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단상 ④무장봉기의 서막
5월 단상 ④무장봉기의 서막
  • 김상집 5.18민주유공자회 설립추진위원장
  • 승인 2013.05.23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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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 새벽 5시경, 윤상원형이 산수동집을 찾아와 잠자고 있는 나를 깨웠다. 큰형이 어젯밤 12시경 녹두서점에서 예비검거되어 합수부로 잡혀갔다는 것이었다. 이미 비상계엄은 제주를 비롯한 전국으로 확대되었고, 전국에서 예비검거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윤상원형은 녹두서점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윤상원형도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한 국민연합 전남지부(회장 이성학 제헌국회의원)’의 총무로서 예비검거 대상자일게 뻔하기 때문에 서점에 들어갈 수 없으니 날더러 대신 서점에 앉아 연락을 맡으라는 것이다.
나는 곧바로 서점으로 갔다. 초췌한 형수님은 아침식사도 거르셨다. 아침이 되자 예비검거로 잡혀간 선배들의 안전이 궁금한 이명자, 윤경자 등 형수님들이 모두 서점으로 몰려왔다. 형수님들은 선배들이 잡혀가면서 옷가지도 챙겨주지 못한 것, 잠자다 잠옷바람으로 끌려간 것, 합수부 요원들과 격투하다 수갑 채인 채 끌려간 것 등을 이야기하며 그 절망과 불안의 극한 고통 속에서도 서로를 위로하고 있었다.
윤상원형은 계속해서 시위상황을 연락해주었다. 전남대 정문, 신역, 공용터미널, 카톨릭센터, 광주공원, 적십자병원 등등…. 광주공원에서 시위대를 추격하는 공수부대원들을 공원에 계신 노인들이 꾸중하자 노인 한 분의 머리를 곤봉으로 내리쳐 피를 쏟고 실신시킨 이야기, 그 만행을 본 도망치던 시위대가 분노하여 돌아서서 공수들을 추격하기 시작했고 한명의 공수가 다리밑으로 뛰어내려 광주천을 따라 올라가다 적십자병원 다리위에서 돌멩이 세례를 맞아 쓰러진 일 등을 계속해서 알려주었다. 동시에 시위대들이 흩어져서 본대와 합류하지 못한 사람이 있으면 다음 위치를 알려주어 합류하도록 했다.
또한 소식이 닿는 대로 호주머니에 칼을 가지고 다니도록 연락했다. 공수들이 길에서는 물론 집안까지 쳐들어와 젊은 사람들은 무조건 그 긴 곤봉으로 머리를 두들겨 패서 실신시킨 다음 짐짝처럼 차에 던져 실었기 때문에, 공수들과 정면으로 맞닥뜨리면 우선 왼손으로 머리를 보호하고 죽지 않도록 오른손 칼로 공수의 허벅지를 찌른 다음, 속으로 열을 세기 전에 주위 담을 넘어 도망가거나 골목으로 들어가도록 전달을 하였다.
공수들은 단독군장에 ‘어깨 걸어 총’을 하고 있었는데, ‘어깨 걸어 총’을 풀고 안전장치를 푼 다음 조준해서 사격하려면 최소한 10초 이상이 걸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19일부터는 공수들이 섣불리 시민들에게 달려들지 못했다.
후일 상무대 영창에는 비행장에 근무하는 방위병들이 10여명 함께 잡혀 있었는데, 그 방위병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진압에 나간 공수들이 밤에 돌아오면 2~3명, 심지어는 4~5명 정도가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밤마다 공포에 질려 있었고 부들부들 떨며 자더라는 것이었다.
공수들의 만행에 분노한 윤상원형은 ‘화염병을 만들자’고 말했다. 지난 5월 5일 어린이날 식영정 뒷산 모임에서 사북탄광 광부들의 봉기를 무자비하게 공수들이 진압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산에서 내려온 뒤 산수동오거리 주막집에서 윤상원형과 노준현이랑 뒤풀이로 막걸리를 마시다가 광주에도 사북탄광처럼 공수들이 투입된다면 어떻게 물리칠 것인가를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만약 공수가 투입되면 화염병도 만들고 저들이 발포하면 주위에 향토예비군 무기고도 많은데 이 무기로 향토를 방위해야 되지 않느냐는 말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8일부터 주유소에서는 아무에게나 휘발유를 일체 팔지 않았다. 난감해 있는데 고등학생 두 명이 서점에 들어와 도와줄 일이 없냐고 물었다. 대동고생이라고 해서 우선 신분을 확인하기 위해 박석무 선생님을 물어보니 박석무 선생님과 함께 독서회 활동을 하고 있고 김효석은 회장을 맡고 있다는 것이었다.
김효석과 김병연 두 고등학생에게 5만원을 주며 휘발유를 사러 보냈다. 둘이는 이곳저곳을 헤메다 가까스로 백운동 너머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사왔다. 나중에 알았지만 김병연은 돈이 부족하자 손목시계를 맡기고 휘발유 한 말을 사왔다. 서점에 있던 형수님들과 임영희 등 송백회 회원들이 달려들어 순식간에 화염병을 만들었다.
원래 화염병은 신나에 에나멜을 섞어야 되지만 당시 상황에선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휘발유만으로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서점에 들러 화염병을 몸에 숨긴 채 가지고 나갔다. 휘발유로 만들었기 때문에 심지에 불을 붙인 다음 10초 정도 병이 달궈진 다음 던져야 된다고 일러주었다. 김효석, 김병연 두 고등학생들은 두 번이나 실패한 다음 세 번째에 가서야 공수트럭을 태웠다며 와서 자랑을 하였다.
19일 오후부터는 공수들이 궤멸되기 시작했다. 여유를 가진 우리는 화염병 투척시간을 저녁 퇴근시간대로 잡았다. 공수차량이 불에 타는 시간이 타이어까지 타려면 보통 두 시간 정도 걸렸기 때문에 불타는 차량 주위로 많은 시민이 운집할 수 있었고, 시내 곳곳은 화광이 충천하여 밤하늘을 밝혀 주었다. 사실 공수들은 별 것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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