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단상 ⑨ 희망의 천사 정연효
5월 단상 ⑨ 희망의 천사 정연효
  • 김상집 5.18민주유공자회설립추진위원장
  • 승인 2013.07.19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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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집 5.18민주유공자회설립추진위원장
5월 26일 자정, 광주YWCA 안쪽 조아라 회장님의 방에서 잠들기 전에 이충영 김효석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광주YWCA 경비대장을 맡고 있는 고교동기인 정연효(현재 멕시코 파견 선교사)가 급히 나를 찾았다. 정연효는 광주YWCA 바로 옆에 있는 병원 사이 담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당시 광주YWCA 정문 입구는 소심당의 긴 의자들을 겹겹이 쌓아 완전히 봉쇄했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뒷문이 없는 광주YWCA 건물구조상 안으로 들어오고 밖으로 나가려면 이 담을 넘어야 하는데 광주YWCA와 병원 사이 담은 꽤나 높아 2미터 가량 되어 남자들은 몰라도 여성들은 넘나들기 어려운 높이였다.

정연효는 만약 오늘밤 정말로 계엄군이 진격해오면 소심당 안에 자고 있는 70여 명의 여성들도 안전하게 도피할 수 있도록 2미터 높이의 담에 비스듬하게 철망을 걸쳐 놓았다는 것이었다.
그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계엄군의 진격소식이 알려지면서 광주YWCA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러나 경비대장 정연효의 침착한 대비로 경비를 제외한 궐기대회팀과 투사회보 대자보팀은 안전하게 광주YWCA를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때 광주YWCA의 궐기대회팀과 투사회보 대자보팀이 대부분 피신함으로써 합수단에서는 Y강경파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고 운동권에 내란죄를 뒤집어씌울 수 없었다. 만약 그때 광주YWCA의 궐기대회팀과 투사회보 대자보팀이 몽땅 잡혔더라면 아마 운동권에 내란죄의 책임을 물어 십여 명은 사형집행을 당했을 것이다.

나는 우선 소심당으로 들어가 대자보팀 여성들에게 큰소리로 나를 따라오라고 하고 광주YWCA와 병원 사이 담으로 데리고 가서 정연효가 알려준 대로 차례차례 철망을 타고 담을 넘으라고 했다. 일단 광주YWCA 밖으로 나간 다음 사방에 계엄군이 깔려 있을지 모르니 우선 녹두서점으로 들어가라고 단단히 일러주었다.

그런데 철망을 타고 담위로 올라선 여성들은 깜깜한 데다 담이 너무 높아 뛰어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안되겠다 싶어 전용호와 나는 총을 담장에 세워두고 담을 넘어가 차례차례 여성들의 발을 잡아 어깨에 발을 딛고 담을 넘어오도록 도와주었다.

여성들이 모두 월담하고 난 뒤에 다시 담을 넘어 총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총이 없으면 싸울 수도 없었기 때문에 전용호와 나는 총을 가지러 도청으로 가려고 전일빌딩과 도경분실 사이 금남로 입구로 나왔다.

그런데 불안한 시민군들은 도청에서 금남로를 향해 간간히 총을 쏴대고 있었다. 몇 번을 도청을 향해 포복할까말까 멈칫거리자 전용호가 말했다. “형 이렇게 나갔다가는 아군 총에 맞아 죽겄소.”
그때 정현애 형수님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우선 녹두서점으로 가자며 전용호와 나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서점에는 뒷방까지 사람들로 꽉 차 있었으나 한꺼번에 나가면 계엄군 눈에 띄어 몽땅 잡힐 우려가 있으므로 사람들은 삼삼오오 시간을 두고 서점을 나섰다.

그 와중에서도 정현애 형수님은 계엄군의 진입에 대비해서 투사회보와 대자보, 상황일지 등을 태워 없앴다. 나는 시민군들이 서점에 놔두고 간 화염병과 수류탄, 카빈총들을 보자기나 신문지로 싸서 옆집 담밖으로 던져버렸다.

마지막으로 서점뒷문을 나서려는데 거울을 보니 수염이 더부룩하여 나가면 잡히기 딱 좋았다. 전용호가 먼저 나가고 면도를 하고 있는데 부엌문이 열리며 계엄군이 “손들엇!” 하며 총구를 들이댔다. 포로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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