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학교를 살려야 하는 이유
작은 학교를 살려야 하는 이유
  • 정유리(평등과 연대를 위한 민중행동)
  • 승인 2013.07.18 09: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교조 전남지부 선생님에게 듣다

전남도 교육청(이하 도교육청)은 농산어촌의 규모가 작은 학교를 통폐합하는 이른바 ‘작은학교 죽이기’ 정책을 펴고 있다. 지난 6월 18일 ‘작은학교 살리기 전남지역운동본부’는 도교육청 앞에 ‘작은학교 살리기’를 위한 천막농성에 들어갔다.
도교육청 앞에서 천막농성을 이어가는 전교조 전남지부 선생님들을 만나 도교육청의 학교 통폐합 정책의 문제와 대안에 대해 들어보았다.

지역민 의견 무시한 채 통폐합 진행중

“장만채 교육감은 장성지역 학부모들에게 학교 통폐합, 기숙형 중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학부모 20명의 서명을 받아오면 추진하지 않겠다고 말했어요. 6월 18일에 장성지역 학부모들은 270명의 서명을 받아왔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의 서명을 받아왔으니까 상식적으로 추진하지 않겠다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교육감은 이미 너무 많이 추진되어 어쩔 수 없다더군요.”
5월 2일 작은학교 살리기 운동본부 준비위원회가 발족했고, 그날 장만채 교육감과 면담을 가졌다. 이 면담에서 행정국장은 학교 통폐합과 기숙형 중학교 설립을 추진 않겠다고 이야기했다.
중요한 것은 장만채 교육감이 반대하는 학부모 20명의 서명을 받아오면 더 이상 통폐합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교육감이 제시한 20명보다 훨씬 많은 270명의 학부모 서명을 받아왔지만, 교육청은 이미 추진되고 있는 정책을 멈추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이해할 수 없는 답을 줬다.
뿐만아니라 추진 전부터 반대하지 않고 왜 지금에 와서 통폐합, 기숙형 중학교 설립을 반대하느냐며 되레 학부모들을 질타했다. 그러나 학부모들은 교육청으로부터 좋은 점만을 부각시킨 일방적인 정보만 받았을 뿐이었다.

문제투성이 전국1호 기숙형 ‘속리산 중학교’

“학교를 새로 짓는 동안 아이들이 1년간 컨테이너 박스에서 공부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교육청은 학부모들에게 알리지 않았죠. 컨테이너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학부모들이 얼마나 황당했겠어요? 학부모들은 교육청에서 학교통폐합, 기숙형 중학교 설립이 좋다고만 말하니까, 그렇게 믿었던 거죠.… 교육감은 현재 중단할 명분이 없기 때문에 정책추진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이에요. 그래서 교육청 앞에 천막을 치게 됐어요.”
장성지역 주민들은 기숙형 중학교 설립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주민들이 가진 정보는 전국 최초의 기숙형 중학교인 속리산 중학교로 견학가면서 들은 내용이 전부였다. 이조차도 견학 가는 버스에서 교육청 관계자가 말해준 “건물과 시설이 좋다”, “교육의 질이 높아진다”, “사감이 있어 아이들을 돌봐준다” 등 온갖 좋은 말들뿐이었다.
기숙형 중학교의 폐해는 전혀 듣지 못했다. 속리산 중학교의 운영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 아침 8시부터 밤 10시15분까지 정규수업과 보충수업 그리고 방과후 특기적성 교육을 진행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꽉 짜진 일정에서 선택권이 거의 없다. 학생들을 통제하겠다는 명분으로, 월요일 등교 즉시 휴대폰을 회수하여 금요일 귀가 시에 돌려주기도 한다.
이성교제가 적발되면 기숙사에서 쫓겨나며, 남학생들은 머리를 짧게 깎아야만 한다. 성과 위주의 학교 운영방식으로 교사들의 업무량이 과중하니, 교사가 학생 하나하나의 고민을 살피기란 더욱 어렵다.
이러한 기숙형 중학교의 실체는 감춘 채 좋은 건물과 많은 지원금으로 포장된 겉모습만을 학부모들에게 보여주었다. 학부모들은 뒤늦게야 이런 폐해를 알게 되었다.

농어촌의 작은 학교를 살려야 하는 이유

“곡성군의 통폐합된 중학교에서 근무했던 한 교사의 글을 읽은 적이 있어요. 그 글을 보니 마음이 아렸어요. 먼 곳에 사는 아이들은 6시30분에 집에서 나와서 통학버스를 탄다고 하더라고요. 왜냐면 통학거리가 멀기도 하고, 그 동네 아이들만 통학버스를 타는 게 아니라 다른 동네들도 거쳐서 가야하기 때문에 학교를 가기 위해 새벽밥을 먹고 집을 나서게 됩니다. 통학거리 뿐 아니라 한참 예민한 시기의 아이들이기 때문에 아이들 사이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다툼이 일어나게 되요. 특히 작은 규모에서 통폐합 당하는 아이들이 기를 못 피게 되죠.”
도시의 대규모 학교는 학생 수가 1000명이 넘어서 운동장에서 맘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조차 부족하다. 학급당 학생 수가 40명이 넘는 학교도 있다. 아이들의 교육여건이 매우 열악하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작은학교, 소규모 학급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역설적이게도 여수, 보성, 장성, 신안, 담양, 함평, 강진 등에선 학생 수가 적다는 이유로 통폐합이 진행중이다. 하지만 학생수가 적은 농어촌에 산다는 이유로 부모와 아이들이 불편함을 겪어선 안 된다. 곡성군 사례처럼 통폐합된 학교로 옮긴 학생들은 통학시간이 길어져 잠을 충분히 못 자고, 방과 후 친구들과 만나기 어려워진다. 이것은 결국 농어촌의 아이들이 유년기에 배워야 할 진짜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게 만든다.

작은학교 통한 생태적, 평화적 교육 필요

“전라남도 교육청뿐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교육을 경제논리로 바라보고 있는데, 그것은 공교육을 바라보는 시각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해요. 많은 돈을 쏟아 부어 좋은 건물과 고급 시설을 늘린다고 해서 교육의 질이 높아지고, 아이들의 삶이 행복해지지는 않거든요. 가장 교육적인 것은 가장 인간적인 것이라 생각해요. 특권 경쟁교육이 아니라 가장 보편적인 평화, 생태, 인권 등을 삶의 가치에 두고 교육을 해야죠.”
장만채 교육감은 ‘학교 간 통폐합 증가, 다양한 교육의 선택기회 부족, 학생 수 감소’ 등으로 인한 열악한 교육현실에 놓인 농어촌 학생과 주민들에게 ‘질 높은 교육의 기회를 부여’하겠다며 농어촌 교육발전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정말 모순적이게도 같은 교육감이, 통폐합한 학교당 100억원씩 교육청에 준다는 교육부의 통폐합 정책을 앞장서서 이행하고 있다.
작은 학교를 죽이는 학교 통폐합 정책을 멈추기 위해서는 돈이 되는 교육만 강조하는 교육부와 도교육청에 맞서, 우리 사회의 교육 전반을 바꾸기 위한 공동의 지혜와 대응이 필요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