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비구의 수행불기 ‘막사발’
청정비구의 수행불기 ‘막사발’
  • 김상집
  • 승인 2014.02.06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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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부처님이 라자그리하(마가다 왕국 수도) 성에 계셨다. 그때 빔비살라 왕은 이층으로 궁궐을 짓고 있었는데 매우 값진 시사바 재목으로 기둥을 세우려다 그 시사바 나무로 발우를 만들어 비구들에게 보시했다.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나무발우를 가지지 마라. 이는 외도의 법이다. 만일 가지면 법대로 다스리라.’ 했다.”(마하승기율)

“부처님이 소마 나라에서 여러 곳으로 다니셨다. 그때 믿음이 굳건한 옹기장이가 있었다. 부처님이 진흙 있는 곳을 가리키면서 발우(Patra) 만드는 법을 말씀하셨다. 옹기장이가 부처님의 말씀대로 발우를 만들어 비구들에게 갖다주었다.”(마하승기율)

소동파가 신규각비문에서 “황제가 용뇌목으로 만든 발우를 하사했는데, 회련스님은 사자 앞에서 태워버린 후 ‘우리 불법에는 먹물옷 입고 질그릇발우로 밥을 먹게 되어 있으니 이 발우는 법답지 않습니다.’고 하니 황제가 오랫동안 찬탄하였다.”라 한다.(인천보감)

“발우는 세 가지 빛깔을 내야 한다. 첫째는 공작새의 목구멍 같은 색깔이다. 둘째는 비릉가새의 빛깔이며, 셋째는 집비둘기와 같은 색깔이니라. 발우를 구울 때는 때를 기다려 반드시 이와 같은 색을 내야 하느니라.”(마하승기율)

이와 같은 세 종류의 새가 지닌 색을 한꺼번에 섞으면 연한 황토색깔이 된다. 이 색은 사형수가 입던 죄수복의 색깔이며, 또한 인도의 계급제도에서 최하층민이자 노예인 수드라가 반드시 입어야 하는 옷의 색깔이었다. 석가모니가 승려를 표시하는 옷의 색깔로 연한 황토색을 선택한 것은 곧 목숨을 걸고 수행해야만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는 매우 강렬하고 심오한 상징을 담고 있다. 막사발은 바로 이 연한 황토색깔인 비파색을 재현하고 있다.

“만일 발우에 만다라의 섭(받침대, 굽)을 두었으면 땅에 놓아도 죄가 없다. 또한 발우 밑에 만다라를 칠한 자는 발우를 땅에 두어도 죄가 없다. 그리고 아래로 내려가 물 뿌린 땅에 발우를 두어도 죄가 없다.”(마하승기율)

발우에 관한 계율은 사대율장에 드는 『사분율』과 『마하승기율』에 매우 상세히 정해져 있다. 발우는 가사와 함께 승려가 반드시 지녀야 할 ‘비구 18지물’의 하나다. 발우는 수행자의 몸을 유지시켜주는 음식 그릇이므로 매우 엄격하고 상세한 계율에 따라 제작하고 사용해야 하며, 사용 중에 발생하는 청결, 파손에 따른 수리, 버리는 일까지도 계율이 적용되었다.

흙발우는 재료를 구하기 쉽고 청결을 유지하기 간편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무겁고 깨지기 쉬운 점과 만다라의 법에 따른 제작의 어려움이 단점으로 지적되었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11세기 말에서 12세기 중반까지 중국불교사에는 계율을 중시하는 청정한 비구들일수록 쇠발우보다는 흙발우를 더 귀중히 여겼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실제로 석가모니는 1,250여 명의 제자들과 함께 생활했다. 수천 명이 함께 생활한 승가의 청결과 질서 유지를 위해 만다라의 섭(받침대, 굽)을 두고 흙먼지 이는 아무 곳에나 발우를 두지 못하도록 했다. 그런데 발우를 옮길 때마다 땅바닥에 물을 뿌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건기인 경우 물을 뿌릴 수 없는 상황도 생길 수 있었지만 계율은 지켜져야 했다. 이런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흙발우 맨 아래쪽이자 땅바닥과 맞닿는 부분인 굽 언저리에다 물방울 형상의 만다라, 즉 매화피(가이라기)를 만들어 놓았다.

승려가 그릇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석가모니 생존 당시부터였다. 처음으로 흙발우를 만든 것도 비구였다. 이러한 전통은 중국 불교에 수용되었고 고려와 조선시대 중반까지 이어져왔다. 여러 종류의 분청사기를 능수능란하게 빚을 수 있었던 승려 사기장은 그때까지 축적된 조선 도자기 기술을 바탕으로 전설적인 흙발우를 ‘기교 없이 계율대로 빚은 발우’ 곧 ‘막사발’로 재현해낸 것이다. 이 청정비구의 수행불기 ‘막사발’을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차선생인 센노 리큐가 천목차완 대신 찻사발로 사용하면서 이도차완의 열풍이 불게 되었다.

일본의 당대 기록에 따르면 하급 무사의 토지와 녹봉 전체가 이도차완(막사발) 하나의 가치와 맞먹었을 정도였다. 따라서 불교를 신앙으로 하는 일본의 차도 예절 중에 차도구를 감상하는 시간이 있는 것은 당대 차도구들이 『사분율』과 『마하승기율』의 기준에 따른 예술품이고 엄청난 고가의 제품들이었기 때문에 어찌보면 당연하달 수 있다.

흙발우는 수행자 한 사람이 한 개씩만 소지한다는 계율, 그리고 한 수행자가 쓰던 발우는 그 수행자의 사후 제자에게 대물림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막사발은 민중들의 생활잡기가 아닌 절간 수행자 청정비구의 발우였음을 충분히 짐작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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