상의 묘소를 살펴
▲ 신문식 시민기자

한식날은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로 우리나라의 풍습으로는 귀신이 없는 날이라 해서 성묘를 하고 산소에 잔디를 입히거나 선령의 묘를 보수하거나 이장을 한다.

금년의 한식날에 고속도로의 차량행렬를 바라볼 때 고향을 찾아 성묘를 하거나 산소를 보수, 또는 이장하는 효자 효부 효손들이 많다는 증거이다.

이것은 경천숭조효친의 사상이 아직도 우리들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다는 증거로 동방예의지국의 향기가 가시지 않았음이라.

황금만능주로 자본의 노예가 되어 천륜을 저버린 반인륜적이고 반도덕적인 금수만도 못한 반인간적 사례들이 빈번하게 발생되는 것을 볼 때는 우리의 현실을 개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식날 고속도로에 북새통을 이루는 차량홍수에도 우리 민족의 전통사상은 가슴속에 정신 속에 깊은 뿌리가 내려 있음을 볼 때 한민족의 정신사상은 질기고 깊고 두껍다는 것을 확신할 수가 있었다.

한식은 원래 중국에서 들어와서 우리나라에서 토착한 세시풍속의 날이 되었다. 한식날은 설날. 단오 추석과 함께 우리나라 4대명절로 되어 있었으나 요즘은 설과 추석만 큰 명절로 하고 있으며 한식날은 성묘하고 산소를 보수하는 날로 인식을 하고 있다.

한식날의 유래는 사전 등에 잘 나와 있다. 그 내용을 여기에 인용해본다.

한식은 4대 명절의 하나로 청명절(淸明節) 다음날이거나 같은 날에 든다. 계절적으로는 한 해 농사가 시작되는 철이기도 하며, 겨우내 무너져 내린 무덤을 보수하는 때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날은 조상의 묘소를 찾아 살피는 날이기도 하다.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 사람들은 한식을 냉절 또는 숙식이라고도 불렀다. 한식의 유래는 중국 옛 풍속에 "이날은 풍우가 심하여 불을 금하고 찬밥을 먹는 습관에서 왔다"는 〈개자추 전설 介子推 傳說〉이 전해진다.

중국 춘추시대에 공자(公子) 중이(重耳)가 망명·유랑하다가 진나라 문공(文公)이 되어 전날의 충신들을 포상했다. 이때 과거 문공이 굶주렸을 때 자기 넓적다리 살을 베어서 바쳤던 충신 개자추가 이 포상 자들 중에 들지 못하자 개자추는 부끄럽게 여기고 산중에 들어가 숨어버렸다.

문공이 뒤에 잘못을 뉘우치고 그를 찾았으나 산중에서 나오지 않으므로 불을 놓으면 나올 것이라는 생각에서 불을 질렀다. 그러나 끝내 나오지 않고 홀어머니와 함께 서로 껴안고 버드나무 밑에서 불에 타 죽었다. 이에 그를 애도하는 뜻에서 이날은 불을 쓰지 않고 찬 음식을 먹는 풍속이 생겼다고 한다.

이날 나라에서는 종묘(宗廟)와 각 능원(陵園)에 제향을 지내고 관공리들에게 공가(公暇)를 주어 성묘하도록 했다. 민간에서는 산소를 돌보고 제사를 지낸다. 농가에서는 이날 농작물의 씨를 뿌리기도 한다.

조선시대 내병조(內兵曺)에서는 느릅나무와 버드나무에 구멍을 뚫고 삼으로 꼰 줄을 꿰어 양쪽에서 톱질하듯이 잡아당겨 불을 만들어 임금께 올린다. 임금은 그 불을 홰에 붙여 관아와 대신들의 집에 나누어주었는데, 이는 불의 주력을 이용하기 위해 불을 소중히 여기는 숭배사상의 전승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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