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布施)와 엔돌핀(1)
보시(布施)와 엔돌핀(1)
  • 김상집
  • 승인 2014.01.16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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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집

간다라 페샤와르를 수도로 한 인도의 쿠샨왕조(78~226)는 동서 문명의 교차로에 위치해 다양한 언어와 종교를 수용하는 등 폭 넓은 포용정책을 써 왔다.
쿠샨왕조의 왕들은 인도(위대한 왕), 로마·이란(왕중의 왕), 중국(신의 아들:천자)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호칭들을 사용하였는데 이들의 포용적 성격을 잘 보여주며, 동서문화의 융합의 결과로써 그리스 로마 계통의 미술과 인도의 불교미술이 혼합된 간다라 미술이 나타난다.

이 시기 불교는 왕족과 상공업자의 지원을 받아 대승불교로 발전해 나갔으며, 카스트제도에 따른 4개 계급의 종교적 의무와 생활규범들을 규정한 <마누법전>이 브라만에 의해 편집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브라만이 중심이 되는 브라만교의 전유물이었던 베다성전에서 볼 수 없었던 시바신이나 비슈누신이 나타나고, 갠지스 강이나 히말라야 산의 신격화가 일어나고, 서사시로 된 대중적인 종교문헌인 <마하바라타>나 <라마야나>가 등장하면서, 민간신앙과 결합하여 힌두교가 성립된다.

대승불교의 경우를 보면, 석가 입멸 후 600년 동안이나 금기시되었던 부처의 형상 표현이 간다라에서 최초로 불상으로 나타나며, 동시에 대승불교의 독특한 수행방식인 바라밀다(Paramita)가 체계화되어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 지혜(智慧) 등을 꼽는 6바라밀다가 카로슈티 경전에 수록되어 널리 알려져 있고, 불도 수행의 기본으로서 오늘날까지 회자되고 있다.

알렉산더 왕은 정복지마다 무려 70개가 넘는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를 세우고 그리스인 왕을 임명하여 식민지를 다스리게 하였다. 기원전 2세기 경 밀린다왕문경을 보면, 인간이 신이 되고 이 신격화된 인간을 신전에 조각하였던 그리스 왕들 입장에서 불교는 숭배하는 분의 형상도 없고 오직 깨달음을 얻기 위해 고행만을 요구하는 이해할 수 없는 종교였다.
그럼에도 결국 그리스인이었던 밀린다 왕이 불교신자가 된 것은 동서문명의 교차로에 위치한 지정학적 포용정책의 일환이라 보고 있다.

300년이 지나 조로아스터교를 믿는 유목민족인 쿠샨왕조가 간다라지방을 통치하자 사후세계를 염원하는 쿠샨 왕들에게 인도의 승려들은 보다 적극적인 포교활동을 펼치게 된다. 쿠샨인 무덤의 부장품에는 금은보화가 많고 특히 사자의 입에 동전을 물려주는 풍습이 있다.
사후세계에 가서 천당과 지옥으로 나뉘게 되는데 저승사자에게 양팔을 붙잡혀 있으므로 염라대왕이 이름을 물어볼 때 입안의 동전을 뇌물로 주라고 물려주는 것이다.

엄청난 권력과 부를 점하고 있는 쿠샨인들이 불교 신자가 된 데에는 보시와 같은 선행만으로도 현세의 악업을 씻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6바라밀다가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오직 고행으로만이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던 설명(소승불교)에서 이제 쿠샨인들은 고행을 하지 않고도 극락에 갈 수 있으므로 무덤으로 가져갈 금은보화로 많은 사찰을 짓고 보시와 같은 일상의 선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자 하였다(대승불교).

간다라 불상 어깨너머에는 죄를 씻는 불꽃(광배로 발전)이 일렁이고 있으며, 포도와 올리브 열매를 바치는 여신과 헤라클레스, 헤르메스 심지어는 알렉산더 왕까지도 부처를 모시는 신(협시보살)으로 조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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