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단상 ⑧ 서호빈-2
5월 단상 ⑧ 서호빈-2
  • 김상집 5.18민주유공자회설립추진위원장
  • 승인 2013.06.27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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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집 5.18민주유공자회설립추진위원장

26일 저녁, 그러니까 계엄군의 진압 작전이 시작되기 직전 시민군에 편성되었다 잡혀온 사람들은 상무대 연병장에서 맨땅에 꼴아박기를 한 채로 도청 내 주요 임무 종사자를 지목하도록 닦달을 받았다.
수사관이 복면을 한 밀고자들을 앞세우고 나타나, 한 사람씩 일으켜 세운 뒤 복면으로 하여금 얼굴을 판정하게 했다. 이 과정에서는 아울러 총기 휴대자 및 그 교육자를 색출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이 작업은 영창에서도 이루어졌으나, 다행히 한 번도 나는 지목되지 않았다.
시민군들이 숱한 매타작에도 나를 불지 않은 것이다. 매를 견디다 못한 이들은 인상착의로 머리가 약간 짧은 게 예비역 장교인 것 같다고 얘기했을 뿐이었다. 수사관들은 예비역 장교를 찾았지만 소용이 없자 다시 시민군들을 조지기 시작했다. 한 번은 호출되어 영창 쪽문을 나서는데, 한정섭이와 나명관이가 말했다.
“형, 총기 교육을 시킨 놈을 불라고 계속 패는데, 인자는 못 견디것어라우. 혹시 오늘 우리를 형과 함께 불러내는 것이 대질신문할라는 것 아닐까요?”
나는 겁이 더럭 났다.
“아니다. 절대 얘기하면 안 된다. 너희들이 얘기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거다.”
“형, 그래도 여기 수십 명이 잡혀와 있는디 끝까지 감춰지것소?”
눈앞이 캄캄했다. 만약 내가 시민군에게 총기교육을 시킨 게 들통나면 운동권이 줄줄이 엮일게 뻔했다. 당시 정상용 형과 이양현 형은 이 중에서 최소 10여 명은 사형당할 걸로 각오하라며 조서를 어떻게 받느냐에 따라 한 명이 더 죽고 덜 죽으니 조서를 잘 쓰라고 신신당부했던 터였다.
나는 절대 함구하라고 주의를 주면서도 마음속으로는 각오를 단단히 했다. 5월 1일 군에서 제대한 나는 5.18 당시에는 머리가 약간 길어 사람들에게 마치 장교처럼 보였던 것이다. 며칠간 조마조마하며 지냈지만 다행히 예비역 장교 색출 작업은 더 이상 진척되지 않았다.
극도로 불안한 나날이 계속됐다. 그러는 가운데 서호빈에 대해서는 약간의 궁금증만 있었을 뿐, 내 머리에서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상무대 영창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한 달여 만에 바깥 소식을 물고 노준현이 상무대 영창에 나타난 것이다.
며칠 지나자 그는 헌병 눈치를 보더니 불쑥 물었다. “너 호빈이 봤냐?” 나는 깜짝 놀랐다. “호빈이? 갸 지금 어찌 됐냐?” 노준현은 나를 흘낏 보더니 한동안 영창 밖만 바라보았다. 나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서호빈을 처음 만난 것은 군에서 두 번째 휴가를 나왔을 때였다. 친구의 누님 집을 찾았을 때 여동생 ooo는 자기 남자 친구라고 서호빈을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그때 딱 한 번의 만남뿐이었는데 서호빈은 도청에서 나를 알아보았다. 그리고 각자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바로 헤어졌다.
5월 27일 새벽 도청이 함락되고, 날이 밝자 ooo는 서호빈이 걱정되어 그의 집을 찾았다. 5·18항쟁기간 내내 벽장 속에 숨어있던 사람이 없어졌다. 일기장을 열어보니 5·18 항쟁기간 동안의 갈등이 상세히 적혀 있었다. 25일 마지막 일기는 이렇게 끝나고 있었다.
‘방송차량에서 대학생들은 YWCA로 모이라고 하는데 더 이상 숨어있을 수가 없다. 나가 싸우겠다.’
ooo는 내가 전남대 스쿨버스로 가두방송을 하고 다녔고, YWCA에서는 모인 대학생들을 도청으로 인솔해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간호조무사인 그녀는 가운을 입고 도청 안 여기저기를 샅샅이 뒤졌다. 처음에는 계엄군들이 막았으나 가족을 찾는다고 필사적으로 매달리자, 도청 안으로 들어가도록 허락해 주었다.
당시 도청 안에는 총에 맞은 시체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그녀는 피비린내를 맡으며 겁도 없이 시체 한 구 한 구를 살폈다. 네 바퀴나 돌아도 서호빈을 찾지 못해, 혹시 도망쳤거나 잡혀갔다면 목숨이라도 살아있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혹시 여기 어딘가에 죽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도청 밖을 나서지 못하고 입구에서 서성거렸다. 그런 초췌한 모습이 짠했는지 계엄군 한 명이 저기 무기고 뒤에도 시체가 서너 구 있다고 말해주었다. 가서 보니 서호빈이 안경이 약간 벗겨진 채 좌측 가슴에 총을 맞고 죽어 있었다.
ooo는 통곡했다. 그렇게 한 달이 넘게 울었다.
방송차량으로 방송을 하여 서호빈을 YWCA로 데려가고, YWCA에서 도청으로 서호빈을 데려간 김상집 오빠는 서호빈을 보았으면 빨리 그냥 집으로 돌려보낼 것이지 이렇게 총을 쥐어주어 죽게 만들었냐며 나를 원망하더라는 말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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