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 집에 누가 사는지
옆 집에 누가 사는지
  • 문틈 시인
  • 승인 2013.05.15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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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층간 소음으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층간 소음은 아무리 층간을 두껍게 짓는다고 해도 어느 정도 불가피한 대목이 아닌가싶다. 문제는 공동주택에 사는 사람들이 주거윤리를 공유하는 데 있다.

밤에는 피아노를 안친다든지, 문을 쾅 닫지 않는다든지, 뭐 그냥 상식적인 일들 말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동주택에 사는 사람들끼리의 소통이다. 이웃사촌이라는데 아파트 생활에서는 전혀 그런 것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나는 지금의 아파트에서 20년 넘게 살아오고 있는데도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옆집에 누가 사는지 전혀 모른다. 드물게는 문을 열고 나가다가 옆집 문이 동시에 열려 어색한 목례를 나눌 때가 있긴 하지만 서로 왕래가 없다. 하여튼 공동주택이 생기고 나서 우리는 이웃사촌을 잃어버렸다.

내가 사는 아파트 동의 같은 줄 높은 층에 이름을 아는 시인 한 분이 살고 있었는데 어쩌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알은 체를 할 뿐 서로 집을 방문한다든지 해본 적이 없다. 이웃사촌식의 대화를 나누어 본 적도 없다.

누구랄 것도 없이 현대의 도시민들은 자기가 사는 네 개의 벽이 달린 아파트 안에 다른 사람이 틈입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휴대폰 전화번호는 가르쳐주어도 집 전화번호는 좀체 가르쳐주지 않는 것도 그런 탓일 것이다. 벽 속의 방에 가족 말고는 아무도 들어와서는 안되게 되었다.

우리 집에서 옆집까지의 거리는 건설업자가 벽 하나로 갈라놓았을 뿐이고, 그래서 이따금 옆집에서 떠드는 소리가 벽을 통해서 들리기도 하지만 정작 나는 옆집에는 몇 사람이 사는지, 무엇하며 사는지 도통 모른다.

그래서 나는 옆집에 가려면 우리 집에서 반대 방향으로 지구를 끝까지 돌아 다시 출발한 우리 집으로 돌아올 때 그때 옆집을 지날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다. 지구를 한 바퀴 돌아 그 끝에서 마주치는 집. 옆집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다.

우리나라 아파트 거주자는 인구의 70퍼센트 가까이 된다고 한다. 산업화와 함께 단기간에 한국의 주거형태는 아파트로 싹 바뀌었다. 그리고는 그렇게도 가깝게 지내던 이웃사이는 지구 끝만큼이나 멀어지고 말았다. 과거 농업사회의 두레니 하는 것은 다 옛날 이야기다.

이웃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건, 누가 죽어나가건 관심조차 없다. 오직 자기 가족만이 세계이고 우주다. 정말 이래도 되는 것일까. 그렇다고 5호담당제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서로 알고 지내야 하지 않겠느냐는 푸념이다. 급할 땐 옆집에 부탁해서 켜놓고 나온 가스불을 꺼달라고 할 수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우리 어릴 적에는 아버지 생신이라고 이웃집들에 콩고물이 잔뜩 얹힌 시루떡도 돌리고 그랬더랬는데 지금은 시멘트벽에 갇혀서 외로운 섬 주민처럼 지낸다. 오직 우리 가족의 안위, 그것만이 주요 관심사다.

그러다 보니 공동주택에서 지켜야 할 에티켓이나 윤리나 상식이 무시된다. 몇 층에선가 개를 놓아두고 외출한 바람에 그 개가 밤새도록 짖어대어 잠을 못잔 일도 있다. 이웃을 생각하지 않는 이런 세상. 그것이 우리가 꿈꾸어온 세상은 아닐 것이다.

아무리 첨단 문명으로 그물 친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다고 하지만 이웃끼리의 유대가 사라진 세상을 결코 살기 좋은 세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집집마다 대문에 문패가 달렸던 그 시절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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